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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지-이운재 후배'류원우,사상최장 승부차기의 기억은...

기사입력 2013-05-10 14:45 | 최종수정 2013-05-1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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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우 파이팅! 이거 막고 집에 갑시다!"

8일 밤 펼쳐진 FA컵 32강전 전남-강릉시청전, 120분간의 연장 혈투 후 피말리는 승부차기가 시작됐다. 사상 유례없는 키커 28명의 대공방이 이어졌다. 강릉시청 14번째 키커 손대성을 앞에 둔 류원우의 귀에 간절한 팬의 외침이 들려왔다. 승부를 결정짓기로 결심했다. 느낌이 왔다. 왼쪽을 선택했다. 마지막 키커의 공이 골대 왼쪽 모서리를 맞고 튕겨나갔다. 전남의 14번째 키커 박승일이 골망을 흔들며 전남은 10대9로 승리했다.

류원우
전남의 '22세 골리' 류원우는 8일 하나은행 FA컵 강릉시청전에 모처럼 선발로 나섰다. 프로 5년차, 전남유스 광양제철고 출신이다. 윤석영의 절친 동기이자, 지동원 김영욱 황도연 이종호의 1년 선배다. 5시즌간 9경기(2011년 1경기, 2012년 8경기)에 나섰다. '레전드' 선배들에 가려 좀처럼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2011~2012년 '월드컵 영웅' 이운재가 전남의 골문을 지켰고, 올해는 '병지삼촌' 김병지가 건재하다. 지난해 6월 대전전에서 케빈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깜짝스타로 떠오른 적이 있다.

FA컵을 앞두고 하석주 전남 감독은 과감한 모험을 택했다. 최전방부터 골키퍼까지 선발라인을 전원 교체했다. 류원우가 지난해 8월26일 강원전 이후 9개월만에골문 앞에 섰다. 2009년 프로 첫해, 전남의 수석코치였던 하 감독은 류원우의 재능을 아끼는 스승이다. "넌 나와서 공중볼 잡는 움직임이 좋으니 자신있게 하기만 하면 된다. 잘할 수 있다. 믿는다." 경기 직전 자신감을 불러넣어줬다.

류원우는 준비돼 있었다. 이날 전반 강릉시청의 예리한 슈팅을 잇달아 막아냈다. 1대1 위기에서도 침착했다. 날카로운 세트피스도 보란듯이 막아냈다. 수차례 슈퍼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날 전남은 조직력 난조에 시달렸다.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나선 선수들의 의욕은 충만했다. 손발은 맞지 않았다. 내셔널리그 1위팀 강릉시청의 조직력, 공격력에 밀렸다. 최후방에서 류원우가 든든하게 역할을 해냈다.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안되면 승부차기에서 막자 생각했죠."

이날 사상 최장기록을 세운 '네버엔딩' 승부차기는 차라리 드라마였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병지삼촌'이 라커룸으로 달려내려 왔다. 스무살 어린 후배에게 진심을 다한 조언을 건넸다. "기다려, 먼저 움직이지 말고 침착하게…. 한쪽만 생각하지 말고 양쪽 다 생각해라. 분명히 기회가 온다."

강릉시청 세번째 키커의 공을 선방하며 승기를 잡았다. 승부를 결정할 다섯번째 키커로 하 감독은 류원우를 지목했다. 잔뜩 노려찬 공이 상대 골키퍼의 발끝에 걸리며 튕겨나갔다. 엔트리 전원 11명의 순번을 한바퀴 돌아 '14번째 키커'까지 가서야 승부가 갈렸다. 10-9, 전남의 극적인 승리였다. 경기 후 코칭스태프와 눈이 마주치자 슬몃 웃음부터 나더라고 했다. "바보, 영웅 만들어주려고 했더니…"라며 선생님들도 웃으시더란다. 류원우는 "영웅이 될 기회를 날렸지만, 역적 안된 게 다행이다. 졌으면 진짜 울 뻔했다"며 웃었다.

'백업 골키퍼' 류원우는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말한다. "대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는 건 큰 행운이죠. 경기에 못나가도 보고 배우는게 정말 많아요." 안정적인 이운재와 스피디한 김병지, 스타일이 다른 레전드 선배의 장점을 골고루 체득하고 있다. "운재형은 볼 캐칭이 정말 좋아요. 쳐낼 만한 공을 다 잡아내시죠. 쳐낼 공을 잡아주면, 우리선수들이 편해진다고 자주 말씀하세요. '병지삼촌'은 순발력, 몸관리, 프로로서의 열정이 정말 최고예요. 50-100m 인터벌 속도가 후배들보다 더 빨라요." 후배가 바라본 두 레전드 선배의 공통점은 "승부욕과 인간미"다. "골 먹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세요. 연습때도 실전 때와 똑같아요. 마음이 따뜻하셔서 후배들 잘 챙겨주시는 것도 똑같고요"라며 웃었다.

이운재, 김병지 '대한민국 대표 골키퍼'의 수십년 노하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운, '직속후배' 류원우는 한국 수문장의 미래다. 출전기회에 대한 아쉬움이나 조급함은 일찌감치 떨쳐냈다. 프로의 기다림을 안다. "열심히 준비하다 보면 틀림없이 언젠가 제게 기회는 오게 돼 있어요." 전남 유스로서 팀에 대한 애착 역시 남다르다. "전남에서 시작했고, 전남에서 성장했으니, 전남에 도움이 되는 골키퍼가 되고 싶어요. 다른 팀은 생각 안해요. 전남에서 끝까지 해야죠."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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