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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감수한 최용수 서울 감독, 그 후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3-04-03 16:20 | 최종수정 2013-04-04 08:20


프로축구 FC서울이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센다이 베갈타(일본)와 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E조 3차전을 펼쳤다. FC서울은 현재 ACL E조에서 1승 1무 승점 4점으로 선두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FC서울 최현태가 후반종료 4분여를 남기고 퇴장당한 유상훈을 대신해 골대를 지키고 있다.
상암=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3.04.02/

승리의 여신이 마음을 돌리는 듯 했다. 운명이 야속했다. 헛웃음만 나왔다. 10분이 90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십년감수했다. 하루가 흘렀지만 여전히 되돌아보면 아찔하다. "자칫 무승부라도 됐더라면…."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최용수 FC서울 감독, 35일 만의 승전가는 파란만장했다.

최 감독은 2일 밤 배수진을 쳤다. 칼을 빼들었다. 최근 실수가 잦은 골키퍼 김용대(34)를 벤치에 앉혔다. K-리그 통산 단 1경기 출전에 불과한 유상훈(24)을 출격시켰다. 베갈타 센다이(일본)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3차전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다. 서울은 ACL에서 1승1무(승점 4)로 E조 선두였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도박에 가까운 강공이었다. 적중하는 듯 했다. 선수들이 달라졌다. 투지와 근성이 살아났다. 강력한 압박과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경기를 지배했다. 유상훈도 믿음에 화답했다. 안정적으로 뒷문을 지켰다. 전반 일찌감치 2골을 터트렸다. 3무2패, 단 1승도 챙기지 못한 3월의 암울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최 감독은 후반 20분이 흐른 후 교체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반 34분 3장을 모두 소진했다. 4월 매주 2경기씩 벌어지는 살인적인 일정을 감안, 컨디션 조절을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4분 뒤 믿기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다. 유상훈이 상대의 외국인 공격수 윌슨과의 1대1에서 육탄 저지하다 레드 카드를 받았다. 페널티킥까지 허용했다. 그 순간 소란이 일어났다. 김용대가 벤치에 있었지만 이미 교체 카드를 다 써버려 기용할 수 없었다. 10명의 필드플레이어 중 한 명이 골문을 지켜야 했다. '중앙수비수 김진규냐, 수비형 미드필더 최현태냐', 최 감독의 머리에 쥐가 났다. 선택은 최현태였다. "현태는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진규를 쓸까도 고민했지만 현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반 41분 윌슨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한 이후가 더 걱정이었다. 인저리타임도 무려 5분이나 주어졌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최현태는 스타가 됐다. 한 차례 로빙볼을 처리하자, 벤치에서 "키득, 키득" 웃음이 나왔다. 골킥을 할 때는 관중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길고 길었던 지옥같은 상황이 종료됐다. 수문장 최현태는 골대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최 감독은 물론 선수들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2대1, 4월 첫 경기에서 드디어 무승 사슬을 끊었다. 2월 26일 장쑤(중국)전 5대1 대승 이후 35일 만의 귀중한 승리였다. E조에서 2승1무(승점 7)로 단독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최 감독은 "나도 당황스러웠다. 이것도 축구의 재미난 요소다.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이런 경우가 나오면 안되겠지만 이기고자 하는 선수들의 정신력을 믿었다. 확실한 반전의 계기가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다시 한 발을 옮긴다. 서울은 6일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K-리그 클래식 첫 승에 도전한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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