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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호주전훈' 박태환을 외롭게 해선 안될 이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1-16 08:47


14일 오후 박태환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13년도 첫 전지훈련지인 호주로 출국했다. SK와 결별 후 후원사를 물색하고 있는 박태환은 2014년 아시안게임 출전을 공식 선언한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하며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 계획이다. 출국에 앞서 박태환이 팬들에게 선물을 받아들고 있다.
인천공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1.14.

14일 오후 박태환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2013년도 첫 전지훈련지인 호주로 출국했다. SK와 결별 후 후원사를 물색하고 있는 박태환은 2014년 아시안게임 출전을 공식 선언한 후 호주 브리즈번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하며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 계획이다. 출국에 앞서 박태환이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천공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1.14.

"우리 태환이 인기가 많이 죽었나 봅니다."

'박태환 아버지' 박인호씨(64)가 14일 호주 전지훈련을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해 10월 런던올림픽 은메달 직후 SK텔레콤과의 4년 계약이 종료됐다. 이후 2개월 넘게 후원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물밑 협상이 수차례 오갔지만 1월 전지훈련을 떠날 때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박태환이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을 잡지 못했다. 12월 중순까지 물도 잡지 못했다. 첫 물살을 가른 이후 이렇게 오래 수영을 쉰 적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용단을 내렸다. "운동선수는 운동으로 보여줘야지. 스폰서가 없다고 운동을 쉴 수는 없죠."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손석배 팀장은 10여년 전 아레나 마케팅팀 시절부터 박태환이 피붙이처럼 의지해온 '형'이다. 손 팀장은 한달 넘게 전담팀 구성을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2013년 첫 전훈을 위해 5명의 전담팀이 뭉쳤다. 박태근 전 방글라데시 감독을 영입했다. 마이클 볼 감독이 조언한, 젊고 실력 있고 영어소통이 가능한 지도자라는 조건에도 부합했다. 손 팀장이 알고 지내온 박성영 물리치료 박사와 정주호 트레이너 팀장이 박태환의 새 출발을 돕기로 했다. 인맥, 의리로 똘똘 뭉친 박태환 전담팀이 새로 구성됐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전지훈련 비용은 아버지 박인호씨가 부담한다. 박태환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강조했다. "자비로 가는 만큼 더 좋은 경험이 될 것같다"며 웃었다. 외롭지만 씩씩했다.

기업의 논리는 승부의 세계보다 더 냉정하다. 박태환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도전을 공식화한 이후에도 후원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손익계산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주판알을 튕겼을 것이다. 런던에서 실격 해프닝속에 쑨양에 밀려 은메달을 땄다. 선수로서 정점을 지났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4년-70억원이라는 SK텔레콤의 기존 투자금액에 기가 질렸을 수도 있다. 수영에만 올인해도 모자란데 학업과의 병행을 선언한 것이 마이너스가 됐다는 말도 들린다.

기업의 이윤추구와 손익계산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박태환'이라는 선수를 단순한 기업논리, 상품성으로만 평가하는 시선은 안타깝다. '박태환'이라는 이름 석자가 대한민국 스포츠사에서 갖는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가 지닌 스토리, 그가 펼쳐갈 미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판정종목이 아닌 기록종목 '수영'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유일한, 전무후무한 '월드스타'다. 자신보다 키가 20㎝ 이상 큰 해켓, 쑨양, 비더만 등 세계적 에이스들을 '폭풍 스트로크'로 제압했다. '베이징 대역전극' '광저우 부활 드라마' '상하이 1번 레인의 기적' '런던 실격 해프닝' 등 생생한 스포츠 스토리에 전국민이 울고 웃었다. 4분의 레이스를 보기 위해 전국민이 새벽잠을 설쳤다.

불과 1년 반 후 대한민국 인천에서 펼쳐질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쑨양의 리턴매치에 쏠릴 국민적 관심은 명약관화하다. 광저우, 상하이에서는 박태환이 이겼고, 런던에서는 쑨양이 이겼다. 올림픽 챔피언들의 4번째 맞대결, 전세계의 이목이 쏠릴 세기의 대결이자 대회 흥행을 위한 빅카드다. 아시아의 중심에서 자유형 400m 세계기록의 역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심장을 뜨겁게 한 수영스타, 수영과 학업을 병행하는 엘리트 선수를 끝까지 후원하는 이미지는 단순한 상품성 이상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스포츠 스타에 열광하지만, 스포츠 영웅을 지키고 만드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져간 스타들이 너무도 많다.


국민과 팬들은 박태환의 내재된 가치를 알고 있다. 이날 공항에는 박태환 출국을 지켜보기 위해 100여 명의 팬과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응원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예기치 못한 관심에 박태환이 놀라,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 외로이 떠나는 영웅의 어깨에 힘을 실어줬다. 박태환 팬클럽은 대기업 CEO들이 즐겨보는 주요 일간지에 '십시일반' 광고 게재도 논의중이다.

지난 2년간 중국이 쑨양에게 투자한 돈은 20억원이 넘는다. 쑨양과 전담 코치, 훈련 파트너 등 '쑨양 팀'의 해외전훈 비용은 1000만 위안(약 17억원) 이상이다. 지난 12월 현대자동차 중국법인은 '박태환의 라이벌' 쑨양을 싼타페 CF 모델로 선택했다. 중국 현지 마케팅에 가장 적합한 스포츠스타로 쑨양을 택했다. 글로벌 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박태환의 외로운 현상황과 오버랩되면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현대차는 올겨울 박태환에게 본사 사원 수영장을 제공하며 국내훈련을 지원했다. 쑨양은 이미 새시즌을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기록종목은 정직하다. 결과만 바라서는 안된다. 좋은 과정 없이 좋은 결과는 없다. '나이가 더 들었기 때문에, 학업과 병행하기 때문에 지원 못한다'가 아니라, 그럴수록 더욱 집중적이고 효율적, 체계적인 훈련을 지원해야 한다. 기업이 못하겠다면, 대한수영연맹,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닥쳐서 하면 늦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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