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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싱데이' 사나이 박지성, 올해는 쓸쓸하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2-12-26 09:21 | 최종수정 2012-12-26 09:26



'박싱 데이(Boxing Day)'는 '박싱 데이(Park Sing Day)'였다. 맨체스터 올드트래포드에 그의 응원가가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박지성(31·QPR)은 '박싱 데이'와 유난히 인연이 깊었다. 출발부터 산뜻했다. 맨유 입단 첫 해인 2005년 웨스트브로미치전에서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4대0 대승을 이끈 그는 2006년일 위건전에선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페널티킥 골을 터트릴 경우 얻어낸 선수에게 도움을 인정한다. 당시 도움으로는 기록되지 않았다. 키커로 나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슛이 상대 골키퍼에게 막혔다. 호날두는 골키퍼 몸맞고 나온 볼을 재차 밀어 넣어 골망을 흔들었으나 공격포인트는 허공으로 날아간 뒤였다.

오른무릎 연골재생 수술을 받은 2007년은 더 뜻깊었다. 박싱 데이에 8개월간의 긴 침묵을 깨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선덜랜드전에서 교체투입돼 33분을 소화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드디어 돌아와 30분 이상을 소화했다. 우리 모두 기뻐하고 있다"며 흥분했다. 영국의 스포츠전문 채널 스카이스포츠는 짧은 시간 출전에도 '조연 역할로 눈부시게 복귀했다(Bright comeback cameo)'는 평가와 함께 팀에서 4번째로 높은 평점 7점을 줬다. 2010년 선덜랜드전에선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3대0 완승에 한몫 했다.

지난해에는 클라이맥스였다. 안방에서 열린 2011~2012시즌 EPL 18라운드 위건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5대0 대승을 연출했다.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전반 8분 선제골을 터트린 그는 후반 33분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베르바토프가 팀의 다섯 번째 골로 연결했다.

온누리에 사랑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는 또 다른 혈전의 서막이다. 올해도 한 시즌의 운명이 걸린 '박싱 데이'가 열렸다. '박싱 데이'는 성탄절 다음날인 26일이다. 영국을 비롯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연방 국가들만이 지정한 공휴일이다. 기원은 영주와 농노가 존재하던 중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주들은 크리스마스 파티가 모두 끝나는 이날이 되면 농노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박스(Box)'가 등장한다. 농노들이 박스를 준비해 가져가면, 영주들이 생필품이나 돈으로 박스를 채워줬다.

영주와 농노가 사라진 근대에 들어 박싱 데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청소부나 우편 배달부와 같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로 변했다. 요즘엔 '스포츠의 날'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축구와 경마, 크리켓 등 모든 경기가 이날 펼쳐져 팬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한다. EPL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은 1년 내내 쏟아지는 팬들의 열렬한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박싱 데이를 필두로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한다. 새해 1월 첫 주까지 사흘마다 경기가 열린다. 반환점이다. 재미난 속설이 있다. 이 기간에 강등권(18~20위)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 2부 리그로 추락한다는 법칙이다. '박싱 데이 주간=분수령'이라는 등식이 존재한다.

하지만 올해는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박싱 데이(Park Sing Day)'는 없다. 올시즌 QPR로 이적한 박지성은 자리를 비울 것으로 보인다. QPR은 26일 자정(한국시각) 웨스트브로미치를 홈으로 불러들인다. 그러나 박지성은 무릎부상으로 엔진이 멈췄다. '박싱 데이'는 추억일 뿐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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