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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는 최근 '믿고 쓰는 포항산(産)'라는 말이 있다. 포항에서 키워낸 선수들은 믿을만하다는 뜻이다. 모기업의 지원이 예전만 같지 않기에 포항은 유소년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올 시즌 들어 유소년 정책이 빛을 발하고 있다. 팀의 핵심 황진성을 비롯해 수문장 신화용 신광훈 등 주전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포철공고 출신이다. 여기에 새로운 신인들이 가세했다. 이명주와 문창진이다. 올 시즌 신인왕 0순위 이명주와 이광종호 에이스로 떠오른 문창진을 포항에서 만났다.
기회가 왔다. 4월 8일 성남 원정경기였다. 김태수가 부상으로 빠졌다. 이명주는 선발출전했다.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후반 4분 아사모아의 선제골을 도왔다. 그는 "내가 어떻게 뛴 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이명주는 정신이 없었지만 황선홍 감독은 이명주를 눈에 확실하게 박았다. 이명주를 중용했다. 신형민이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중동으로 떠났다. 이 자리를 이명주가 잘 메웠다. 생존이 목표였던 이명주가 올 시즌 33경기에 출전해 4골-4도움을 기록했다. 신인왕 0순위가 됐다. 이명주는 "사실 신인왕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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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무대에서의 아쉬움은 19세 이하 대표팀에서 풀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9세 이하 선수권대회였다. 문창진은 4골-2도움을 기록했다. 에이스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라크와의 결승전에서 경기종료 직전 극적 동점골로 스타덤에 올랐다. 문창진은 "우승을 할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나씩 나아가자고만 했다. 최선을 다하다보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에피소드도 하나 공개했다. 19일 우승컵을 들고 귀국한 문창진은 "박주영(셀타비고)을 능가하는 선수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박주영과 문창진은 포지션부터가 달랐다. 여러가지 말들이 오갔다. 실상은 얼떨걸에 나온 말이었단다. 문창진은 "귀국 인터뷰장에서 누군가 박주영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박주영 선배를 존경한다. 하지만 포지션이 다르다. 내가 배우고 동시에 뛰어넘고 싶은 선수는 다비드 실바(맨시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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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주-문창진 라인 기대해주세요
이명주와 문창진은 포철공고 3년 선후배 사이다. 서로 친하다. 훈련이 없을 때면 함께 이야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 하지만 절친한 사이라도 둘 다 물러설 수 없는 것이 있다. 비디오 축구게임이다. 둘 다 축구게임에서는 최고다라고 자부했다. 최근 딱 한 번 붙어봤단다. 그때 문창진이 승리했다. 이명주는 "말도 안된다. 내가 경기도 지배하고 슈팅수도 더 많았다. 내용에서는 내가 이겼다"고 했다. 문창진은 "축구는 내용이 아닌 스코어로 말하는 것이다"면서 웃었다.
비디오 게임으로 티격태격하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같이 뛰면서 멋진 호흡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둘 다 아직 함께 뛴 경기가 없다. 문창진은 3경기에 교체해들어갔지만 그 때마다 이명주와 맞바꾸었다. 둘은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이명주와 문창진으로 이어지는 미드필더 라인으로 포항에 새 힘을 불어넣겠다는 각오다. 이명주는 "(문)창진이가 더욱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문창진 역시 "(이)명주 형이 내 뒤를 지켜준다면 든든하다. 함께 포항의 허리를 이끌고 싶다"고 했다.
포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