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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SNS 아이디로 제라드의 이름을 딴 '기라드'를 즐겨 쓰던 기성용이었다. 쉼 없이 달려오던 중 햄스트링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잠시 이탈했던 그가 지난 주말 그라운드로 돌아와 '우상' 제라드와 시즌 두 번째 맞대결을 펼쳤고, 그 경기에서 자신이 꾸준히 성장해왔음을 증명해 보이며 팀 내 탄탄한 입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소속팀을 옮긴 뒤 적응 기간 없이 곧장 에이스로 거듭난 기성용, 그가 한국 시각으로 29일 새벽 4시 45분에 펼쳐지는 WBA전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있다.
다만 선발진의 경기 내용과 결과가 썩 좋지 못하자, 후반 들어 기성용을 투입하며 다시 변화를 주었다. 원톱의 부재에 시달리던 라우드럽 감독은 미추와 데 구즈만을 전진시키면서, 기성용에게는 중앙에서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맡겼다. 짧은 패스를 주로 활용하고 볼을 점유하며 연계 플레이를 주 무기로 하는 스완지는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이었고, 경기 내용도 대체로 물 흐르듯 잘 풀려나갔다. 또, 종료 10분 정도를 남겨두고 데 구즈만이 교체로 물러나 앞으로 나아가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했다.
이렇듯 기성용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스완지가 취할 수 있는 패턴은 두세 가지로 늘어날 수 있다. 본래 위치인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다면 데 구즈만을 위로 올릴 수도 있고, 혹은 어느 한 선수에게 휴식을 줄 수도 있다. 또, 비록 짧은 시간이라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엔 부족한 감이 있으나, 이미 서울 소속으로 귀네슈 감독 아래에서 뛰면서 검증이 되었듯, 이번처럼 공격형 미드필더로 전진한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의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리버풀이 후반 들어 앞으로 나오면서 공간이 많이 생겨났음을 간과할 순 없지만, 기성용의 투입과 동시에 잘 풀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데에는 경기를 읽고 풀어내는 그만의 능력이 한 몫 단단히 했다는 생각이다. 안정된 키핑과 넓은 시야로 공급해주는 전진 패스는 스완지의 패스 줄기를 확실히 살려 놓았으며, 동시에 어느 한 곳에 편중되지 않은 볼 배급에 좌우 균형도 적절히 맞춰갔다. 또, 앞으로 지체없이 나아가야 할 때와 한 템포 쉬어가며 전열을 가다듬어야 할 때를 정확히 구별하며 경기 전체를 조율하기까지 했다.
볼 배급에서만 두각을 드러낸 게 아니었다. 팀 동료들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에서도 빛이 났는데, 원투 패스를 통해 공격 진영으로 전진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다. 또, 공격 진영에 머물 때에는 상대 선수를 끌고 다니는 움직임과 동시에 페널티 박스 언저리에서의 중거리 슈팅 능력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확인 가능하듯 확실히 스완지 스타일에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으며, 팀과 선수의 궁합이 참 잘 맞는 모습이다.
세트피스 공격-수비 양면에서 드러난 존재감
세트피스 상황, 우리에게 익숙한 기성용의 모습이라면 한쪽 팔을 들어 올려 박스 안에 자리한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낸 뒤 카메라 단독샷을 받으며 킥을 하는 모습이 아닐까. 다만 스완지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매번'보다는 '종종' 보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보인 성과는 킥 전담에서의 경쟁력을 한층 더 올려줄 수 있지 않나 싶다. 짧게 연결했을 때엔 치코가 잘라먹는 헤딩 슈팅을, 길게 연결했을 때엔 윌리암스가 몸을 뒤로 젖히며 헤딩 슈팅을 날렸다. 꾸준히 동료들의 머리에 맞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이었으며, 본인이 킥을 안 했을 경우엔 직접 박스에 들어가 헤딩 경합까지 했다.
그의 존재가 팀에 더욱 도움이 됐던 건 공격보다 수비 부분이었다. 본인의 약점으로 헤딩 능력을 꼽았을 만큼 신장에 비해 공중볼을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다. 다만 5명 정도가 상대 페널티 박스 안에 들어가 공격에 참여하는 상황과 달리 거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들이 박스 안에 들어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신장이 굉장한 도움이 된다. 170cm 초중반 대의 작은 선수들이 많이 포진된 스완지의 세트피스 수비 상황에서 족히 15-20cm는 더 큰 기성용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점은 상당하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