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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스승이었다.
찰떡 궁합이었다. 차 위원은 꾸준히 최용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역 시절 최용수의 전성기였다. 그는 1997년 5월 28일 홍콩과의 프랑스월드컵 1차예선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렸다. 최종예선에서는 7경기에 출전, 4골을 작렬시켰다. 카자흐스탄전에서는 골 세리머니를 하다 광고판 위에서 넘어져 팬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도쿄 대첩'도 함께했다. 차 위원의 감독 재임 시절 최용수는 A매치에서 14골을 기록하는 놀라운 골결정력을 과시했다. 차 위원은 스트라이커 최용수가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기회를 마련해 준 은인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월드컵 본선에서는 운명이 엇갈렸다. 차 위원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1대3 패)에서 최용수를 베스트 11에서 제외했다.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하소연할 수 없었지만 최용수의 상심도 컸다. 관계도 다소 껄끄러워졌다. 최용수는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선발로 복귀했지만 0대5로 대패하며 명예회복의 기회가 날아갔다. 차 위원은 더 큰 아픔이 있었다. 2차전 후 감독직에서 도중하차하며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또 세월이 흘렀다. 차 위원은 2010년 5월 수원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해 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제자는 지난해 4월 감독대행에 올랐다. 올시즌 대행 꼬리표를 뗀 그는 첫 해에 K-리그를 삼켰다. 한 팀에서 선수(2000년), 코치(2010년), 감독(2012년)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첫 K-리거로 역사에 남게 됐다.
차 위원은 그 현장을 함께했다. 차 위원은 수원 감독 시절 8차례(정규리그 2회, FA컵 1회, 컵대회 3회, A3 1회, 팬퍼시픽 1회)나 우승했다. 최 감독은 "선생님께서 대표팀 감독에 계실 때가 내 축구 인생의 정점이었다. 찾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감격해 했다.
스승의 정은 특별했고, 제자는 그 정을 진하게 느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