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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위원, 최용수 감독에게 한 걸음에 달려간 이유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2-11-22 17:11 | 최종수정 2012-11-23 08:27


◇제자의 우승을 현장에서 보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온 차범근 SBS 해설위원이 21일 우승을 품에 안은 최용수 서울 감독과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의리의 스승이었다.

제자의 '우승 매직넘버 -1' 소식을 듣고는 한 걸음에 그라운드로 달려갔다. 패할 경우 '챔피언 축포'가 미뤄질 수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자를 믿었다. 기대는 비껴가지 않았다. 제자는 정상에 우뚝섰고, '챔피언 찬가'가 울려퍼졌다. 제자는 난생 처음 헹가래를 받으며 최고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라운드로 내려간 스승은 명장 반열에 오른 제자를 기다렸다. 우승 세리머니에 이어 인터뷰까지…. 제자는 스승을 본 순간 고개를 숙였다. 스승은 축하의 말과 함께 따뜻하게 제자를 안았다.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스승' 차범근 SBS 해설위원(59)과 '제자' 최용수 FC서울 감독(41)이 뜨겁게 재회했다. 둘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의 연으로 엮여있다. 차 위원이 월드컵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최 감독은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였다.

찰떡 궁합이었다. 차 위원은 꾸준히 최용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역 시절 최용수의 전성기였다. 그는 1997년 5월 28일 홍콩과의 프랑스월드컵 1차예선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렸다. 최종예선에서는 7경기에 출전, 4골을 작렬시켰다. 카자흐스탄전에서는 골 세리머니를 하다 광고판 위에서 넘어져 팬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도쿄 대첩'도 함께했다. 차 위원의 감독 재임 시절 최용수는 A매치에서 14골을 기록하는 놀라운 골결정력을 과시했다. 차 위원은 스트라이커 최용수가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기회를 마련해 준 은인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월드컵 본선에서는 운명이 엇갈렸다. 차 위원은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1대3 패)에서 최용수를 베스트 11에서 제외했다.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하소연할 수 없었지만 최용수의 상심도 컸다. 관계도 다소 껄끄러워졌다. 최용수는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선발로 복귀했지만 0대5로 대패하며 명예회복의 기회가 날아갔다. 차 위원은 더 큰 아픔이 있었다. 2차전 후 감독직에서 도중하차하며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최용수는 2006년 8월 현역에서 은퇴했고, FC서울의 코치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차 위원의 수원 삼성 감독 시절이었다. 공교롭게 서울과 수원은 함께할 수 없는 앙숙이자 K-리그 최고의 라이벌이다. 2008년 두 팀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닥뜨렸다. 승자는 차 감독이었다. 최용수는 코치로 벤치를 지켰지만 스승의 우승을 부럽게 바라만 보기만 했다.

또 세월이 흘렀다. 차 위원은 2010년 5월 수원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해 서울은 10년 만에 K-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제자는 지난해 4월 감독대행에 올랐다. 올시즌 대행 꼬리표를 뗀 그는 첫 해에 K-리그를 삼켰다. 한 팀에서 선수(2000년), 코치(2010년), 감독(2012년)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첫 K-리거로 역사에 남게 됐다.

차 위원은 그 현장을 함께했다. 차 위원은 수원 감독 시절 8차례(정규리그 2회, FA컵 1회, 컵대회 3회, A3 1회, 팬퍼시픽 1회)나 우승했다. 최 감독은 "선생님께서 대표팀 감독에 계실 때가 내 축구 인생의 정점이었다. 찾아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라며 감격해 했다.

스승의 정은 특별했고, 제자는 그 정을 진하게 느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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