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년간 한국 축구의 아이콘은 박지성(31·QPR)이었다. 아무도 넘지 못할 철옹성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2010년) 등 2000년대 이후 한국축구사는 그와 운명을 함께 했다. 10년이 흐른 2012년, 한국 축구의 새로운 영웅이 등장했다. 유럽무대 2막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기성용(23).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건 그는 '황금 세대'의 중심으로, 또 한국 축구의 새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
기성용은 이적료로 한국 축구사도 새롭게 바꿨다. 한국인 최고의 이적료다. 기성용 측이 밝힌 기본 이적료는 600만파운드(약 107억원)선. 셀틱과 스완지시티는 추가 이적료를 두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이다 합의점을 찾았다. 이 관계자는 "추가 이적료가 200만 파운드 정도 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옵션이 있다. 그 중에 한가지는 기성용이 스완지시티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할 때 셀틱이 추가 이적료를 받기로 한 것도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종합해보면 기성용의 이적료는 800만파운드(약 142억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 이적료인 600만파운드만으로도 박지성이 최근 맨유에서 QPR로 이적하며 기록한 500만파운드(약 89억원·팀성적에 따른 추가 이적료 포함)를 넘어섰다. 박지성이 24세이던 2005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서 맨유로 이적할 당시 기록한 이적료 400만파운드(약 71억원)의 두배에 가깝다. 스완지시티 구단 역사상 최고의 몸값이기도 하다. 스완지시티는 2011~2012시즌 왓포드의 공격수 대니 그레엄을 영입할 당시 390만파운드(약 69억원)를 지급하며 구단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지급한 바 있다.
기성용은 박지성이 쓴 유럽에서의 역사를 하나씩 새로 써내려가고 있다. 23세에 불과하다. 박지성이 23세에 걸었던 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어리기에 미래가 더 창창하다. 박지성이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밟고 있는듯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박지성은 유럽 두번째 팀을 세계최고의 팀으로 택했다. 7년간 그는 유럽축구의 중심에 있었다. 기성용은 스완지시티를 택했다. 분명한건 스완지시티가 그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도 성장 중이다. 스완지시티를 다리삼아 2~3년 뒤 한 단계 도약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 가파른 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성용은 FC서울 시절 공격 지향적인 반쪽 자리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거친 스코틀랜드 무대에 적응하는데도 약한 수비력이 걸림돌이었다. 셀틱에서 세 시즌동안 그는 공-수 능력을 겸비한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몸값도 치솟았다. 2010년 FC서울에서 200만파운드(약35억원)의 이적료로 셀틱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몸값이 2년 6개월만에 3배 넘게 뛰었다. 기성용이 향후 유럽 명문팀으로 이적을 한다면 한국인 최초로 몸값 1000만파운드(약178억원)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뉴 코리아'
한국 축구의 지형도 역시 바꿨다. 과거 한국 축구는 빠른 측면 돌파에 의한 장신 포워드의 득점을 주루트로 삼았다. 차범근 변병주 서정원 등 빠른 선수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무대가 주어졌다. 경쟁력도 있었다. 그동안 유럽무대에 진출한 한국선수들의 대부분이 측면 공격수였다는 사실은 이를 반증한다. 상대적으로 중앙 미드필더들이 뛰기에는 제한된 면이 있었다. 1980년대 '컴퓨터 링커'로 불렸던 조광래는 뛰어난 패싱이 강점이었지만, 악착같은 수비력으로 더 대접을 받았으며, 윤정환 고종수 같은 테크니션보다는 유상철 김도근 등과 같이 열심히 뛰는 미드필더들이 각광을 받아왔다. 기성용은 모든 것을 갖췄다는 평가다. 1m90을 넘는 신체조건에 정확한 패싱력,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투지 넘치게 그라운드를 지배한다. 그를 허리에 심은 한국 축구는 런던올림픽에서 세계 3위의 신화를 썼다. 유럽에서도 몇 안되는 장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각광 받고 있다. 한국인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유럽 무대에 당당히 섰다. 아스널, 풀럼, 에버턴, QPR 등 EPL 팀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몸값이 치솟았다. 그의 경쟁력과 잠재력을 높이 산 결과다. 기성용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그래서 더 기대할 것이 많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