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만화에서만 그리던 대결이었다. 무대는 올림픽, 이기는 쪽은 동메달, 지는 쪽은 아무것도 없다.
참 많이도 싸웠다. A대표팀은 75번, 올림픽대표팀은 12번을 맞붙었다. 20세 이하 대표팀은 39번, 17세 이하도 12번을 싸웠다. 1954년 첫 맞대결을 펼친 이후 58년간 총 138번의 공식 경기를 가졌다. 1년에 2번 이상은 경기를 가진 셈이다. 서로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라이벌이다.
하지만 라이벌전의 범위는 아시아무대에 한정됐다. 세계무대에서의 맞대결은 거의 없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는 '대륙별 안배 원칙'에 따라 다른 조에 속했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까지 조별리그 통과만이 목적이었다. 한국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면 일본이 탈락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그 후 10년
이번 대결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과다. 양 팀 선수들 모두 유소년시절 한-일월드컵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월드컵 전후로 축구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이루어졌다.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K-리그팀들이 유소년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았다.
유럽축구가 안방으로 쏟아져들어왔다.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을 보고 자랐다. 어린 선수들의 꿈은 유럽 진출로 모아졌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2002년 이후 10년간 한국과 일본의 축구는 꾸준히 발전했다. 이제는 아시아 축구 무대가 아닌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세계무대 한-일전, 축구 발전의 기폭제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한-일전이다. 이번 올림픽 동메달 격돌로 '월드컵 결승전 한-일전'이 허황된 꿈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더 많은 한-일전이 나올 것이라는 서곡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월드컵 결승전 진출은 A대표팀을 철저하게 준비시킨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A대표팀의 경기력은 기본이다. 자국리그의 저변 등 전체적인 축구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자국 리그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J-리그는 지역과의 밀착을 통해 탄탄한 저변을 갖추었다.
K-리그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충성심 높은 팬들 기반을 갖추고 있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내실을 갖추며 발전해가고 있다. 이번 경기는 분명 K-리그와 한국축구 발전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올림픽 동메달 맞대결까지 58년이 걸렸다.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월드컵 결승전 한-일전은 그것보다는 적게 걸릴 것이다.
카디프(영국)=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