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10주년 릴레이 특집] ①귀네슈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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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는 아군이 아닌 적장이었다. 터키대표팀을 이끌었다. 한국과 3~4위전에서 맞닥뜨렸다. 터키가 3대2로 승리했다. 결과는 중요치 않았다. 두 팀은 하나가 됐고, '형제애'를 나눴다. 터키는 한국 전쟁 당시 1만5000여명을 파병했다.
세뇰 귀네슈 트라브존스포르 감독(60), 대한민국은 제2의 고향이다. 한-일월드컵이 끈이 돼 그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세 시즌간 K-리그 최고의 명문구단 FC서울을 이끌었다. 2009년 11월 지휘봉을 내려놓은 후 2년6개월 만인 25일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스포츠조선은 이날 용산역 VIP실에서 귀네슈 감독을 단독으로 만났다.
환갑의 사령탑은 소년이 돼 있었다. "솔직히 세계박람회 참관차 한국에 온 것은 핑계다." 그의 첫 마디는 향수였다. FC서울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무관에 그쳤지만 서울에 신바람나는 공격축구를 뿌리 내렸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기꺼이 희생했다.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등이 귀네슈 감독 시절 모두 유럽에 진출했다. 서울 팬들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그때 갑작스럽게 터키로 돌아갔다. 다시 한국에 오고 싶었다. 정말로 한국이 보고 싶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환희를 느꼈다. 세월이 흘러도 2년 6개월전과 똑같은 기분이었다"며 "트라브존이 고향이지만 그곳에서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한국에서 생활했을 때 고향에 있는 것처럼 평안했다. 한국의 향기를 맡는 순간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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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0주년'이라는 말에 감격해 했다. 터키는 한-일월드컵 당시 조별리그를 울산, 인천, 서울에서 치렀다. 16강과 8강, 4강전은 일본에서 가진 후 3~4위전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네슈 감독은 "잊을 수 없는 꿈을 만들었다. 일본보다 한국이 더 따뜻했다. 터키와 문화가 정말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과의 3~4위전은 전세계가 감명을 받았다"며 회상에 잠겼다. 그리고 "브라질과 독일의 결승전이 3~4위전에 묻혔다. 주목을 덜 받았다. 축구는 경쟁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철학이 있어야 된다. 한국과 터키전은 축구를 통해 세계적인 우정을 연출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대표팀 감독 얘기를 꺼내자 의미심장한 미소부터 지었다. 조심스러웠다. 그는 "감독이 있는 지금 상황에서 오해를 만들 필요가 없다. 대답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며 입을 뗐다. 말문을 이어갔다. 현재 위치가 미묘했다. "경남 감독(조광래)이 그만두시고 전북 감독(최강희)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분 다 훌륭한 지도자다. 난 트라브존스포르와 계약이 1년 남았다. 그러나 최근 터키 축구 문제로 불편한 부분이 있다. 트라브존스포르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팀은 못보낸다고 하더라. 사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왔다. 계속 할건지, 안 할건지는 한국에서 돌아간 후 입장을 밝할 계획이다."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귀네슈 감독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팬이다. 어느 나라든 대표팀은 최고의 팀이다. 할 생각이 있다고 해도, 안 하겠다고 해도 욕먹을 일이다. 예, 아니오라는 답은 안하겠다. 한국이 스페인, 카타르와 경기를 앞두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되면 경기를 보고 싶다.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등 내가 키웠던 선수들은 늘 관심이 있다"며 "한국이 꼭 월드컵에 진출했으면 좋겠다. 대한축구협회가 나를 필요로한다면 그때가서 얘기하면 된다. 다만 한국 축구를 위해서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준비는 돼 있다"고 강조했다. 묘한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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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슈 감독은 "떠난 이후 상황을 잘 모른다"고 했지만 한국 축구가 손바닥에 있었다. 애정은 무한이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 생산한 소중한 자산이었다. 인연의 끈은 쉼표가 없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