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마침내 이루어진 아브라모비치의 꿈 '빅이어'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2-05-20 14:14


사진캡처=데일리미러 홈페이지

언제나 무뚝뚝한 그이지만, 이날만큼은 활짝 웃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마침내 염원하던 '빅이어(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빅이어'는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그가 갖지 못하는 딱 한가지였다. 집착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아브라모비치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한 6명의 감독에게 물어준 위약금만 무려 5000만파운드(약 924억원)가 넘는다. 결국 아브라모비치는 '빅이어'를 손에 넣었다. 첼시는 20일(한국시각) 독일 뮌헨 알리안츠아레나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1<4PK3>1)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이어진 굴곡은 그의 인생을 닮았다.

아브라모비치는 고아였다. 그의 부모는 아브라모비치가 4세때 러시아 정부의 권력싸움에 휘말려 숙청당했다. 권력싸움에 몰락한 가문의 고아였으나, 아브라모비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릴적부터 빼어난 사업수완을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구 소련의 몰락은 아브라모비치에게 기회가 됐다.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해진 틈을 타 인수합병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다. 석유회사를 비롯해 알루미늄, 천연가스 등 대기업을 거느리게 된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를 넘어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대재벌로 성장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채 40이 되지 않았다.

아브라모비치는 갑자기 축구로 눈길을 돌렸다. 2003년 아브라모비치는 첼시 빌리지의 주식 6000만파운드(약 1108억원) 어치를 매입한데 이어, 첼시가 갖고 있던 8000만파운드(약 1478억원)의 부채를 탕감하며 새로운 첼시의 주인이 되었다. 1억4000만파운드(약 2586억원)의 인수금액은 영국 역사상 최고액이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한 것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러시아 신흥재벌들이 '벼락 부자'의 이미지를 종식시키기 위해 문화, 예술계에 손을 뻗고 있을때 아브라모비치는 투자대상을 축구로 정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당시 러시아의 대통령이던 푸틴이 신흥재벌들을 제압하려 하자 외국에 투자함으로써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초 아브라모비치는 맨유의 인수를 원했지만, 빚이 많아 상대적으로 인수가 편하고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갖고 있던 첼시를 전격 인수했다. 원래부터 축구에 관심이 많던 그였지만, 당시에는 드물었던 재벌의 축구팀 인수에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졌다.

돈의 힘은 무서웠다. '돈으로 트로피를 살 수 없다'는 명제는 더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인수 첫 해였던 2003~2004시즌을 2위로 마친 첼시는 포르투를 유럽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끈 '스페셜원' 조제 무리뉴 감독을 데려오며 황금기를 맞이했다. 2004~2005시즌에 50년만의 리그 정상을 차지했다. 첼시는 단숨에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자리매김했다. 아브라모비치는 감독의 고유권한을 무시하던 다른 거부 구단주들과 달리 2선에서 지원에만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돈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지만, 아브라모비치 자체는 팬들의 호감을 얻었다. 그러나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계속된 실패는 아브라모비치를 변하게 했다.

아브라모비치는 2005년 AC 밀란의 특급 공격수 안드레이 셰브첸코를 당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액인 3000만파운드(약 554억원)에 영입했다. 아브라모비치의 독단적 결정이었다. 셰브첸코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명성과 다르게 부진을 반복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이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셰브첸코를 탐탁치 않아 하는 무리뉴 감독의 태도로 인해 아브라모비치는 그를 경질했다. 이 후 아브라모비치는 현장에 관여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실패한 감독은 가차없이 짤려나갔다. 아브라함 그랜트-펠리페 스콜라리-거스 히딩크-카를로 안첼로티-안드레 비야스 보아스가 거쳐간 첼시의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됐다. 무리뉴의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브라모비치는 세계 최고의 명장이라면 두 눈을 부릅키고 데려왔지만, 첼시가 가장 성공을 거뒀을때는 모두 '무리뉴식 축구'를 했을때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로베르토 디 마테오 축구는 전형적인 무리뉴식 4-3-3 축구였다.

아브라모비치가 '빅이어'를 들어올리기 위해서 지난 10년간 무려 8억6907만유로(약 1조29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썼다. 같은 기간 맨유가 쓴 4억4000만유로(약 6531억원)보다 2배나 많은 금액이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지만 아브라모비치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서 다시 한 번 거금을 투자할 것을 약속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팀의 리빌딩을 위해 젊은 선수들의 보강에 나설 예정이다. 팀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디 마테오 감독대행 대신 호셉 과르디올라나 히딩크 같은 명장을 데려올 생각이다.

아브라모비치의 등장은 세계 축구의 지형을 바꿨다. 오일달러를 앞세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맨시티와 파리생제르맹 등은 아브라모비치의 성공이 있지 않았더라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돈=성적'이라는 공식은 씁쓸하지만,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은 그의 열정만은 높이살 만 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