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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질설' 유상철 감독,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인내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2-05-02 10:43


유상철 대전 감독. 상암=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안 팎에서 나오는 얘기 때문에 너무 힘드네요. 스트레스 때문에 십이지궤양이 재발됐어요."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성적부진에도 '나아질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그가 아니었다. 유상철 대전 감독이 흔들리고 있다. 1승9패(승점3)라는 최하위 성적표에 '경질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새로운 사장이 선임되면 유 감독의 거취가 결정될 것이다'는 구체적인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유 감독이 대전을 맡은지 10개월만에 터진 일이다. 유 감독은 지난해 7월 승부조작으로 흔들리던 대전의 지휘봉을 잡았다. 모두가 말린 결정이었다. 유 감독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사석에서 함께 자리를 할때마다 "대전의 제의를 받고 갈등하고 있었을때 조금 더 기다려보라는 주위의 충고를 많이 들었다. 물론 K-리그 감독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축구로 누구보다 큰 혜택을 많이 받았기에, 시민구단서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뛰어보고 싶었다"며 대전 선택의 변을 밝혔다.

막상 대전에 직접 몸을 담궈보니 현실은 더 열악했다. 시설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대전을 둘러싼 수많은 말들이 그를 힘들게 했다. 대부분이 정치적인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입닿고 귀닿고 선수단에만 집중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1시즌을 3승3무6패의 성적표로 마쳤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유 감독은 원하는 선수만 보강된다면 해볼만하다며 자신했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김광희 전임 사장의 독선이 발을 잡았다. 전지 훈련지부터 선수 영입까지 의도대로 된 게 없었다. 한차례 전훈을 추가로 요청했지만 묵살당했고, 좋은 선수는 비싸다고 거절당했다. 멕시코 전훈을 위한 비행에서 선수단과 함께 이코노미석에 타는 불편도 감수했다. 열악한 시민구단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축구를 펼칠 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는 분위기는 참을 수 없다. K-리그 초보 감독을 데려다 놓고 10개월만에 성적을 내라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좋은 선수가 즐비한 팀도 아니고, 입맛에 맞는 선수도 영입하지 못한채 모든 책임을 감독에 돌리는 것은 아쉽다. 흔히 신임 감독이 새로운 팀을 맡아 자기 색깔에 맞는 축구를 구사하기까지는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팀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고 대전이 퇴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천의 설기현은 3월 대전과의 경기 후 "시민구단이라 멤버 구성 쉽지 않았을텐데 직접 경기를 해보니 선수시절 가지고 있던 치밀함을 감독이 돼서도 발휘하고 있다고 느꼈다"며 "주변의 여러 평가가 있지만 선수들을 통한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 대전은 좋은 축구를 하고 있고, 앞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유 감독의 능력을 칭찬한 바 있다. 유 감독도 한차례 반전의 계기만 있다면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팀을 믿고 있다.

유 감독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선수들도 분위기를 인지했는지 연습장에서 눈빛이 달라졌다. 수원, 포항과의 만만치 않은 일전이 기다리고 있지만, 할 수 있다는 의지는 놓지 않으려 한다. 내가 먼저 흔들리면 안되지 않겠나"며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 유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과 인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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