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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선수 멘토 최순호, 자살한 이경환을 생각하면...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4-30 21:47 | 최종수정 2012-05-01 10:42


◇최순호 FC서울 미래기획단장(오른쪽)은 지난해 11월부터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선수들의 사회봉사 프로그램의 멘토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보육원에서 진행된 사회봉사 프로그램 활동에 참가한 최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프로축구연맹

네덜란드 출장 중 언론을 통해 (이)경환이 소식(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돼 영구제명 징계를 당한 후 생활고를 못이겨 4월14일 자살)을 접했다. 올초 FC서울 미래기획단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을 한 나는 선진 유소년 시스템 구축을 위한 견학과 연구 차원에서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경환이는 올해 들어 사회봉사 활동에 참가하지 않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내성적인 친구였다. 내가 좀 더 다가가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듬어 줬어야 하는데 부족했다. '이게 내 한계인가'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늦게나마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환이가 여러모로 힘든 점이 있었을 것 같다. 한 순간의 잘못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와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됐으니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젊음을 채 펼쳐 보이지도 못한 나이 아닌가. 이번 일로 가족과 지인들이 받은 아픔을 조금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난해 11월 프로연맹 사회봉사 프로그램의 멘토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 싶어서였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의 중심을 잡아주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뜻 있는 이들도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그렇게 활동이 시작됐다. 쉽지는 않았다. 죄인 낙인이 찍혀 법의 심판대에 선 뒤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미래인 축구선수 자격을 박탈당한 마당에 쉽게 나설 수 없는게 당연했다. 활동 첫 날부터 대부분 극도의 긴장과 부담을 갖고 있었다. 언론에서 숱한 취재 요청이 왔음에도 모두 물린 이유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또 다시 관심을 받게 된다면 더 흔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이 됐고 봉사 활동을 하면서 얼굴에 희미한 미소도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들이 모든 부담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워 진 것은 아니다.


◇사회봉사 프로그램 초창기만 해도 참가 선수들은 극도의 긴장과 부담에 시달렸다. 최근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모든 부담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워 진 것은 아니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을 하곤 한다. 당장 '내가 뭘 해야 하지'라는 성급한 생각이 좌절감을 더욱 깊게 만들고 섣부른 선택을 부르는 법이다. 마음 깊이 반성하면서 속죄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축구는 선수만 하는게 아니다. 팬들도 하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팬들의 상처는 어떤 용서의 말로도 풀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면 노여움이 잊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수 시절 보다 더 피나는 노력으로 정직한 새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프로선수는 대략 35세를 기준으로 좀 더 뛸 수도 있고, 덜 뛸 수도 있다. 축구 외에 숨겨진 재능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저 다른 선수들보다 좀 더 일찍 은퇴한 것으로 생각했으면 한다. 자연스럽게 다른 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앞으로도 봉사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이들의 처벌을 경감시켜 달라는 차원의 행동이 아니다. 절실한 반성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갱생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 나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도 책임의식을 갖고 재활을 도와야 한다. 죄는 씻을 수 없지만, 이들의 인생은 '실패'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들이 모습을 지켜봐주길 바란다.
최순호 FC서울 미래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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