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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이천수' 박은선, "이제 성적으로 평가 받겠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2-03-25 12:58


◇박은선이 긴 방황을 마치고 WK-리그 서울시청으로 복귀했다. 22일 경기도 하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팀 연습경기에 참가한 박은선이 몸을 풀고 벤치로 들어서고 있다. 하남=박상경 기자

2012년 WK-리그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26일 충북 보은군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고양대교-현대제철전을 시작으로 열전에 돌입한다. 8개 실업팀이 참가하는 WK-리그는 개막전을 시작으로 10월 29일까지 연중 풀리그로 84경기를 치른다. 지난해 대교에 패권을 넘겨줬던 나머지 7개 팀들은 겨우내 칼을 갈며 대권 잡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중 유독 주목을 받는 한 팀이 있다. 중위권 전력 정도로 평가를 받던 서울시청이다. 최근 열린 WK-리그 미디어데이에서 모든 팀 감독들이 서울시청을 다크호스로 지목했다. 과연 이유가 뭘까.

'풍운아' 박은선(26). 여자 축구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박은선이 여자 대표팀에 첫 발을 내딪은 것은 불과 17세이던 2003년. 1m80의 체격으로 남자 선수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기량과 파워를 선보였다. 여자 축구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정신적 방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5년 여자 대표팀 소집훈련 기간 무단 이탈해 축구협회로부터 2년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서울시청에서 이탈과 반복을 거듭하면서 '여자 이천수'라는 달갑잖은 별명도 얻었다. 박은선은 2010년을 끝으로 WK-리그 무대에서 종적을 감췄다. 1년 6개월을 도매상, 스포츠용품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전전하면서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꿈꿨다. 하지만 돌고 돌아 지난해 11월 서울시청으로 복귀했다. 사회생활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박은선(가운데)은 본래 포지션인 최전방 공격수가 이닌 중앙 수비수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2일 경기도 하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남자 중학교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박은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었던 몸은 어느덧 한창 뛸 때의 상태로 돌아왔다. 포지션은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중앙 수비수로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100% 기량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서정호 서울시청 감독의 판단 때문이다. 박은선은 이날 풀타임을 뛰었다.

클래스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박은선은 명불허전의 기량으로 관계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남자 선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는 스피드와 위치선정, 점프력, 넓은 시야와 슈팅 능력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후반 중반 센터서클 부근에서 나온 프리킥 기회에서 서 감독은 재미있는 지시를 내렸다. "(박)은선이한테 줘. 마음놓고 해보라고 해." 박은선은 그자리에서 주저않고 오른발 슈팅을 날렸다. 낮게 깔린 볼은 골 포스트 오른쪽 부른에서 살짝 튀면서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은선의 위력을 확인하기는 충분한 장면이었다.

서 감독은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또 (박은선이) 기분이 붕 뜰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박은선은 담담했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중요하잖아요. 이제 제가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박은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여자 축구계와 WK-리그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소연(고베 아이낙)과 여민지(함안대산고) 등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한 후배들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톱 클래스의 기량을 갖춘 박은선이지만 또 엇나갈 경우 잊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박은선은 "지금은 1년 동안 팀에서 최선을 다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년 간 활약을 통한 결과로 평가를 받고 싶어요"라고 다짐했다. 마음을 다잡고 돌아온 박은선이 WK-리그 전체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가 될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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