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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놓치지 않는 김현성, 올림픽 보인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01-19 14:48 | 최종수정 2012-01-19 14:48


김현성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이번에는 네가 선발이다."

18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 선수대기실.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덴마크 A대표팀과의 2012년 킹스컵 경기를 앞두고 김현성(서울)에게 선발 출전을 명령했다. 김현성은 듣는 순간 '기회'임을 직감했다. 사흘 전 태국 A대표팀과의 2012년 킹스컵 첫번째 경기(3대1 승)에서 쐐기를 박는 팀의 세번째 골을 넣을 때도 상대 수비수의 실수를 '기회'삼았다. 덴마크전 선발 출전은 상승세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처음부터 김현성이 기회 잡기에 능했던 것은 아니다. 김현성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명문 동북중과 동북고를 거쳤다. 2008년 유스팀 우선지명으로 서울에 입단했다. 중학교 1학년 당시 무릎을 다쳐 2년간 재활훈련에 매진한 것 빼면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능력은 있었다. 하지만 근성이 부족했다. 전쟁이나 다름없는 주전 경쟁에 나서기에는 착하기만한 순둥이였다. 데얀과 정조국은 물론이고 입당동기인 이승렬에게도 밀렸다. 2년간 2군을 전전했다. 2009년 2군에서 6경기 출전 2골에 그쳤다.

2009년 시즌이 끝나고 김현성은 프로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상무 입대까지 생각했다. 2010년 시즌을 앞두고 기회가 찾아왔다. 2010년 대구에 부임한 이영진 감독이 김현성을 불렀다. 2009년까지 서울 코치로 있었던 이 감독은 김현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짐을 꾸려 대구로 내려갔다. 1군에서 뛸 수 있는 기회였다.

환경은 마련됐지만 쉽지 않았다. 대구도 주전 경쟁이 치열했다. 장남석과 송제헌 등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들도 버거운 상대였다. 2010년 김현성은 10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는데 그쳤다.

2011년을 앞두고 김현성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임대 기간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결과를 내지 못한다면 K-리그에서 더 이상 있을 곳이 없었다. 기본부터 다시 시작했다. 달콤했던 새벽잠을 줄였다. 개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 이 감독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행운도 따랐다. 시즌을 앞두고 주전 스트라이커 장남석은 상무에 입대했다. 처음에는 송제헌과 경쟁했다. 5월 들어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몇몇 선수들이 퇴출됐다. 선수가 모자랐다. 이 감독은 김현성을 중용했다. 경기 출전수가 많아지자 플레이도 좋아졌다. 대구가 원톱 전술로 바꾸면서 김현성은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했다.

8월 김현성의 상승세에 기름을 붓는 사건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9월 오만과의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전을 앞두고 올림픽대표팀의 강화훈련에 김현성을 불렀다. 생애 첫 대표팀 승선이었다. 강화훈련이 끝난 뒤 김현성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9월 9일 서울과의 K-리그 24라운드에서 2골을 몰아치며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이 촉매제였다. 올림픽대표팀 단골 멤버가 됐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처음에는 겉돌았다. 교체 출전과 결장을 반복했다. 반전은 11월 23일 오만과의 최종예선 원정경기였다. 0-1로 뒤지던 후반 22분 동점 헤딩골을 만들어내며 1대1 무승부를 이끌었다. 나흘 후 사우디아라바이와의 홈경기에서 풀타임을 뛰며 주전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덴마크전에서 김현성은 골을 넣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였다. 체격조건이 좋은 덴마크 수비수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았다. 활발한 움직임으로 찬스를 만들어냈다. 홍명보 감독도 "찬스를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고 만족했다. 남은 최종예선 3경기에서 주전 자리를 거의 확정짓는 순간이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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