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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2류 전락한 여자축구. 1년 만에 수직추락 이유는?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1-11-14 14:07 | 최종수정 2011-11-14 14:44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여자 축구는 1년 만에 아시아 2류로 추락했다. 지난해 10월 광저우아시안게임 북한전에서 실점한 여자 A대표팀 선수들이 허탈해 하는 모습. 스포츠조선DB

내년 세계 여자 축구 무대에 한국의 자리는 없다.

2012년에 런던올림픽과 20세 이하,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등 굵직한 여자 축구 이벤트가 줄줄이 열린다. 그러나 한국은 단 한 개의 대회도 출전하지 못한다. A대표팀이 나선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비롯해 20세 이하 대표팀이 출격한 아시아선수권에서도 모두 실패를 맛봤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17세 이하 월드컵 출전도 13일(한국시각) 중국 지난의 장닝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홈팀 중국과의 아시아선수권 최종전에서 득점없이 비기면서 물거품이 됐다. 각급 대표팀이 단 한 개의 세계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한국이 모든 대회에서 고개를 숙인 반면 경쟁국 일본과 북한은 3개 대회 모두 본선에 출전했다. 충분히 제압할 것이라던 호주, 중국은 각각 올림픽과 20세, 17세 이하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3개 대회에서 이들 4개국과 치른 경기 전적은 12전 2승3무7패에 불과하다. 한국이 20세 이하 월드컵 3위,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1년 만에 추락해 '아시아 2류'가 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자연맹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오규상)은 대표팀 운영과 담을 쌓고 있다. 대표 선수 선발과 운영은 전적으로 대한축구협회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여자연맹이 대표팀 운영에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불과 3년 전에는 여자 대표팀 전반을 여자연맹이 주도했다. 축구협회는 상급단체 자격으로 여자연맹이 추진하는 안을 승인해주는 선에 그쳤다. 그러나 2009년 집행부가 교체된 이후 여자연맹은 대표 선발 및 팀 운영 권한을 축구협회에 넘긴 채 뒷짐만 지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WK-리그에 집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WK-리그의 현실은 어떨까. 척박하기만 하다. 대표팀의 근간이 돼야 할 WK-리그는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한해 총 관중이 5만명도 되지 않는다. 경기 당일 경기장이 바뀌는 일도 있었다. 지소연(20·고베 아이낙) 여민지(17·함안대산고) 같은 스타가 대표팀에는 있지만, WK-리그에선 선수 이름조차 낯설다. 여자연맹은 각 팀이 문제를 알아서 해결하기를 바라는 모습마저 드러내고 있다. 여자연맹 구성을 들여다 보면 실무자 그룹은 10명이 채 안되는데 부회장단은 8명, 이사진은 10명이다. 일을 하는 사람보다 결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렇다보니 제대로 된 사업 추진이 될 리가 없다. 그때문에 오히려 일부 실업팀의 행정이 여자연맹보다 낫다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한 축구계 인사는 "현 회장 체제에서 여자연맹의 역량이 급감한 측면이 있다.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전임 집행부가 일궈놓은 노력의 결실만 취하다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축구협회도 책임 있다

상급단체인 축구협회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선수들이 맨몸으로 나가 혈전 끝에 얻은 성과에 박수만 쳤을 뿐, 가능성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을 때 축구협회에서 내민 것은 선수와 코칭스태프에 대한 포상금이 전부였다. 이후 각급 대표팀의 목적없는 소집훈련만 늘어났다. 대회를 5달여 앞두고 매달 한 번 꼴로 파주NFC에 선수들이 소집되는 일이 반복됐다. 최상위 팀인 여자 대표팀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3월 키프로스 4개국 대회와 6월 일본 원정 경기가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비의 전부였다. 그나마 언니들은 나은 편이었다. 19세 이하 대표팀은 이번 아시아선수권 전까지 제대로 된 평가전 한 번 치러보지 못했다. 소집 기간 중 중학교 팀과 연습경기를 치른 것이 고작이다. 기술위원회 차원의 전력 분석이나 보완점 마련이 이뤄져도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제대로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하부단체인 여자연맹이 대표팀을 끌고 갈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이 잘 갖춰진 축구협회가 지도 또는 관리를 했어야 했다. 1999년 일부 지도자들이 여자연맹 창설 움직임을 보이자 축구협회는 강경 대응하면서 주도권 싸움을 벌인 바 있다. 당시 전무이사 자격으로 축구협회를 이끈 인물이 조중연 축구협회장이었다.


선수들, 근거없는 자신감 버려라

최근 몇 년간의 발전상에 장밋빛 꿈만 꾸는 일부 선수들의 자세도 고쳐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랭킹에서 한국은 16위다. 아시아에서는 일본(4위) 북한(8위) 호주(10위)에 이은 4위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아시아에서는 일본 외에 어떤 팀과 붙어도 해 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광저우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이번 17세 이하 아시아선수권까지 거둔 성적을 보면 아직까지 한국은 도전자 신세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지소연과 여민지조차 아직까지 아시아권 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다. 여자 축구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한국은 아시아 무대에서도 약자다. 지난해 성적은 실력 외에도 운이 따랐기 때문에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하고 있다. 때문에 오히려 이번 실패가 앞만 보고 달렸던 한국 여자 축구의 현실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거품을 빼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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