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6강 PO의 마지노선인 5, 6위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5위 울산(승점 45·13승6무10패)과 6위 부산(승점 43·12승7무10패)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두 팀은 자력으로 6강 PO에 오를 수 있다.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되고, 부산은 승리하면 밑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반면 패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7위 경남(승점 42·12승6무11패·골득실차 +4·다득점 41), 8위 전남(승점 42·11승9무9패·골득실차 +4·다득점 32)이 대반전을 노리고 있다. 9위 제주(승점 40)도 산술적으로는 6위가 가능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순위는 승점→골득실차→다득점 순으로 결정된다. 운명의 최종전은 수원-제주, 서울-경남, 울산-대구, 부산-강원, 전남-전북전이다. 스포츠조선 구단별 담당 기자들이 '안갯속' 6강 마지막 전쟁의 키포인트를 꼼꼼히 짚었다.
민창기 박재호 전영지 김성원 김진회 하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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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제주전의 열쇠는 수원 염기훈(28)이 쥐고 있다. 요즘 수원은 염기훈의 왼발이 좌지우지한다. 빠르고, 발재간 있고, 돌파 되고, 슈팅 되고. 다재다능한 염기훈이지만 늘 아쉬움이 있었다. 수 많은 별명 중 하나는 '유리뼈'. 축구 좀 할만하면 다쳤다. 주위에선 염기훈을 두고 '입맛 돌자 쌀 떨어진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랬던 염기훈이 올시즌을 풀로 소화하고 있다. 정규리그 26경기에서 9골-11도움을 기록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골을 넣었고, FA컵에서는 도움 해트트릭까지 했다.
염기훈은 올시즌이 끝나면 K-리그를 떠난다.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경찰청 축구단에 입단한다. 이번 제주전은 염기훈의 고별전이다.
수원도 염기훈 만큼이나 절박하다. FA컵 우승 문턱에서 준우승에 머물렀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는 4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경기 외적인 요인(오심, 난투극)으로 인해 심리적인 허탈감은 두배, 세배다.
염기훈은 두 가지 숙제와 싸워야 한다. 체력적인 부담과 시차 적응이다. 카타르 원정에서 돌아와 이틀만에 경기에 나선다. 또 약 40경기를 뛰어 체력은 바닥이다. 윤성효 수원 감독이 지난 23일 광주 원정에 한 차례 휴식을 줬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수원이 염기훈에게 기대하는 것은 세가지다. 주장으로서의 리더십, 왼발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찬스 만들기와 골결정력, 마지막으로 위기상황에서의 해결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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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환희와 아픔이 교차했다. 마지막 사투가 남았다. 대행 꼬리표의 운명도 걸렸다.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의 목표는 분명하다. 3위 탈환이다. 라이벌 수원과의 3위 싸움이기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최종전에서 격돌하는 적장인 최진한 경남 감독은 어제의 동지다. 그는 서울의 18세 이하 팀인 동북고 감독을 거쳐 지난해 2군을 지휘했다. 올시즌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둘은 서울의 역사다. 1990년과 2000년 우승 당시 팀의 간판으로 나란히 MVP를 수상했다. 옛 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최용수 감독은 올시즌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썼다. 4월 26일 불쑥 지휘봉을 잡았다. 황보관 전 감독이 자진사퇴하자 선장이 됐다.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악조건을 뚫고 초보 감독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형님+긍정 리더십'으로 주목받았다. 정규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FA컵, 컵대회에서 31경기를 치러 19승5무7패의 성적을 거뒀다. 올시즌 K-리그 최다연승인 7연승도 기록했다. 한때 15위까지 추락한 팀을 4위에 올려놓았다.
유종의 미다. 3위를 차지해야 6강 PO에 이어 준PO를 안방에서 치를 수 있다. 최 감독은 수원과 골득실에 이어 다득점까지 경쟁해야 하는 만큼 경남전에서 대량득점을 노리고 있다. 그는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선수들을 믿는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위를 차지해 준PO를 서울의 만원관중 앞에서 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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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곤 울산 감독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선수가 프로 2년차 박승일(22)이다. 베테랑 선수가 많은 울산은 노련한 경기 운영이 강점. 반면, 공격 전개 속도가 느려 역습 찬스를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울산에서 박승일은 군계일학이다.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인 박승일은 우선 빠르다. 총알 스피드를 앞세운 오른쪽 측면 돌파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돌파에 이어 크로스, 상대 수비 뒷공간 침투로 끊임없이 찬스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2군에만 머물렀던 박승일은 시즌 중반 고창현의 부진을 틈타 주전으로 도약했다. 9월 17일 상주전, 9월 24일 인천전에서 연속골을 터트려 팀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고, 6강 싸움의 고비였던 지난 주 부산전(1대0)에서 고슬기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김 감독은 "볼터치가 거칠고 패스가 안정적이지 못했는데, 본인이 노력을 통해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예전에는 패스를 한 후 멍하니 지켜보는 습관이 있었지만 이제는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 지 알고 플레이를 한다"고 칭찬했다.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가 주축을 이룬 대구는 울산보다 빠르고, 패기가 넘친다. 이런 대구를 맞아 울산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가 박승일이다. 고창현이 왼발목 부상으로 출전이 어려워 박승일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커졌다.
비기기만 해도 6강 진출이 가능한 울산이다. 그러나 방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감독은 "전반기 대구전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뒀는데,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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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오른쪽 측면 수비수 김창수(26)는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7년 3월 우루과이전 때 생애 첫 A대표로 발탁됐던 김창수는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을 대비한 동계훈련부터 주목받았다. 이후 세차례 더 A대표팀에 소집되면서 치열한 주전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2009년 6월 2일 오만과의 친선경기 이후 잊혀졌다. 꿈에 그리던 월드컵 무대를 밟는데 실패했다. '와신상담'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던 그가 올해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안익수 감독을 만나면서 다시 날개를 폈다.
김창수는 물샐 틈 없는 수비 뿐만 아니라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활발한 오버래핑이 일품이다. 게다가 부산의 변형 수비진의 핵심이다. 공격시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올시즌 초반 어떨결에 주장 완장을 떠맡았지만, 팀을 6강 마지노선까지 끌어올렸다. 안 감독은 "김창수는 내가 조언을 하지 않는 선수 중 한명이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간 것은 온전히 본인의 노력이다.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부산에는 6강 PO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없다. 부산은 2005년 전기리그 1위 이후 6년간 '가을잔치'를 즐기지 못했다. 그 기간 세대교체가 단행되면서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로 팀이 꾸려졌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부산 선수들이다. 젊은 패기로 리그 꼴찌 강원을 꺾고 6강의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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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운명이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꼭 넘어야 할 상대가 친정팀 FC서울이다. 하지만 차라리 잘 됐다. 상대를 알면 공략 방법도 쉽게 떠오르는 법.
지난해까지 서울 2군 감독을 지낸 최진한 감독은 "내가 서울을 잘 안다"며 운을 뗐다. 서울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가장 먼저 '데얀 봉쇄령'을 내렸다. 그는 "서울의 공격은 데얀만 막으면 된다. 공간을 내주면 안된다. 데얀은 거친 수비를 싫어하니 이런 점을 생각하고 플레이를 하겠다"고 밝혔다. 중앙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에게는 "데얀이 많이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촘촘히 수비해야 한다. 경고를 받더라도 적극적으로 밀착 마크하라"는 특별 주문까지 했다. 정규리그의 경고는 6강 플레이오프까지 승계가 되지 않는다. 최 감독은 "우리는 발이 빠르고 공간 침투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최근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윤일록을 앞세워 서울의 뒷공간을 침투하겠다"고 했다.
기분 좋은 징후도 많다. 최 감독의 고향인 진주에서 경기가 열리는데다 창원을 벗어나 치른 홈경기에서 최근 12경기 연속 무패(6승6무)다. 또 홈에서 서울만 만나면 유난히 신을 냈다. 6경기 무패다.
최 감독은 지난해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에게 선전포고 했다. "서울 홈(5월 15일 3대1 서울 승)에서는 우리가 졌지만 이번에는 절대 패하지 않는다. 용수, 네가 선배에게 양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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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은 지난 3월 6일 K-리그 개막전에서 '난적' 전북을 만났다. 원정경기에서 보란듯이 1대0 승리를 꿰찼다. 올 시즌 전북이 허용한 단 3패 중 첫 패배는 전남 탓이다. 전남 유스 출신 공영선이 깜짝 결승골을 터뜨렸다.
전남은 10월 30일 K-리그 최종 라운드에서 다시 '난적' 전북을 만난다. 직전 경기인 포항전에서 2명의 선수가 퇴장 당했다. 6강행을 향한 목숨 건 사투였다. 그 결과 중앙 수비수 코니, 왼쪽 수비수 이 완, 공격수 이종호 등 3명이 전북전에 나설 수 없다. 최강의 공격진을 갖춘 전북에 맞서야 할 '리그 최소 실점(28골)' 전남 포백 라인에 구멍이 생겼다. 이번에도 '전남 유스' 출신 윤석영(21) 황도연(20) 유지노(22)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윤석영과 황도연은 홍명보호의 주전 수비수들이다. 28일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2차전 카타르 원정을 앞두고 발표된 올림픽대표팀 명단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탄탄한 수비력과 함께 예리한 킥력, 헤딩력을 두루 갖췄다. 올 시즌 후반 '왼발의 스페셜리스트' 윤석영은 허리 자원이 부족한 전남에서 익숙한 자리인 왼쪽 풀백 대신 미드필더로 뛰었다. 제몫을 톡톡히 했다. 황도연은 9월 25일 코니를 대신해 선발출전한 성남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전북전에서도 코니의 공백을 깔끔하게 메울 각오다. 1년차 선후배는 올 시즌 시련도 쌍둥이처럼 함께 했다. 황도연은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코뼈 부상으로 중도하차했다. 지난 9월 윤석영은 올림픽대표팀의 오만 평가전에서 코뼈 골절로 쓰러졌었다. 마스크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이겨야 사는 경기다. 첫 승부에서 그러했듯 마지막 승부에서도 '전남 유스의 이름으로' 6강행을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