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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용 "은퇴경기, 승리하면 춤 추겠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1-10-19 12:50


◇현역 은퇴를 앞둔 이을용이 19일 강릉 강원FC 숙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이을용(36·강원)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1998년 부천SK(현 제주 유나이티드)를 통해 데뷔했으니 13년 만에 프로 무대를 떠나는 셈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에도 성실함과 터프함으로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나름 성공한 축구 인생의 1막이었다. 고향인 강원도(태백)를 연고로 하는 강원FC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것이니 마무리도 괜찮다. 바닥인 팀 성적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릴 뿐이지만, 내년에 후배들이 더 잘 해 줄 것이라는 믿음 속에 유니폼을 훌훌 벗기로 했다.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대학 졸업 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축구를 관두고 나이트클럽에서 '조용필'이라는 이름을 달고 서빙을 봤던 시기가 있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실업축구 한국철도(현 내셔널리그 인천 코레일)에 입단했으나, 월급 84만원의 일용직 신분이었을 뿐이다.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서야 비로소 프로 입단 기회가 돌아왔다. 한-일 월드컵을 마친 뒤 트라브존스포르(터키)로 이적했으나, 친정팀과 이적 분쟁에 휘말려 1년 만에 귀국하는 아픔도 맛봤다. 이후 다시 터키로 건너가 해외 경험을 쌓았다. K-리그 최고의 여건을 갖춘 서울에서 뛰다 신생팀 강원으로 옮겨왔다. 말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23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질 대구FC와의 2011년 K-리그 29라운드를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는 이을용은 사실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1주일 전부터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데 좀처럼 낫지를 않고 있단다. 이을용은 "선배들 은퇴할 때는 '언젠가는 나도 저럴 때가 오겠지'라고 했는데, 내가 그런 처지가 되니 선배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조금씩 싱숭생숭하긴 하다. 과거에 운동을 어떻게 했고, 오래 해왔구나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하는 첫째(이태석)가 '은퇴 뒤에 뭐 할 것이냐 묻더라. 지도자로 나선다고 하니 '이제 그럼 나도 축구 가르쳐주겠네'라고 했는데, 조금 짠하더라"고 웃었다.

사실 이을용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명 '을용타'다.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의 제1회 동아시아축구선수권에서 리 이의 거친 마크에 뒤통수를 가격, 퇴장 당한 적이 있다. 당시 팀을 위기로 몰아넣은 행동이지만, 팬들에게는 오히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당시 한국 내에서는 중국이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통합하는 작업인 동북공정으로 감정이 상해 있던 차였다. 이후 이을용을 말할 때 '을용타'는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됐다. 이에 대해 이을용은 "사실 경기 중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을 일이었다. 이후에 여기저기서 많이 알아봐주시더라"고 웃었다. 인터넷 패러디가 싫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래도 나 하나 덕에 온 국민이 즐거워했으니 좋은 일 아닌가. 내 인생에 적어도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본 시기였던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을용은 터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며 축구인생의 2막을 열 계획이다. 18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인터뷰 중인 이을용. 강릉=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이을용은 동료들 중 경기 중 거친 말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의 좌우명인 '참된 인격 속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자'는 말과는 조금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이을용은 "지키려고 노력은 많이 했다. 어릴 때는 흔들림이 없었는데 고참이 되어 팀을 이끌려고 하니 지고 있을 때는 후배들에게 인격적으로 잘 못해준 것 같다. 본의 아니게 악역을 많이 했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경기 뒤에 후배들에게 경기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다. 나는 뒤끝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을용에게 올 한해는 지옥과 다름 없었다. 연패와 사령탑 교체, 주장의 부상으로 대타를 하는 등 갖은 일을 겪었다. "3시즌 간 많은 공부를 했다. 나 뿐만 아니라 강원 선수단 모두가 그렇다. 팀이 힘들 때는 총대도 많이 매어 봤다". 경기가 안풀려서 홀로 눈물을 삼킨 적도 있다. 이을용은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생각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지니까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복받쳤다"고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이쯤되면 은퇴가 속 시원할 만도 한데 이을용은 강원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팀이나 해외서 선수 생활을 할 때 강원도에 프로팀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이 생각했다 것 자체가 좋은 일이었다. 만약 팀이 생기면 선수생활을 강원도에서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올 시즌 꼴찌인 강원에게 2012년은 중요한 해다. 스플릿 시스템에서 전력이 빈약한 강원은 하부리그 추락 0순위로 꼽히고 있다. 기량적인 측면보다 선수들을 한데 끌어모으는 맏형 이을용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이을용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올해 모든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보다는 (정)경호나(김)진용이가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출발을 위해 택한 도전의 무대는 터키다. 2002~2003년과 2004~2006년 두 차례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니 이번에만 터키땅을 밟는게 3번째다. 터키 생활 때와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귀네슈 감독의 존재가 컸다. 이을용은 "터키에서 축구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귀네슈 감독도 서울 시절 은퇴 뒤 지도자 연수를 받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더니 혼쾌히 허락해줬다. 이번에 다시 전화를 했더니 언제 올건지 이야기 해달라고 재촉하시더라. 내년 1월 넘어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귀네슈는 신사적인 사람이고 축구에 대한 열정도 크다. 특히 선수들의 능력을 잘 끄집어 낸다. 선수들이 감독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며 "요즘 서울이 호성적을 거두는 이유도 최용수 감독대행이 귀네슈 스타일을 배우고 접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구전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는 이을용은 "마지막 순간까지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아직은 프로선수이니 이기는 것이 내게는 최고의 은퇴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팀과 나를 생각한다면 열심히 하지 않겠냐"면서 의미심장한(?) 미소 속에 후배들의 분전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깜짝 선언을 했다. 대구전에서 승리하면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 춤을 추겠다고 했다. "몸치인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지만, 팬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면 하겠다. 후배에게 열심히 배워보겠다".
강릉=박상경 기자 kazu1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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