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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칸 인터뷰]"분노하는 청춘"…이창동, '버닝'의 미스터리를 말하다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8-05-18 08:22



[스포츠조선 칸(프랑스)=이승미 기자] 8년만에 새 영화 '버닝'를 들고 또 다시 칸 영화제의 극찬을 받은 '칸이 사랑하는 거장 감독' 이창동. 전작을 통해 비틀린 인간 군상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 했던 그는 왜 하필 지금, 그리고 이 시점에서 청춘의 이야기를 꺼내든 걸까.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창동 감독의 8년만의 신작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 파인하우스필름 제작)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스크리닝을 통해 전 세계 영화인들에게 공개되자마자 유력 영화지에서 최고 평점을 받고 세계 영화인과 언론의 극찬을 이끌며 황금종려상에 한발자국 다가갔다.

"모든 게 완벽한 마스터피스"라는 평가를 받은 '버닝'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 온 세 젊은이 종수(유아인), 벤(스티븐연), 해미(전종서)의 만남과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통해 불타버린 청춘의 공허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공식 스크리닝 바로 다음 날인 17일 이창동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왜 하필 청춘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는지, '버닝'을 통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떤 것인지 설명했다.

<*다음 내용에는 영화 '버닝'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이청준 작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밀양'으로 지난 2006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기도 했던 이 감독은 이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택한 이유에 대해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한 부분이 영화적인 다른 미스터리로 확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에는 일본 NHK 방송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었다. 난 내가 아닌 젊은 감독들에게 연출의 기회를 주고 나는 제작만 맡으려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중 '버닝' 시나리오를 함께 쓴 오경미 작가가 내게 함께 영화화 하자고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이 작품은 쉽게 영화화 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소설 속의 미스터리를 요즘 젊은 이들에게 확장시킬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닝' 속 주인공인 종수는 분노를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폭발되지 않는 분노이지만 가슴 속에 언제나 분노를 내재하고 있고 결말에 가서는 그 분노가 폭발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창동 감독은 '분노'라는 감정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마음에 분노를 품고 있다. 종교, 국적 인종에 상관없이 분노가 분노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굉장히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요즘 분노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분노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과거에는 분노의 대상도 이유도 분명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점점 세련되어 지는 데 젊은 이들은 세상과 반대로 자신의 미래를 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젊은 이들에게는 이 세계가 분노로 보일거라 생각했다."

'불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버닝'. 영화 속에서는 무엇인가 불타는 구체적인 장면이 딱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허름한 비닐하우스가 불타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부의 상징인 고급 승용차인 포르쉐가 불타는 장면이다. 이창동 감독은 명백하게 대비되는 이 장면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비닐 하우스는 한국에서 농사를 짓는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종수가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는 어린 자신에 대한 꿈을 꾸는데, 종수는 불 타는 비닐하우스를 보고 마치 자신을 보는 느낌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포르쉐가 불타는 장면은 정반대, 극단에 있는 장면이다. 포르쉐는 알 수 없고 바라고 원하지만 손에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서울의 가장 고급스러운 동네에 살고 있는,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지만 돈은 아주 많은 젊은 개츠비 같은 사람들이 불타고 있는 이미지인 것이다. 자신의 공간이 타고 있는 것. 그리고 분노의 대상이 타고 있는 것을 대비하려 했다."
이창동 감독은 마치 불이 타는 듯한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해미(전종서)가 웃옷을 벗고 춤을 추는 장면에 담긴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분노를 품은 무력한 젊은 이와 돈과 능력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이는 정체 불명의 사나이이자 자기 자신을 뭐든 지 할 수 있는 신처럼 생각하는 남자, 이 두 남자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리고 한 여자(해미)는 그들 사이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여자는 두 사람과 달리 혼자서 늘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라는, 그야말로 자연의 신비 안에서 혼자 삶의 이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인 것이다."

'버닝'에는 불타는 비닐하우스 말고도 중요한 공간이 등장한다. 바로 남산 타워가 바로 내다보이는 해미의 작은 자취방이다. 이 방안에서 종수는 해미와 사랑의 행위를 했고, 해미가 없는 사이에는 그 안에서 자위를 했다. 또한 소설가를 꿈꾸는 종수는 그 안에서 마침내 자신의 소설을 써내려 간다. 작은 자취방, 그 안에서 사랑을 하고 자위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꿈꾸던 소설을 써내려가는 종수의 모습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
"남산타워의 또 다른 이름은 서울타워다. 서울타워는 어느 대도시에나 있을 법한 그랜드마크이며 광관객들이 가장 먼저 가보는 공간이다. 해미는 그런 서울 타워 바로 밑에 살고 있다. 그 좁은 방에는 서울타워에서 반사된 햇빛이 들어온다. 그 서울 타워와 작고 가난한 여성이 살고 있는 방과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작은 방안에서 남녀는 가난한 섹스를 한다. 그리고 해미가 없는 종수는 요즘 젊은 이들이 그러하듯 홀로 섹스, 즉 자위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해미가 없는 그 방안에서 마침내 한 편의 소설을 써내려가게 되는데, 과연 종수가 쓴 소설은 무엇인지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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