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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쓰는 노트 속에서/ 거미 한 마리가 죽었다/ 거기를 왜 들어갔을까/ 피도 없는 놈이/ 무슨 말을 하고 죽었을까…)'('거미의 죽음')
'…옥녀봉 큰 길 위/ 도리깨질이 난무하다/ 박자를 못 맞추고는/ 도리깨를 탓하는 두 노인/ 어쩌다 땅바닥을 내리치면/ 내 손이 쩌렁/ 아픔이 밀려오고…'('들깨를 털며(2)')
고교 시절부터 시를 써온 박원정 시인은 그동안 신문과 시 전문지엔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해 왔다. 시집 발간은 이번이 처음으로 최근작들과 시작노트에 있던 작품 등 20여 편을 선보인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 사람으로서 현실을 고발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지식인의 이중성을 풍자한 '교수님과 목사님', 박종철 군의 죽음을 노래한 '거미의 죽음', 두 모자의 탈북 실패기인 '아리나래(2)', 세월호를 보면서 쓴 '뜨지 않는 배(20150416)' 등이 그것이다. 아울러 정겨운 시골생활과 자연에 몰입하면서 자기의 성찰을 깨우쳐가는 자서전 같은 시들도 여러 편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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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정 시인은 "늦게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면서 "그러나 나의 아픔이 모든 사람의 아픔일 수 있다는 것에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 이종수 시인은 "시인은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다. 시대를 외면하면 안 되는 사상과 실천 정신을 가졌음을 세 분의 시에서 느낀다"면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현실이라는 골목을 지나 큰 길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며 시의 고삐를 바짝 당겨본다"고 평했다.
한편, 오는 30일 서울 부암동 무계원에서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