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세계를 움직이는 패션인②] 발상의 전환이 불러온 트렌드, 베트멍·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양지윤 기자

기사입력 2017-05-08 12:04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양지윤 기자] 과감하게 늘어진 소매, 기워놓은 듯 무심하게 디자인된 데님 팬츠, 물류회사 유니폼처럼 생긴 티셔츠, 두 사람도 품을 듯 큼지막한 오버핏 코트. 어쩌면 우리 중 반 이상은 베트멍의 옷을 처음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 했을지 모른다.지금 우리의 인식은 정반대다. 가로 저었던 고개는 끄덕끄덕으로 바뀌었다.

인류 역사 속 위대한 진보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뒤집을 때 등장했다. 뎀나 바잘리아도 이 단순한 원리에 자신을 기댔다.


사진=베트멍
그는 1981년 구 소련 연방의 한 식구였던 '조지아(그루지야)' 태생이다.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패션을 공부했고, 해체주의로 잘 알려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시작으로 루이비통, 마크 제이콥스 등에서 7년간 일했다. 이 때 '베트멍'을 함께 일으킬 동료들을 만난다. 베트멍은 2014년 런칭 때부터 패션계에서 역대급 주목을 받았다.


사진=베트멍
베트멍은 소위 고가 명품 브랜드로 자신을 과시하는 '스노비즘'과 '스웨그'를 외치며 자신만의 느낌적인 느낌을 추구하는 스트릿 트렌드 '힙스터리즘'을 연결하며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맛보게 했다. 아주 비싼 명품 브랜드가 반대편 끝에 있는 대중 브랜드와 손을 잡는 식이다.

이런 극단적인 컬레버레이션으로 평소 관심을 그리 받지 못하던 브랜드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거듭났고, 소위 '명품'이라는 자들은 베트멍 방식을 너도 나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럭셔리 브랜드는 럭셔리해야 한다는 관념을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진=베트멍
베트멍은 컬렉션도 가만두지 않는다. 기존 방식을 철저히 탈피한다. 컬렉션은 1년에 딱 두번, 남녀의상을 한번에 모아서 진행하며, 그 외 컬렉션에는 관심을 껐다. 그나마 여는 컬렉션도 기존 메이저 패션위크 기간을 피해서 1월에 봄/여름 컬렉션을, 6월에 가을/겨울 컬렉션을 연다. 쇼에 나온 옷을 그 해에 바로 입을 수 있도록 해, 할인을 줄이고 판매량도 높였다.


사진=베트멍

사진=베트멍
뎀나가 뒤집은 것에는 '쇼'도 포함된다. 전문 모델 선정과 컬렉션 장소 등 기본적인 것부터 뒤집었다. 그는 먼저 SNS 팔로워, 어쩌다 알게 된 어르신, 베트멍 디자이너들의 친구 등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내세웠다. 하이엔드 브랜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다. 또 교회, 나이트 클럽, 중국 레스토랑 등 전혀 낯선 장소를 선택하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뎀나의 행적들을 이런 저런 것들로 장황하게 설명해 봤자다. 그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패션계는 재미가 사라졌다. 우리는 뭔가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싶다. 우리는 작은 브랜드이고 그래서 기존 프레임에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옷을 사도록 하는 것이니까"라고 말한 것에서 어떤 마음으로 베트멍을 대하는지 엿볼 수 있다.


사진=베트멍

모든 것을 뒤집어온 뎀나. 의상 디자인에서 만큼은 사람들이 으레 잊고 있었던 당연한 기본들을 오히려 뒤집지 않고 매우 충실하게 지켰다. 새로운 옷을 만든답시고,이질적인 새 장르를 창조하지 않았다. 또 다른 패션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현실이 아닌 동화를 만들어선 안된다"며, "소비자들이 입고 싶어하는 후드나 갖고 싶어하는 드레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실'과 '입고 싶어하는'이다. 그는 티셔츠, 청바지, 후디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소재로 삼았다. '현실적'이면서도 '남과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소비자 심리에 충실한다.

그는 자신을 패션디자이너가 아닌 '제품디자이너'라 칭한다. 한 의상을 완벽하게 꾸미는 드레스 업 시간이 20분 이상 소비되면 컬렉션에서 아예 배제해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힘든 옷이면 남과 다른 어떤 옷이라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일까. 예술과 실용사이 경계에 서 있는 그를 발견한다.


사진=베트멍
그렇다면, 뎀나는 기본적인 소재들을 어떻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디자인으로 승화시켰을까? 바로 해체주의다. 그는 한 때 몸담았던 해체주의 패션의 대명사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주 언급된다. 기존 의상의 재활용과 끊임없는 해체 후 재가공은 마르지엘라의 근본이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등 숱한 명디자이너들이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받았고, 뎀나의 해체주의 또한 마르지엘라를 거쳐 평가받곤 한다. 그러나 둘의 작품은 비슷한 구석이 일부 있을 지언정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다.

누가 '해체주의 패션의 원조' 타이틀을 가질 것이냐는 질문에는 뎀나가 손을 못 들겠지만, '해체주의 패션의 집대성'을 꼽자면 뎀나가 적임자다.

"난 제품 디자이너고 새로운 패션을 창조한다거나 개념적인 척하지 않아요. 우리는 그냥 실생활에 맞게 다양하게 입을 옷을 만들 뿐이죠. 마르지엘라와 아주아주 다른 게 그거예요"

그의 해체주의는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스케치를 하다 나온 게 아니다. 뎀나는 자기 아이디어를 은밀하게 기록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빈티지한 옷이나 저렴한 새 옷을 뜯고 붙이는 작업을 반복하며 디자인 한다. 옷의 움직임을 보기 위해 마네킹이 아닌 사람에게 입히며 작업을 진행하는데, 옷은 사람이 입었을 때 본질적이라는 점을 중시한다.


사진=베트멍
'옷은 사람이 입는 것'에서 연결되는 게 바로 '태도'다. 뎀나가 베트멍을 얘기할 때 늘 '태도'를 강조한다. 베트멍 자신도 그 태도가 어떤 것인지 숱한 인터뷰에서도 정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옷을 입을 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베트멍다운' 어떤 태도가 있다고 한다. 그는 그냥 '태도(attitude)' 그 자체로 정의한다.

태도를 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은 물류회사 'DHL' 로고을 입힌 티셔츠다. 2016 S/S 컬렉션에서 무려 38만 원짜리 가격표가 붙었으나 완판됐다. 이 티셔츠를 입은 사람은 남들에게 '택배 회사 직원'이라는 인식을 준다. 정작 착용자는 '베트멍만의 재미있는 패션 철학'이라는 메타 프레임을 직접 자기 목에 건다. 베트멍의 대표작 플로럴 드레스, 바머 재킷, 후디 등도 마찬가지다. 베트멍을 입는 사람들이 갖는 고유한 태도가 확실히 존재한다. 덕분에 뎀나는 패션계의 마르셸 뒤샹 (변기 오브제로 '샘'이라는 이름을 붙인 예술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사진=발렌시아가
뎀나는 베트멍 설립 3년 만에 발렌시아가의 디렉터로 발탁된다. 그의 전매특허 시그니처 디자인인 오버사이즈 실루엣, 거칠게 비대칭 배율, 비비드한 컬러감이 발렌시아가를 물들였다. 그 만의 런웨이를 선보임과 동시에, 모두에게 인정받는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발렌시아가의 디자인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그래도 그가 생각한 발렌시아가의 아이덴티티, 브랜드가 가진 순수함 그 자체를 기성복 컬렉션으로 승화됨을 보여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진=발렌시아가
뎀나 바잘리아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 패션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레트로 감성, 힙스터리즘, 해체주의, 로고 플레이 등 우리에게 친숙했지만 새로운 시각으로 재탄생된 그의 상상력은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그의 터치로 재탄생된 의상들은 어디서 본 듯한 데자뷰의 느낌을 넘어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미래로 나아갈 뎀나 바잘리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도, 따라할 수도 없을 것. 앞으로 그의 행보를 더욱 기대해본다.


yangjiyoon@sportschosun.com

현장정보 끝판왕 '마감직전 토토', 웹 서비스 확대출시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