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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류스타들이여! 태국 친구들의 눈물을 닦아주라

이재훈 기자

기사입력 2016-10-18 09:13


태국 시민이 서거한 푸미폰 국왕의 영정 사진을 들고 슬픔에 잠겨 있다. <ⓒAFPBBNews = News1>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지난 10월 13일 오후 서거했다.

향년 88세. 고령이고, 오랫동안 병상에 있던 터라 마음을 졸이긴 했지만 막상 서거소식을 들은 태국인들 모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국왕의 서거소식은 10월 12일 오후부터 들려왔다. 이날 오후 4시에 총리의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삽시간에 돌 때 회사 내 태국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결국 이날은 아무일 없이 지나갔다가 하루 뒤인 13일 오후 5시쯤 뒤엔 중국발 트위터에 국왕의 서거소식이 전해지자 태국인들은 '공식발표가 난 게 없다'며 벌떼처럼 몰려들어 삭제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국왕의 서거소식이 공식적으로 전해진 것은 10월 13일 오후 6시55분 쯤. 7시 정규뉴스를 보기 위해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태국인 젊은 직원 대 여섯 명이 입구에서 막 나온 공식발표에 통곡을 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나 역시 상심이 크다. 씨야짜이 두어이 크랍!"이라며 일일이 안아 줄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나의 가족이 아닌 제 3자에게 이처럼 큰 존경과 사랑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라웠고 감동적이었다.

태국 정부는 곧 1년간의 애도기간에 1개월간 모든 엔터테인먼트 행위를 금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웃고 춤추는 모든 야외행사가 자동으로 취소됐고, 술집과 펍 등은 기꺼이 문을 닫았다. 국왕이 서거한 다음날 나를 포함한 한국인은 물론 모든 태국인이 검은색 옷을 입고 회사에 나왔고, 방콕시내의 모든 디지털 광고판은 자진해 송출을 중단했다. TV는 흑백으로 국왕 다큐멘터리만 방송했고, 왕궁 앞에는 국왕을 추모하는 사람들로 끝없는 줄이 이어졌다. 국왕 서거 4일이 지났지만 태국의 모든 신문과 웹사이트는 여전히 흑백 톤을 유지하고 있다.

2개월 이내 예정된 한류행사는 모두 취소 또는 연기됐다. 11월에 있을 JYP 소속사의 콘서트와 그룹 몬스타엑스, 빅뱅, FT아일랜드 등의 공연도 연기됐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한-태 페스티벌과 방콕에서 처음 개최될 예정이던 K-Food Fair의 야외 소비자행자도 1주일을 앞두고 취소 또는 연기됐고, 각종 행사에서 흥겨움을 주는 부분도 취소되거나 도려내 졌다.


지난 2008년 2월, 태국에선 푸미폰 국왕의 친 누나가 서거했다. 당시에는 9개월 간의 애도기간을 거쳐 11월에 장례를 지냈다. 정부는 한달 여간의 엔터테인먼트 행사 금지를 요청했지만 실제로는 장례식이 치러질 때까지 웃고 춤추는 행사는 할 수 없었다. 당시 한류 스타의 팬미팅을 기획했던 나는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겨우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팬이든 일반인이든 신기하게도 태국인들 어느 누구 하나 불만없이 이를 감수했다.


이번 태국 국왕의 서거와 함께 태국정부는 1개월의 엔터테인먼트 행사 금지와 1년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하늘 같은 국왕의 존재와 태국사람들의 크나큰 상심을 감안하면 한류행사를 포함, 이벤트는 적어도 수개월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태국은 한류가 뜨겁고 식지도 않는 나라다. 2010~2011년엔 한해 40건이 넘는 콘서트, 팬미팅 등 한류 행사가 열렸다 2008~2009년 동안엔 86년의 드라마가 방송됐다. 올해 전반기에도 34편의 드라마가 태국 안방에 소개됐다. K-POP 콘서트 입장권의 비싼 자리는 대졸 태국인 초임의 절반인 20만원이 넘는다. 이는 국내 콘서트가격은 물론 유명 외국가수들보다도 비싸다. 어떤 때는 한국 K-POP 가수들이 한날 각기 다른 장소에서 행사를 열며 서로 팬 유치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류스타의 방문이 너무 잦아 거품이란 지적도 있었지만 태국팬들은 변함없이 콘서트 장을 찾고 있다. 그야말로 충성팬이 많은 게 태국이다. 톱스타 급의 공연료는 2억~3억원을 넘는다.

지난 2004년 쓰나미로 태국 남부에 수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TV를 보고 있었는데, 리키마틴이 푸켓의 더러운 해변가에서 부모 잃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장면에 이어 영화 홍보차 팬들의 환영 속에 방콕을 방문한 한류스타의 장면이 이어졌다. 그가 버스에 오르는 순간 야멸차게 커튼이 닫혀졌다. 피해 현장 방문은 바라지도 않지만 팬들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는 팬서비스도 그렇게 인색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이 순간 하염 없이 부끄러웠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고, 진정한 친구는 슬픔을 나눈다고 했다. 특히나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생명인 아티스트나 연예인은 팬들의 속마음을 어루만지고 슬픔을 위로할 줄 아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아니 연기라도 해야 한다. 아직 어리고 일정이 바빠 모른다면 회사의 어른들이라도 가르쳐주면 된다.


푸미폰 국왕을 잃은 태국인의 상심이 왜 이처럼 큰지는 태국에 조금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푸미폰 국왕은 1946년 왕위를 이은 이래 세계 최장수 국가원수다. 2위는 1952년에 즉위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그러나 태국 국왕의 위치는 영국여왕과는 사뭇 다르다. 명예직만이 아닌 실제 국민통합을 이루고 있는 중심이요, 근간이다. 각료와 수상의 임명도 국왕의 인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쿠데타도 왕이 승인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만큼 정치든 뭐든 태국의 모든 것들은 국왕의 무릎 아래 있는 셈이다. 그 어느 장군도, 그 어떤 시민지도자도 국왕의 권위 위에 올라설 수는 없다.

태국 국왕은 생전 40여년 넘게 단 한차례도 외국에 나가지 않고 가난한 자와 농어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스스로 검소하게 살았으며, 민주주의 신봉자고, 절제를 신앙같은 미덕으로 삼았던 존재여서 태국국민들의 존경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태국 국왕은 태국에서는 절대지존이며 국왕체제의 태국을 안다는 것은 태국정치와 사회를 절반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런 존재를 잃은 태국인들의 상심과 절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태국에서 한국은 한류로 대변된다. 태국인들에게 그토록 사랑 받는 한류스타들이 침묵 지키고 친구의 상심을 강 건너 불구경하지 않길 바란다. 한류스타라면 반드시 있을 태국의 팬클럽 사이트에 당신의 위로를 앞장서 전하라~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라! <이유현 한태교류센터(KTCC) 대표이사, 前 스포츠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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