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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서영주가 인터뷰에 응하고 포즈를 취했다. 서영주는 영화 '밀정'에서 주동성 역을 맡아 송강호와 공유 사이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6.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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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본격적으로 달릴 준비에 나선 5년 차 배우 서영주(18). 최연소 남우주연상, 베니스영화제 초청 등 떡잎부터 남달랐던 그가 올가을엔 강렬한 존재감으로 600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치기 어린 의열단의 막내로 포문을 열더니 엔딩에서는 뒤통수를 강타하는 반전으로 충격을 안겼다. 요물도 이런 요물이 있을까 싶은 서영주다.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스파이 첩보 액션 영화 '밀정'(김지운 감독, 영화사 그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 서영주는 극 중 막내 의열단 주동성 역을 맡아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서영주는 '밀정'의 문을 열고, 문을 닫은 키플레이어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초반 의열단 핵심 단원인 김장옥(박희순)과 함께 투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던 중 밀고로 조선인 일본 고등경찰 이정출(송강호)에게 발각된 주동성. 끝까지 투항하던 김장옥은 자살로 치욕을 씻었고 도망가던 주동성은 결국 일본 경찰에 잡혀 투옥됐지만 웬일인지 너무나 쉽게 풀려나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는 치밀한 경무국 히가시(쓰루미 신고) 부장의 꼼수였던 것. 히가시 부장은 이정출에게 주동성을 풀어주고 의열단에 접근, 밀정이 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풀려난 주동성에 대해 의열단 단원인 조희령(신성록)은 '일본의 밀정' '이정출의 끄나풀'로 의심했고 김장옥을 죽인 배신자로 비난하며 주동성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기도 했다. 억울한 누명을 쓰는 치욕도 모자라 죽을 위기에 처한 주동성. "여기 다들 밀정이 아니란 증거 있소?"라며 악다구니를 썼다. 어린 의열단 주동성에겐 한순간에 자신을 배신자로 모는 동료들이 잔인, 그 자체였던 것. 서영주는 이런 주동성의 내면을 세밀한 감정선으로 표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처음 김지운 감독에게 '밀정'의 주동성을 제안을 받았을 때 그 인물에게 받은 느낌을 연기했어요. 당시 제가 느꼈던 주동성은 밀정이 아니지만 밀정인 그런 복잡 미묘한 인물 같았거든요. 초반 의열단으로부터 의심받고 버림받았을 때 주동성은 억울했고 그 느낌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죠. 초반의 주동성은 정말 많이 딱하고 안타까웠거든요. 주동성과 마찬가지로 저 또한 혼란스러웠고요. 밀정처럼 연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밀정이 아닌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지 고민됐는데 딱 그 지점이 주동성과 맞아 떨어졌어요. 제 식으로 푼 주동성이었고 다행히 관객의 공감을 얻었어요(웃음)."
사실 서영주는 스토리가 흐르는 순서대로 '밀정'을 촬영한 게 아니었다. 김장옥과 도망치는 신, 의열단의 의심을 받는 장면은 중반께 촬영했고 가장 첫 촬영은 부담스럽게도 이정출, 송강호와 대면이었다. 작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혼란스러웠던 서영주는 송강호와 첫 대면만으로도 잔뜩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고. 전작에서 이정현, 조재현 등 걸출한 대선배들과 호흡을 맞춰왔던 서영주이지만 송강호는 또 다른 긴장을 선사했다.
"'밀정' 첫 촬영부터 만만치 않았어요. 당시 연극 '에쿠우스'로 한창 무대에 올랐고 연극 톤이 몸에 밴 상황이었어요. 연극 톤과 영화 톤은 확실히 다른데 아무래도 연극 톤에 젖어 잔뜩 힘이 들어갔던 것 같아요. 게다가 선망하던 송강호 선배와 첫 촬영이니까 더 긴장하게 됐죠. 계단을 내려가는 신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어색한 기분인 거에요. '몰래 계단을 내려가는 주동성을 이정출은 알고 있을까?' '송강호 선배는 어떤 시선으로 날 보고, 또 연기할까?'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죠. 이런 제 긴장이 전해졌는지 송강호 선배가 '이럴 땐 이렇게 해봐라' '저럴 땐 이런 연기도 좋다' '주동성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등 조언을 많이 해주셨고 김지운 감독도 주동성에 대한 감정을 설명해줬어요."
송강호와 첫 대면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매 순간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는 서영주. 특히 그는 한 대사를 열 가지 버전으로, 그것도 쉬지 않고 쏟아내는 송강호의 열정에 감탄을 넘어 충격 그 이상이었다는 후문. 송강호가 연기한 버전마다 근육의 움직임, 목소리 톤, 감정이 모두 달랐다는 것. 이런 송강호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심장이 떨려 주체할 수 없었다는 서영주다.
"'밀정'은 제게 첫 상업영화라 의미가 남달라요. 그래서 짧은 분량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인물을 분석해서 촬영장에 갔는데 제가 해온 준비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송강호 선배가 '주동성이!'라며 절 부르는 신이 있는데 그 짧은 장면 하나를 여러 버전으로 열연을 펼쳤죠. 워낙 베테랑이시고 연륜이 상당하시니까 현장에 와서는 가볍게 흐름을 읽고 연기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미리 촬영 분량을 생각하고 준비하셨던 거죠. 송강호 선배의 여유는 피나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배우게 됐어요. 감히 전 명함도 못 내밀었죠. 그날 숙소에 돌아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아직 난 멀었구나'라며 다시 대본을 펼쳤죠(웃음)."
어릴 적부터 남다른 연기력으로 명배우, 명감독들과 호흡을 맞춰온 서영주. 또래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른,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서영주이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밀정'은 또 다른 의미, 또 다른 배움으로 다가왔다고. 배우의 자유 연기 의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독립영화를 꾸준히 해왔던 서영주에게 여러 앙상블을 꼼꼼히 재단하는 상업영화는 꽤 낯선 풍경이었고 이 대목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영화 '범죄소년'(12, 강이관 감독) '뫼비우스'(13, 김기덕 감독) 등 오롯이 자신이 판단한 인물을 끌고 나가야 했던 서영주가 '밀정'에서는 나와 다른 타인의 생각을 분석하고 조합해 연기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 것. 서영주는 그렇게 진짜 배우가 됐다.
"'범죄소년'의 강이관 감독이나 '뫼비우스'의 김기덕 감독과 촬영에서는 느끼지 못한 경험이었죠. 하하. 많은 배우와 앙상블, 감독과 케미스트리가 뭔지 배웠어요. 예전에는 제가 너무 어려서 몰랐던 부분들이 '밀정'에서는 조금씩 느껴지더라고요. 8년간 네 작품을 함께한 송강호 선배와 김지운 감독을 보면서 '이런 게 호흡, 이런 게 앙상블이구나' 신기하기도 했고요. 물론 조재현 선배와 김기덕 감독도 오랜 인연이 있지만 확실히 송강호·김지운 감독 조합과는 다른 것 같아요. 분위기부터 스타일까지 다르니까요. 저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배우가 된다면 송강호 선배와 김지운 감독, 조재현 선배와 김기덕 감독 같은 인연을 가질 수 있겠죠? 전 운이 좋아 매번 출발이 좋았고 분에 넘치게 상도 받고 해외 영화제도 갔어요. 주변에서는 여러 왕관을 썼다고 부러워 해주시는 분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해'라며 스스로 채찍질을 해요. 이번 '밀정'도 앞으로 더 좋은 배우가 되라는 뜻으로 주신 선물 같아요. 개인적으로 근질근질하기도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노력하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하하."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영화 '밀정'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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