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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하나 때문에 난리가 났다. 관련 회사 주가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고, 사람들은 속초로 달려간다. 속초 지역은 예상하지 못한 특수를 맞아 들뜬 모습이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 이하 AR)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지난 20년간 게임과 애니메이션 업계는 물론 식품업계에도, 의학계에도 다양한 이슈를 만들었던 포켓몬스터다. 때문에 이번 포켓몬고의 성공으로 일어나는 유쾌한 소란스러움은 생경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포켓몬 시리즈에 익숙한 이들에겐 새삼스럽게 왜 이러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켓몬고를 향한 시장의 관심은 무척 뜨겁다. 이 게임이 IT, 게임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로 여겨지는 AR 기술과 접목된 게임이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는 듯하다.
얼핏 보면 포켓몬고의 흥행은 간단한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AR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포켓몬 IP의 이름값이 합쳐진 것이 포켓몬고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포켓몬고의 성공이 게임업계에 성공을 위한 새로운 레퍼런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구성적인 면에서 포켓몬고는 새로울 것은 없다. 게임성 측면에서도 기존 포켓몬 시리즈의 틀을 탈피하지 않았다. 맵을 돌아다니고, 포켓몬을 만나서 이를 포획하는 과정에서 포켓몬을 수집하고, 다른 이들과 배틀을 벌인다는 점 역시 그대로다. 기술과 콘텐츠적인 측면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란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포켓몬고가 이렇게 뜨겁게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게임의 성공은 포켓몬에 대한 모든 것이 축적된 성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AR이라는 기술과 포켓몬이라는 IP. 그리고 유저들이 포켓몬에 갖고 있는 추억과 기대했던 상상, 유저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개발사의 시장분석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포켓몬고는 게이머들에게 짜릿한 경험을 준다. 비록 스마트폰을 통해서만 보이는 포켓몬이고, 여전히 대리만족에 불과하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지켜봐야 했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급이 다른 이야기다.
포켓몬고는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유저들을 게임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년간 포켓몬을 즐기던 이들이 한번쯤은 했던 상상인 '공원 속 풀숲을 들춰보면 뚜벅초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저 연못 속에 잉어킹이 있을지도 몰라'를 현실로 불러왔다. 20년간의 상상이 포켓몬고에서 이뤄졌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온라인게임도 포켓몬과 동일한 20년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간 동안 많은 팬을 지니고 있는 게임도 출시됐다. 그 시간에 걸쳐 AR 기술을 갖춘 개발사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에 AR 기술을 접목한다고 한들 포켓몬고와 같은 성공을 거둔 게임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포켓몬은 지난 20년간 유저들을 꿈꾸게 했고, 개발사는 포켓몬 팬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저 캐릭터를 갖고 싶다는 수준을 넘어 저 캐릭터와 함께 하고 싶다는 수준까지 말이다.
포켓몬은 IP를 넘어 문화가 됐다. 포켓몬고가 성공할 수 있던 것은 지난 20년간 이런 저변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인형, 팬시용품은 물론 유아용품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상품들과 전시, 공연,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산업 등에 걸쳐서 다방면으로 기울였기 때문이다. 포켓몬고의 성공은 20년이 걸쳐 이뤄진 결과물이다.
한국 게임산업이 지난 20년간 유저를 꿈꾸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든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유저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문화로 자리잡기 위한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를 돌이켜본다면 한국에서 포켓몬고와 같은 사례가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포켓몬고의 성공이 부러운, 그리고 배 아픈 이유다.
게임인사이트 김한준 기자 endoflife81@game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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