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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일제 강점기는 한국영화 제작자들에게 마지막 남아 있는 미개척지다. 시대의 비극성으로 인해 극 장르로 다뤄질 만한 사건과 인물이 많지만, 스크린에 옮겨진 사례는 많지 않다. 고증과 재현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제작 인프라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역사적 해석의 문제가 첨예해 영화화 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원작 소설 '핑거 스미스'에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로 설정된 시대 배경을 1930년대 조선과 일본으로 옮겨왔다. 젊은 상속녀와 그의 후견인, 상속녀의 재산을 노린 남자와 그에게 고용된 하녀를 둘러싼 파격적 이야기를 1930년대 시대상에 녹였다.
1920년대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의 이야기를 그린 김지운 감독의 '밀정'과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다룬 '덕혜옹주'도 한창 제작 중이다. '베테랑' 류승완 감독은 일본 하시마 섬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그린 영화 '군함도'를 6월부터 촬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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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를 제작한 신연식 감독은 "일제 강점기엔 영화화 할 만한 소재와 인물이 광맥처럼 뻗어 있다"면서 "2~3년 전부터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이 조만간 쏟아져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예전에는 제작 환경 문제와 과거사 트라우마 때문에 창작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다"며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 등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과거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관련 영화의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제 강점기의 경우 변변한 세트도 마련돼 있지 않아 시대 구현을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최근 한국영화의 예산 규모가 커진 것도 일제 강점기 영화들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신 감독은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성공을 거두면서 영화 제작자들이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하게 됐다"며 "힘 있는 감독들의 시도로 인프라가 더 갖춰진다면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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