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인터뷰①] `시그널` 김은희 작가 "대본, 머리 아닌 발로 쓰는 주의"

최보란 기자

기사입력 2016-03-15 16:15 | 최종수정 2016-03-16 08:21

시그널


[스포츠조선 최보란 기자] "대본, 머리가 아닌 발로 쓰자는 주의예요."

'한국형 수사물의 대가'라는 수식어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2011년 '싸인', 2012년 '유령', 2014년 '쓰리데이즈'에 이어 tvN '시그널'까지, 김은희 작가는 장르물의 불모지였던 국내 안방극장에서 범죄수사극의 전문가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12일 막을 내린 '시그널'은 그간 김 작가가 선보여온 수사극 속 장점들이 총집합된 듯 쫀쫀한 전개, 섬세한 복선과 완벽한 기승전결의 설계, 수사극와 판타지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전으로 연결돼 사건을 해결한다는 흥미진진진한 설정, 긴장감과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석테일'이라 불린 김원석PD의 디테일한 연출이 완벽한 구도를 이루며 '시그널 신드롬'을 이끌었다.

'시그널'이 이처럼 높은 완성도와 '웰메이드'라는 호평은 물론, 장르물의 한계를 깨는 높은 시청률까지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은희 작가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낸 답은 "머리가 아닌 발로 쓰는 대본"이라는 것이었다. 대중성과 화제성을 다 잡은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결국 철저한 자료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발로 뛰는 취재에 있었다.

-'시그널'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에게도 남다르게 기억될 듯한데.

좋은 감독님, 훌륭한 배우들, 애정이 가득한 스태프들.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더 행복한 작업이었던 듯 합니다. 시청자분들께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복선이 많은 드라마인데 그 전개가 자연스러웠다. 사전제작이기도 했지만, 결말 또한 미리 정해져 있었던 건가.


전체 틀을 잡을 때 '유괴 사건', '경기 남부 연쇄살인사건' 등 사건들을 먼저 배치하고, 그 안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짜 넣는 편입니다.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러프하게 결말 부분은 잡아 놓고 들어갔습니다.

-'인주 여고생 사건'(밀양 여중생 사건)을 마지막 에피소드로 활용한 이유는?

해영이의 어린 시절에 발생한, 해영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이기 때문에 전체 극 중 클라이막스 부분에 배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여러 미제사건들 중에서, 드라마에 등장한 사건들을 선택한 배경은?

제 기억에 남고, 그래서 안타까웠던 대표적인 미제사건들을 위주로 선택했습니다.

김은희 작가

-이야기로 풀어가면서 가장 힘들었던 사건은?

사실... 다 힘들었어요. 미제사건이고 과거와 현재가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 사건을 두고 과거와 현재, 두 가지 라인을 짜야만 했습니다. 또한 장기 미제사건에 대해 짜다보니, 왜 미제사건이 풀기 힘들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서, 사건현장도 사라지고, 증거도 거의 남아 있지 않잖아요. 다른 드라마 때보다 두 배씩 라인을 짜야 되는데, 풀기도 힘들어서 세 배로 고생을 한 듯합니다. 슬프네요.

-수사물은 논리적인 과정을 중시하고, 판타지는 어떻게 보면 그와 반대 일 수 있는데. 두 장르를 섞게 된 계기는?

미제사건팀을 다루자는 얘기가 그 전부터 있었는데요. 가슴 아픈 사건이 너무 많아서 망설여졌어요. 게다가 과거 사건을 보여줄 때, 단순하게 플래시백(회상)으로 밖에 들어갈 수가 없을 듯 했거든요. 그런데 무전기라는 판타지가 들어가면 과거와 현재 형사를 함께 보여줄 수 있으니, 과거 형사의 시선으로 과거 사건을 보여줄 수 있을 듯싶었고요. 그런 판타지를 넣어서라도, 사건들을 해결하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과거와의 교신'이라는 설정은 앞서 여러 작품에서 다뤄지기도 했는데, 혹시 참고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는지?

글쎄요. 다들 아시다시피 '프리퀀시'나 '동감', '시월애' 등, 타임슬립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있었지만, 설정 외에 수사물로 참고할 만한 작품은 따로 없었습니다.

-특별히 수사물이라는 장르에 애정을 쏟는 이유?

원래 긴장감 있는 얘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지상파 데뷔를 SBS '싸인'으로 했는데, 주인공들이 법의관들이라, 당연히 수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반응이 좋아서 그 다음도 자연스럽게 수사물을 했으면 좋겠다는 주변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수사물을 쓰게 됐다고나 할까요. 사실, 너무 수사물만 계속 써서 이젠 밑천이 바닥나고 있습니다. 내가 썼던 반전을 피해야 하니까요.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 보고는 싶은데, 기회가 닿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평소에도 수사물이나 추리 장르의 작품들을 즐겨 보시는 편인지?

미드 중에선 '엑스파일'을 제일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굳이 수사물만 찾아보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은 영화들을 보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피터 잭슨, 리들리 스콧, 타란티노 등이 있고요. 인생 영화라고 꼽는다면, '대부'1,2를 매우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감독과 좋아하는 작품이 맞지 않는 아이러니는 뭘까요. 하하.

-과거와 현재를 오가다보니 그 당시의 형사들의 수사방식이나, 수사기법 변화 등도 파악해야 했겠다.

네. 그래서 강력계 형사님들 인터뷰를 많이 했어요. 과거의 경우는 CCTV도 거의 없고, DNA 감식, 프로파일링 같은 수사기법이 없었죠. 그래서 탐문에 많이 의존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탐문하는 방법도 달랐어요. 뭐... 농촌의 경우는 다들 바쁜데,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을 안 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내기도 같이 해드리고, 농사일을 도와드리면서 탐문을 하셨다고 합니다. 요즘의 수사방법들은 서울청 과학감식팀의 자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시청자와는 또 다른, 제작자 입장에서만 느끼는 아쉬움도 있을 듯한데. 돌이켜봤을 때 아쉬운 부분이나 작가만 캐치한 옥에 티가 있나?

옥에 티는 옥에 티로 남겨 놓는 게... 캡쳐한 장면들에서 옥에 티를 찾아내시는 분들도 많고, 기사화된 부분도 많잖아요. 하하. 그런데 제 입장의 옥에 티라면 '아... 저 때 저렇게 풀지 말고 다르게 풀었다면, 더 재밌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이죠. 그래서 본방을 볼 때는 계속 좌불안석입니다.

-장현성과 이번 '시그널' 뿐 아니라 '쓰리데이즈', '유령', '싸인'까지 4작품을 함께 했다.

장현성 배우는 잘 알려져 있듯이 남편 (장항준 감독)과 서울예전 연극과 동기로 친분이 있어요. 게다가 성실하고 준비도 철저히 하는 배우죠. 연기도 잘 하시구요.

-김범주 국장이 이재한 형사 앞에서 립밤을 바르며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대본에 있는 설정이었나?

립밤 같은 경우도 대본에 없는 설정을 준비해서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본방송 보면서 뭐 다른 시청자분들이 느끼셨겠지만, '저러다 길거리 지나가다 한 대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얄미움의 최고봉을 연기해 주신 배우에게 매우 고마웠죠.

싸인 유령 쓰리데이즈 시그널

-'김은희표 수사극에는 꼭 있다!' 스스로 고집하는 특징 같은 게 있을까?

글쎄요. 극 안에 뭔가가 있다는 건 없는 것 같고요. 제가 스스로 고집하는 건 '머리로 쓰지 말고 발로 쓰자'정도 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해서 쓴 대본하고 실제 형사님들, 프로파일러 분들을 인터뷰 한 뒤에

나오는 대본은 너무 차이가 커서요.

-김원석PD와 호흡은 어땠나? 다음에 또 작품을 하게 된다면?

첫 방송을 보고 남편이 '넌 모르겠고, 연출은 진짜 대단하다'고 하더군요. 대본을 200% 살려주시는 감독님이신 것 같아요. 일만 생각하시는 순수한 분이시고, 대본과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또 작품을 하게 된다면 영광이죠.

-배우들도 맞춤형 캐스팅이라는 평가였데, 작가로서 어떤 기대를 걸었나?

배우들이 캐스팅 된 뒤에는 기대라기보다는,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훈의 캐릭터 설정은 다소 엇갈린 반응을 얻기도 했다.

박해영이란 배역은 워낙 연기하기가 힘든 배역이었어요. 대사의 양도 어마어마한데다가, 어떨 땐 이성적으로, 어떨 땐 감정적으로 변해야 했고요. 대사에 딱딱한 전문용어들도 너무 많았거든요. 그런 배역을 아주 열심히 해준 이제훈 씨에게 감사하고요. 대사를 더 정제시켜 주지 못한 제가 역량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은숙 작가와 절친으로 알고 있는데, '태양의 후예'를 봤는지? 혹시 김은희 작가도 로맨스 드라마를 집필할 의향은?

당연히 봤죠. 시청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드라마인걸요. 다른 건 몰라도 저는 로맨스 드라마는 못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은 믿지 않는 주의라서.

-SBS와 오랫동안 작업을 해 오다가 이번에 tvN과 함께 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간에 작업에 차이점이 느껴지시던가?

방송시간에 제약이 더 적어서 편했어요. 수사물은 엔딩이나 전체적인 기승전결, 구성이 중요한데 시간이 넘쳐서 뒤로 넘겨버리면 전체 구성도 무너지고 엔딩도 맞지 않거든요.

-엔딩에서는 다음 이야기가 더 이어질 수 있는 여지도 느껴졌다, 시즌2에 대해서 희망을 품어도 될까?

감독님과 시간을 두고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면, 그 때부터 열심히 준비해 보려고요.

-차기작으로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아직은 없습니다. 좀 더 푹 쉬고 생각해 보려고요.

ran613@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