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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이산의 아픔을 안고 강철같이 살아온 한 여인의 감동적인 삶을 그린 뮤지컬 '서울 1983'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5-11-09 11:03


[공연 리뷰] 이산의 아픔을 안고 강철같이 살아온 한 여인의 감동적인 삶을 그린 뮤지컬 '서울 1983'


◇분단의 비극을 견뎌온 한 여인의 삶을 그린 뮤지컬 '서울 1983'. 돌산댁(왼쪽, 나문희 분)이 압록강 국경지대에서 남편(박인환 분)과 재회하는 장면.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1983년, 서울 여의도광장은 통곡의 바다였다. 가슴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과 한이 활화산처럼 터져나왔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그렇게 온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서울 1983'은 이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서울이 탈환된 그 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현대사가 한 여인의 삶을 타고 흐른다.

주인공 돌산댁은 퇴각하는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혀간 남편과 미아리고개에서 생이별한다. 네 자식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지만 자식들은 그녀의 속을 썩일 뿐이다. 거기에 전쟁 때 한쪽 팔을 잃은 동생마저 보살피지만 술과 도박에 빠져 폐인이 된다. 하지만 돌산댁은 굴하지 않는다. 언젠가 남편과 만났을 때 떳떳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강철같이 하루하루를 견뎌간다.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언뜻 악극을 떠올리게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이산가족 생방송 당시 국민가요가 됐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비롯해 '상록수', '꽃마차', '울릉도 트위스트', '라밤바', '아침이슬' 등 기존 가요들에 창작 넘버 10여 곡이 가세해 조화를 이룬다. 악극에서 흔히 시도하는 감정의 과잉 분출 대신 '절제의 미학'이 돋보인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압록강 국경지대에서 남편과 재회하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무성한 갈대밭에 바람만이 무심한 한 밤중. 30여 년만에 초로(初老)의 얼굴로 재회한 부부는 자신들이 살아온 기막힌 삶에 소리내어 엉엉 울지도 못한다. "당신과 헤어지던 9월 27일, 이른 가을인디 내 맘은 워찌 그리 추웠는지, 그날이 꼭 겨울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유." "살아있었구만. 당신 눈매가 그대로라 한 눈에 알 거 같어. 못알아보면 어쩌나 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었겠는가."

돌산댁 역의 나문희와 남편 역의 박인환은 안으로, 안으로 감정을 삭이는 응축의 연기로 드넓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꽉 채웠다. 명불허전이다. 작가 김태수의 구성진 대사,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해 하모니를 이끌어낸 김덕남 연출의 관록이 돋보였다.

돌산댁이 기구한 삶을 마감하는 순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자식들이 등장해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라고 말한다.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한참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15일까지.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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