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클로젯의 디자이너 고태용은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기로 유명하다. 방송이나 SNS를 이용해 전면에 나서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디자이너들이 출연하는 방송 리얼리티가 많았던 수 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과거 방송에 얼굴을 비춘 디자이너들 중 대다수는 이제 자취를 감췄다. 그런 류의 방송이 적어진 탓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대중과 소통에 적극적인 고태용에게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는 패션을 비지니스로 여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 역시도 아트와 세일즈 사이의 경계에서 골몰하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이지만, 패션을 지극히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큰 그림을 그려놓고 빈틈없는 계획 속에 차근차근 채색을 하는 고태용은 실은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 같다기 보다 사업가보다 더 사업가 같은 사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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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 명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대중이 좋아하는 것과 제가 좋아하는 것은 달라요. 제가 만드는 옷이지만 캠페인 레이블의 옷 70% 정도는 제가 입을 것 같은 옷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디자이너 브랜드를 즐겨 입고 하이패션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들이 전국 인구수의 1%는 될까요? 그들을 상대로 옷을 팔 수는 없죠. 그래서 캠페인 레이블을 내놓았는데, 캠페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널리 보급하는 것이잖아요.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죠. 다만, 제가 진짜 만들고 싶은 옷을 만드는 컬렉션 레이블과의 조율이 중요하지만요.
-현재는 SBS 플러스와 중국에서 동시 방송 중인 '패션왕, 비밀의 상자'에 출연 중이에요.
고 : '패션왕'은 시즌2부터 참여를 했어요. 이상수 CP와는 그 이전 슈퍼모델 선발대회 심사를 할 때부터 알고 있었죠. 이번에는 '패션왕 비밀의 상자;를 함께 하게 됐네요.
- '패션왕'의 시작이 고(故) 앙드레 김 디자이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를 또 배출해야 한다였단 걸로 알아요.
고 : 한국에서는 앙드레 김 선생님이 많이 알려져있고 또 디자이너의 대명사 같은 분이시죠. 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바이어들에서는 한국 하면 디자이너 우영미나 정욱준이 더 잘 알려져있죠. 해외에서 컬렉션을 꾸준하게 진행하기도 하고 세일즈로도 잘 이어져요.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일본이나 중국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는 배출하지 못한 것이 한국 패션계의 현실이죠.
-예능 출연이 익숙하니 다른 선배 동료 디자이너들이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진 않던가요.
고 : 예능에 출연할 때 '짜고 치는 것이어도 상관없다. 하기로 한 이상은 같이 놀자'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요. 이런 제 생각을 선배 디자이너들과 많이 이야기했어요. 덕분에 많이 내려놓게 되셨죠(웃음). 사실 하이 패션을 말하는 디자이너가 자기가 만든 옷이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때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함께 많이 이야기를 나눴죠.
-현재의 파트너는 유인나 씨에요. 호흡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또 블락비 지코와는 '패션왕2'에 함께 출연했었고요.
고 : 지코와 할 때 좋았던 것은 저와 성향이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만든 옷이 꼴등을 한다면 그들이 잘못된 거지 우리가 잘못된 것은 아냐' 이런 자신감으로 임했고, 준결승까지 가게 됐죠. 유인나 씨의 경우, 여배우라 상처를 잘 받고 감정기복이 셀 것이라 생각했는데 멘탈이 좋아요. 꼴등을 두 번이나 했는데 오히려 절 위로해주죠. 아무리 방송을 많이 한 저라도 꼴등을 한 적은 없었으니까 기분이 침체되긴 했었거든요. 그럴 때 인나 씨가 큰 힘이 돼줬어요. 인나 씨는 기본적으로 좋은 옷을 많이 입어본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센스가 있어요. 옷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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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 1회 때 중국 패션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웨이보가 폭파가 됐어요(웃음). 하지만 솔직히 전 중국 패션에 대해 리스펙(respect)이 있는 사람이에요. 중국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배출된 반면, 한국은 아직 그 정도의 디자이너는 없으니까요. 디자이너로서 굉장히 부러웠죠. 패션은 누군가 하나 터뜨려 끌어주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바뀌잖아요. 저 역시 이번 '패션왕'을 계기로 중국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바뀐 점도 있어요. 한국은 상업적인 반면, 중국 패션은 아티스틱해요. 그런 면에서 배운 점도 많죠.
-다들 중국 진출을 꾀하고 욕심 내잖아요. 비욘드 클로젯의 대중국 전략은요?
고 : 대부분 중국을 마지막 목표로 생각하지만, 저는 마지막 목표점을 중국 시장에 두고 있진 않아요. 또 중국에 접근하는데 있어 섣불리 다가가면 안된다고 생각하고요. 기업체가 아닌 개인 사업자가 다가가기에 상당히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요. 현지 네트워크와 국내 마케팅 포트폴리오가 확실히 있을 때에야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K패션의 현주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고 : 엄밀히 말해 K-패션은 없어요. K-POP에 묻어가는 것 뿐이죠. 한국 디자이너가 SNS에 글을 올리면, 일본,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 네티즌들이 댓글을 달아요. 하지만 그런 분들은 100명 200명 남짓입니다. 그것만을 보고 K패션의 성공이라 단정하기는 이르죠. 또 K-패션의 성공은 개인이 이끌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패션은 원래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죠. 상당히 어려워요. 다만 세계적으로 K-패션이 인식될 수 있게 노력하고 있어요. 책임감도 있고요. 현재는 K-POP에 기대어 알리는 것에 주력하는 단계라고 보시면 돼요. 홍콩 MAMA나 K-CON 행사에 꾸준히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기대어 가는 것도 일종의 방법이고 효과도 있어요. 그렇지만 K-패션에 대한 내부적 진단이 성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우리끼리 만들어낸 단어 정도죠.
-한국 디자이너들의 질적 수준이 세계적으로 뒤처지지 않는다는 평도 있어요.
고 : 맞아요. 퀄리티는 결코 떨어지지 않아요. 다만 마케팅 부분에서 밀리죠. 어떤 이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도 하는데, 사실 정부가 지원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죠. 자기 돈 벌어서 자기가 알아서 해야하는 부분이니까(웃음). 또 세계적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디자이너가 국내와 해외, 어느 한 부분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국내에 베이스를 두고 해외에서 성공을 꾀할 수는 없다고 봐요. 베이스 자체가 거기에 있어도 될까 말까인데.
-얼마전 인스타그램에 16S/S는 영화 '리플리'와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어요. 살짝 더 귀띔을 해주신다면요.
고 : 낫 로맨틱을 줄여 노맨틱이란 콘셉트로 작업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비욘드 클로젯이라고 하면 위트있는 그래픽, 일명 개티를 만드는 브랜드라고 생각하지만 컬렉션에서 이런 옷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으실 거예요. 이외에도 케이팝과의 콜라보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새로운 친구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곧 공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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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 그렇지만 제 라이프 스타일 모토는 순간적이에요. 인터뷰에서 늘 꿈을 물어보시는데, 전 꿈이 없어요. 다음 목표가 있을 뿐이죠. 순간순간을 사는 사람이에요. 예전부터 선배들을 보면서 배운 것이 정상에 있는 순간 다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였죠.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발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나이가 들거나 경력이 쌓였다고 요즘 어린 친구들이 핫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수용하지 않아서도 안되고요.
-참, 최근에는 보험회사와 콜라보를 한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고 : 젊은 층이 좋아하는 브랜드라 콜라보 제안은 일주일 두 세 개는 와요. 요즘은 패션과 관련된 것은 대부분 거절하고 있죠. 새로울 게 없어서요. 다만 재미있고 획기적인 것들은 늘 관심을 두고 있어요. 특히 이번에 보험 회사와의 콜라보는 별게 다 오는 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했어요(웃음).
-요즘은 운동에 푹 빠져계신데, 그렇게 자기 관리에 열중해서 비욘드 클로젯이 가진 소년다운 이미지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우려도 했었습니다(웃음).
고 : 유지해야할 부분은 유지해야죠(웃음). 확실히 운동을 하니 술은 덜 먹게 되네요.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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