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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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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을 나서기 까지가 고난의 행군이다. 발이 많이 불편한듯 반창고를 뗐다 붙였다 하며 씨름한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상황은 확 바뀐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걸음걸이가 180도 달라졌다. 여유로운 워킹. 쏟아지는 카메레 세례 속에 시크하면서도 옅은 미소도 잃지 않는다. 오랜 만에 만난 지인들에게는 허그를 날리며 우아하게 광장 탈출에 성공! 과연 모델의 캣워크란, 런웨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중 앞에 선 이영진, 그녀는 진정한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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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빠듯하다. 참석해야 할 두개의 행사가 촘촘하게 붙어있다. 오후 6시30분 JKOO, 오후 8시30분 슈퍼콤마비 컬렉션이다. 시간 차가 별로 없어 홍길동처럼 뛰어다녀야 할 거란 귀띔. 기자도 덩달아 긴장된다. 정신 바짝 차리려고 미리 카페인을 흠뻑 섭취해뒀다. 혼잡이 극에 달하는 주말 오후. 얼핏 봐도 DDP 광장에는 전날에 비해 서너배 쯤 많은 인파가 몰렸다.
오후 5시30분, 전화벨이 울린다.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이영진의 전화다. 이미 JKOO의 의상을 차려 입은 그녀가 밝게 인사를 건넨다. 뒤꿈치 안부를 물었더니 "앞으로 남은 일정이 많을 땐 차라리 반창고를 떼버리는 것이 낫다"는 답이 돌아온다. 일찌감치 굳은 살을 만들어둬야 빨리 편해질 수 있다는 해설. 이렇게 까지 생고생을 하는구나. 눈살이 자동으로 찌푸려진다. 기자는 첫 날 모델 기럭지에 어느 정도(?) 맞춰 보려 8cm 힐을 신었다가 하루 만에 지레 포기했다. 종아리가 쑤셔 바로 슬립온으로 내려왔는데 그녀는 대체….
JKOO의 캐주얼한 의상을 갖춰 입은 이영진. 전날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기본 블랙 앤 화이트가 시크한 느낌을 전한다. 소매와 넥라인의 블루, 옐로우 컬러 블럭이 포인트로 들어가 캐주얼한 분위기도 연출한다. 선글라스까지 매치하니 더욱 감각적이다.
오후 6시, 포토월부터 JKOO의 쇼 관람을 모두 마쳤다. 백스테이지로 가서 디자이너를 축하했다. 특별한 손님도 동행했다. 이영진과 함께 JKOO의 컬렉션을 감상해 화제가 된 푸들, 바우(2세, 남자)다. 바우는 디자이너 JKOO 부부가 구조한 유기견이다. 이후 이영진의 지인에게 입양됐다. '오작교' 이영진이 바우를 안고 JKOO에게 다가간다. 바우를 발견한 JKOO. 격하게 환호한다.
하지만 상봉은 찰나다. JKOO와의 인사를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손님들. 이영진도 다음 스케줄을 위해 다시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제 다시 밴 안에서 더욱 캐주얼한 슈퍼콤마비 의상으로 갈아입을 차례. 후드가 달린 블랙 원피스에 루즈핏 블랙 스셔츠를 매치했다. 스냅백까지 쓰니 가뜩이나 작은 얼굴이 더 쪼그맣게 보인다. 운동화 역시 올 블랙으로 통일했다. 자세히 보면 핸드폰 케이스도 블랙이다. 이영진, 그도 이테일이라고 불릴만 하다. 역시, 패션은 디테일인가... 불과 30분 만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여인으로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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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 이영진은 DDP에 그만의 비밀(?) 루트까지 꿰고 있을 만큼 지리에 훤했다. 자신을 향해 달려와 셔터를 누르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그녀는 아무리 바빠도 결코 뛰지 않는다. 그저 우아함을 잃지 않는 날렵한 걸음으로 쓱쓱 빠르게 이동할 뿐이다. 슬립온을 신은 기자. 어느 새 그녀를 뒤쫓는 일이 벅차다. 숨이 차오른다. 그리고 느꼈다. 모델,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배선영기자 sypo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