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르의 원류를 찾아서. 둠에서 퀘이크까지, FPS '성장의 시대'

이덕규 기자

기사입력 2015-02-23 13:06


파죽지세의 FPS 시대, 둠2와 듀크 뉴켐3D

이드 소프트웨어는 이듬해인 1995년 말 '둠2'를 내놓았다. 쉐어웨어 형태로 판매했던 '울펜슈타인3D'나 '둠'과는 달리 이번에는 정식 패키지 형태로 판매했다. 1년만에 나온 만큼 그래픽이나 게임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게임의 볼륨이 커졌다. 무시무시한 적이 두 배로 늘었고 수퍼 샷건 같은 더 화끈한 무기가 추가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둠2'를 잊지 못하는 팬 덕분에 플레이스테이션3과 Xbox360으로도 발매되었다
'둠2'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장 큰 변화는 멀티플레이였다. 모뎀을 통해 두 명의 게이머가 간편하게 데스매치를 벌이거나 협동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 랜(IPX)을 통한 멀티도 지원했다. '둠2'는 '영원히 보존해야 할 게임'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학교와 회사의 전산망은 또 다시 '둠2' 멀티플레이를 즐기려는 게이머로 몸살을 앓았다. 지금도 게이머에게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는 'FPS하면 멀티플레이가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개념은 이 '둠2'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잇따른 '대박'에 많은 게임 회사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둠'의 아류작이 시장에 몇 개 나왔지만 신통치 않았다. 오리지널 '둠'의 저력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중 몇몇 게임은 FPS 장르와 게임 역사에 한 획을 남겼다.


듀크 뉴켐 3D
1996년 등장한 '듀크 뉴켐 3D'가 그랬다. 본래 '듀크 뉴켐' 시리즈는 횡스크롤 2D 액션 게임이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주인공이 괴물과 싸운다는 그저 그런 느낌의 게임이었다. 제작사인 3D 렐름은 '둠'의 성공에 고무되어 '듀크 뉴켐'의 최신작을 FPS로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그런 '둠'의 아류작으로 보였다. 주인공 '듀크 뉴켐'이 외계인과의 사투를 벌인다는 단순한 줄거리도 '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듀크 뉴켐 3D'는 '둠'과는 확실히 다른 게임이었다. 주인공인 듀크 뉴켐부터가 남달랐다. 같은 근육질이지만 점잖은(?) 해병인 '둠'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에 선글라스를 쓰고 온갖 음담패설을 내뱉는 듀크 뉴켐은 마초맨 그 자체였다.

내용면에서 '둠'이 잔인함으로 명성을 떨쳤다면 '듀크 뉴켐 3D'는 주로 성인 취향에 맞춘 요소로 명성을 떨쳤다. 아예 스테이지 배경에 사창가가 있었고, 스트립쇼를 하고 있는 여종업원에게 돈을 뿌리는 등의 성적인 요소가 게임에 가득했다. 성인 영화관에서 야한 영화(?)를 보는 요소도 있었다. 듀크 뉴켐은 적만 보이면 음담패설을 지껄였으며, 괴물을 죽이고 눈알을 뽑아 축구를 한다든가 보스의 얼굴에 대변을 누는 등의 지저분한 개그가 게임에 가득했다.


싸구려 농담과 음담패설로 가득한 듀크뉴캠 3D. FPS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물론 게임 내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듀크 뉴켐 3D'는 단순히 적을 죽이는 게임은 아니었다. 모니터로 적을 감시한다든가, 소변기에 오줌을 누고 돈을 뿌리는 등의 다양한 행동이 게임 내에서 가능했다. 원한다면 화면 내의 거의 모든 사물을 박살낼 수 있다는 점도 참신했다. '듀크 뉴켐 3D'는 '둠'의 아류작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차세대 FPS의 장을 연 '골든아이 007'

1990년대 중반, FPS는 PC게임 시장에서 세를 크게 불리고 있었다. FPS 장르의 본격적인 시작인 '울펜슈타인 3D'와 '둠' 모두 PC 플랫폼 기반이었다. 조작도 PC의 마우스와 키보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FPS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한 조작이 이미 이 시기 정립되었다.

한편 콘솔 게임기 시장에서도 FPS에 대한 요구가 차츰 늘어나고 있었다. 이 당시는 강력한 3D 성능을 앞세운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의 공세에 세가 새턴과 닌텐도64가 밀리는 추세였다. 이 셋 중에서 가장 늦게 등장해 크게 밀리던 닌텐도64는, 북미와 유럽을 겨냥한 새로운 카드를 뽑아 들었다. 이것이 '골든아이 007'이다.


영화도 성공하고 게임도 성공한 진정한 웰메이드 작품
사실 '골든아이 007'이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 '골든아이 007'은 영화의 판권을 이용해 대충 만든 2D 횡스크롤 슈팅 게임이 될 뻔 했다. 심지어 '골든아이 007'을 제작하기 위해 모인 개발자 중 제대로 된 경험을 갖춘 사람도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플랫폼도 구세대 기기인 슈퍼패미컴을 기반으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프로듀서인 마틴 홀리스가 '이 게임은 3D 슈팅 게임이 되어야 한다'며 여기에 맞는 차세대 기종인 닌텐도64로 내놓을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세가의 '버추어 캅'에서 영감을 얻어 3D FPS를 개발하려고 했다. '버추어 캅'처럼 적외선 권총을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버추어 캅'에 있던 '재장전'의 개념이나 무고한 시민의 개념 등 다양한 컨셉을 사용했다.


탄탄한 영화적 스토리와 다양한 연출을 가미한 007 골든아이, 기존 폭력적인 FPS 장르를 완전히 새로 정의했다
'골든아이 007'의 가장 큰 의의는 FPS라는 장르를 완전히 새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FPS는 단순히 적을 쏘아 죽이고 방해물을 제거하는 파괴에만 치중하고 있었다. '둠'의 개발자인 존 카멕은 '게임에서 스토리란 포르노의 그것과 비슷하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 당시 부족한 PC 성능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스토리는 FPS에서 부수적인 요인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골든아이 007'은 달랐다. 원작 영화를 게임으로 옮기되, 게임만의 방식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FPS 게임이지만 다른 게임처럼 적을 무조건 쏘아 죽이는 방식이 아니었다. 스토리 진행에 따라 적에게 붙잡힌 인질을 구출하거나, 적진에 잠입해 내부 정보자와 비밀리에 접선하는 등 좀 더 유연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영화에 나왔던 장소나 인물을 게임 내에서 되도록 충실히 재현하는 등 원작과 게임 양쪽을 모두 잡았다.

일반적으로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 조급한 개발로 영화 출시와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는 반면, '골든아이 007'은 게임 개발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하지만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에 대한 반응은 처음에는 싸늘했다. '골든아이 007'의 정보가 공개되었을 때 다들 떠올린 것은 E.T.의 악몽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골든아이 007' 영화 개봉 후 2년만인 1997년 여름 '골든아이 007'이 닌텐도64용으로 출시되었다. '골든아이 007'은 곧바로 전설이 되었다. 출시 후 8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보다도 높은 판매량이었다. 차세대 게임기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던 닌텐도64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이 '골든아이 007' 하나로 부진을 크게 만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골든아이 007'의 독창성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시대의 FPS들이 하나 둘 등장하려 하고 있었다.

퀘이크의 등장

1990년대 중~후반은 FPS 장르에 있어 기념비적인 시기였다. '듀크 뉴켐 3D'가 발매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드 소프트웨어의 신작 FPS인 '퀘이크'(Quake)가 첫 선을 보였다. '둠'이 그랬듯 '퀘이크' 역시 FPS 장르를 새롭게 정의했다.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작들처럼 '퀘이크' 역시 경쾌한 게임 템포와 잔혹한 묘사라는 줄기는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FPS 장르는 퀘이크란 걸출한 작품을 선보였다. FPS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퀘이크 시리즈의 시작
'퀘이크'의 가장 큰 특징은 본격적인 3D 폴리곤의 도입과 강력한 멀티플레이였다. 드디어 폴리곤을 활용해 완전한 3D 공간을 묘사해 냈다. 사물과 지형 모두 완전한 3D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FPS 모습은 '퀘이크'에서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속 점프와 로켓 점프 같은 조작 테크닉도 '퀘이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둠에서 호평받았던 멀티플레이 기술은 퀘이크에서 완성되었다. 게임에 사용된 퀘이크 엔진은 이후 수많은 FPS 개발에 적용됐다
'둠'2에서 호평을 받았던 멀티플레이 기술도 '퀘이크'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다수의 게이머가 한 서버에 접속해 데스매치를 즐기는 방식의 멀티플레이는 이후 FPS 장르의 '표준'이 된다. 처음에는 16명(8 vs 8)이던 최대인원이 1996년 말 이드 소프트웨어가 내놓은 '퀘이크월드' 패치 이후 64명(32 vs 32)까지 늘어났다.

강력한 멀티플레이는 새로운 게임문화까지 만들었다. 60여명이 뒤엉켜 로켓과 샷건이 오고 가는 멀티플레이는 '퀘이크'의 상징이었다. 이 멀티플레이를 원활하게 즐기기 위해 60명 넘는 게이머가 한 자리에 모여 하루 종일 '퀘이크'만 즐기는 행사가 북미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것이 현재도 남아있는 '랜파티'의 시초며 나아가선 e스포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퀘이크'가 FPS에 남긴 또 하나의 공헌이 있다면 바로 '엔진' 개념의 본격화와 모드의 지원이었다. '퀘이크'는 게이머 혹은 개발자가 '퀘이크' 게임 요소 중 일부를 변경하는 것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짜여 있었다. 이를 이용해 팬들이 만든 다양한 방식의 게임이 쏟아져 나왔고 이것이 현재 모드(modifications)의 시작이다.

더 나아가 기본적인 '엔진'은 '퀘이크'의 것을 쓰되 세부적인 컨텐츠는 각자 만드는 식으로 많은 FPS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퀘이크'라는 식으로 이름 붙인 개량판이 쏟아져 나왔다. 레이븐 소프트의 '헥센2'(Hexen II, 1997)나 랫루프의 '말리스'(Malice, 1997)이 그런 FPS였다.

'퀘이크 엔진'은 이제 복잡한 계보도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퀘이크 엔진을 완전히 개조한 버전도 나왔다. 그리고 이 퀘이크 개조 엔진을 사용한 게임 중에 밸브 코퍼레이션의 '하프라이프'(Half-Life)라는 FPS가 끼어 있었다. 1998년, FPS 장르는 이 퀘이크의 '먼 친척' 덕분에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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