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출'부터 '검은방', '회색도시'까지... 한국 모바일 게임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어드벤처 후예들.
1990년대에 PC게임을 열심히 즐겼던 게이머라면 어드벤처 게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유명한 '원숭이 섬의 비밀' 시리즈나 '가브리엘 나이트', '인디아나 존스' 등 셀 수 없는 어드벤처 대작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어드벤처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파생장르를 낳았다. 예를 들면, 텍스트와 스토리를 극대화 한 일본식 비주얼 노벨장르나, 액션성을 도입한 '액션 어드벤처', 퍼즐요소를 강화 한 추리게임 장르가 그렇다. 이 게임들은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어드벤처 DNA를 계승하며 각자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해 나갔다. 오랜 암흑기를 견디고,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어드벤처는 다시 한 번 날개를 달았다. 한국 모바일게임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어드벤처 후예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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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모바일게임에서 결정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무엇일까?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블레이드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임으로 '방탈출'이란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엔 인터넷 브라우저의 발전으로 다양한 플래시 게임이 쏟아져 나왔다. 웹게임들은 간단한 그래픽과 중독성 강한 퍼즐로 접근성이 높았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웹게임 중 독보적인 작품이 바로 '방탈출(Escape Games)'류의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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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갇힌 주인공이 주변의 도구를 이용해 탈출한다는 간단한 스토리의 게임이다. 난이도 높은 퍼즐을 풀어 문을 열고 탈출할 때의 성취감을 살렸다. 방탈출' 시리즈는 피처폰 시대가 끝나고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현재도 원조의 명성에 걸맞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게임데이는, 처음 '방탈출' 게임이 출시된 지 7년이 지난 2014년에도 최신작인 '방탈출: Doors & Rooms 2'와 '방탈출 for Kakao'을 내놓으며 시리즈의 인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시리즈가 출시되는 족족 각종 인기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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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출의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EA모바일이 내놓은 '검은방' 시리즈다. '방탈출'이 퍼즐풀기에 충실한 게임이라면, '검은방'은 퍼즐과 스토리를 함께 즐기는 정통어드벤처로 장르다. 실제로 게임데이 이창윤 이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검은방 시리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같은 탈출게임을 이런 식으로 풀 수 있구나 하고 많이 감탄했다. 덕분에 개발자 대부분이 검은방 팀을 선의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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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EA모바일이 돌연 게임서비스를 중단하면서 '검은방' 시리즈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핵심 제작진은 이미 회사를 퇴사한 상태. 팬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은방'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게임 서비스 종료로 많은 게이머들은 아쉬워했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 획을 그은 검은방 시리즈는 더 이상 플레이 할 수 없는 비운의 명작으로 남게 된 것이다.
연애 어드벤처로 방향을 틀다
한편, 검은방에 자극 받은 게임데이는 차기작 개발에 몰두했다. 방탈출 시리즈를 벗어나 정반대 컨셉의 작품을 내놓았다. 2011년 연애게임 '스노우레인'을 모바일로 내놓아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음침한 분위기의 '방탈출'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던 게이머들에게 밝고 화사한 연애게임 '스노우레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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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도시와 스마트 드라마의 출연
모바일게임 시장은 영원한 강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드벤처 장르의 대권을 게임데이에게 내어준 검은방 제작진은 또 한 번 시장을 평정할 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검은방 핵심 제작진 진승호(수일배) 프로듀서, 김현정(레피) 아트디렉터 등은 네시삼십삼분으로 이적해 새로운 어드벤처 게임을 제작했다. 그리고 2013년 7월 '회색도시 for Kakao'를 출시했다. '회색도시'는 비주류로 여겨지던 어드벤처를 단숨에 주류 장르로 끌어올리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 이면의 어두운 이야기를 그린 '회색도시'는 '검은방'의 르와르적 분위기를 그대로 계승했다. 여기에 스마트폰 시대에 발맞춰 그래픽, 사운드, 시나리오 등 모든 부준에서 진일보한 작품이다. 복잡한 시스템은 간소화 하고, 퍼즐의 난이도를 쉽게 조정하는 등 전반적인 게임성을 대중의 눈에 맞췄다. 4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스토리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회색도시는 모바일 게임에서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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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애니팡 같은 퍼즐게임에 싫증난 유저들은 정통 어드벤처게임의 깊이 있는 스토리에 매료됐다. 특히 잘 생긴 게임캐릭터들은 여성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00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회색도시' 팬들을 위한 팬아트 공모전과 사인회가 열렸다. 모바일 게임에서 이 정도로 팬덤을 형성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14년 네시삼십삼분은 1편의 프리퀄 작품인 '회색도시2'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실제 드라마처럼 시즌별로 나눠서 출시됐다. '긴 호흡으로 즐길 수 있는 스마트 드라마'를 컨셉으로, 전작의 2배 볼륨과 유명 성우진의 풀 더빙이 지원됐다. 본편 외에 게이머가 직접 만든 시나리오를 '회색도시2' 내에서 즐길 수 있는 기능까지 탑재됐다.
한국 모바일어드벤처 장르는 '방탈출'과 '검은방'이라는 두 시리즈가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해 왔다. 퍼즐, 스토리, 육성시스템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도입하며 끊임없이 장르적 실험을 해왔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새로운 형식의 어드벤처 게임들이 출시됐고, 지금의 '스마트 드라마'라는 새로운 영역까지 왔다. '이야기'에 대한 어드벤처 게임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김경래 게임어바웃 기자 gabriel@gameabou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