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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이정재가 무섭다①

김겨울 기자

기사입력 2014-11-24 08:33


배우 이정재가 34회 청룡영화상에서 영화 '관상'으로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절친'인 정우성이 포옹하며 축하해주는 모습. 스포츠조선DB.

이정재가 무섭다.

이정재와 청룡영화상의 인연은 깊다. 영화 '젊은 남자(1995년)'로 청룡영화상 남우신인상, '태양은 없다(1999년)'로 남우주연상, '관상(2013년)'으로 남우조연상까지 수상하며 3관왕에 올랐다. 배우가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수상했다. 남들이 단 한 번도 받기 힘든 의미있는 상을 세 번씩 받았다고 해서 무섭다는 것은 아니다. 지나온 발자취 보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40대인 지금부터니까….

이정재는 드라마 '공룡선생(1993)', '느낌(1994)','모래시계(1995)' 등을 통해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영화 '태양은 없다'로 청춘 스타로서의 정점을 찍었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시월애(2000)', '인터뷰(2000)', '흑수선(2001)', '오버 더 레인보우(2002)', '오 브라더스(2003)' 등으로 멜로와 코미디,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청춘 스타의 틀에서 벗어나 천의 얼굴을 지닌 진정한 배우로 가열차게 성장해갔다. 몇 년의 휴식기 이후 '하녀(2010)'로 옴므파탈로 재기한 이정재는 '도둑들(2012)', '신세계(2012)', '관상(2013)'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연기력과 흥행성을 겸비한 대체 불가의 대배우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개봉을 앞둔 '빅매치(2014)'와 다시 뭉친 최동훈 사단의 '암살(2015)'에선 또 어떤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20여 년 넘게 스타와 배우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주조연을 따지지 않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력을 보여주는 이정재. 그가 이미 청룡영화상 역사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겨서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상을 휩쓸지 모르는 엄청난 스타라 무섭다. 도대체 그는 어떤 기록을 세우게 될까.(이하 '일문일답')

-지난해 청룡남우조연상을 받고 뒷풀이는 했었나.

'관상' 팀에서 나밖에 못 받아서. 시상식이 끝날 때즈음 9시, 10시 되니까. 늦은 저녁 소주 한 잔 했었다. 황정민 형이 있는 '신세계' 팀으로 갔다.

-이정재에게 상이란.

글쎄.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는 기회, 한 2분에서 3분 정도 내가 고맙다고 말할 기회가 있는 그 정도가 아닐까.


-그래도 세 번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하다. 아직 한 번도 못 받은 배우가 훨씬 많지 않은가.

대단하긴. 상복이 있는 편이다. 하하하.

-신인남우상을 받고,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남우조연상도 받았는데, 아무래도 더 애착이 가는 상이 있지 않을까.

글쎄. 신인남우상을 받았을 때도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도 지금도 다 감사해서 딱히 애착이 간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상은 젊을 때나 나이들 때나 감사하다. 하하.


-공교롭게도 '절친'으로 알려진 정우성이 남우주연상 '태양은 없다'와 남우조연상 '감시자들'로 함께 노미네이트가 됐었다. 이정재 때문에 고배를 마셨는데, 아쉬워하지 않던가.

근데 우성씨가 상에 대해서 글쎄. 노미네이트가 같이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영화를 열심히 했단 이야기이고, 그만큼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칭찬이 아닐까. 우리 둘 다 '잘하고 있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성씨는 상에 연연해하지 않는 듯하다.

-'절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정우성은 요즘 미디어데이도 열고, 과거에 비해 좀 편해진 느낌도 든다. 이정재는 미디어가 아직 어려운가.

불편하다는 것은 아닌데, 사실 미디어데이란 말도 영화 '도둑들' 때 처음 들었다. 그때도 김윤석 선배만 나갔다고 하던데, '왜 난 안데리고 갔지?'란 생각해다. 하하. 하지만 솔직히 멍석을 까는 일은 못한다. 내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

-배우 이정재의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영화 '하녀'부터였을까.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느낌이다. 곧 개봉하는 '빅매치'도 코미디 액션 영화의 주인공 아닌가.

열정도 많고, 잘 해내고 싶은 욕망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것도 있고, 그보다도 팬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새로운 것을 처음 하게 될 때,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했을 때 그 작업들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욕심이 먼저 나와서 설정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작업들을 시도하다가 문제가 생길 때, 그 적용이 맞지 않을 때 난감하다. 그럴 때 처음부터 구조를 잘못짰다고 생각하고, 다시 움직인다. 새로운 것을 하면 그런 위험성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배우라면 그런 부분을 두려워하면 안되지 않나.

-개인적으로 영화 '신세계'의 이정재가 좋았다. 좀 더 험악해지고, 자유롭고 싶어도 발에 수갑이 채워진 듯한 조금은 답답해보일 수도 있는데, 그 연기가 좋더라. 혹시 '신세계' 때도 처음 의도한 생각과 다른 방향이 나갔는가.

굉장히 드라이하게 갔다. 보는 사람들이 황정민이 연기한 정청과 완전히 양극으로 치닫는 인물을 한 화면에 볼 때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실 좀 더 건달스럽고, 껄렁껄렁한 이미지로 생각했다. 그러다 리딩을 하는데 황정민 형의 연기를 보고, 노선을 바꿨다. 너무 힘들었다. 경찰인데 깡패 모습을 해야하려면, 진짜 경찰인지, 진짜 깡패인지 헷갈려야 하지 않나. 촬영 들어가기 전에 한 달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그렇게 겪고 보니 촬영 때는 연기할 때 아주아주 미니멀한 지성이 생기더라.


배우 이정재가 영화 '태양은 없다'로 청룡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청룡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스포츠조선DB.
-영화 '도둑들'도 그렇고, 청룡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관상'도 그렇다. 이정재가 굳이 멀티 캐스팅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속에서도 잘 색깔을 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이 내지 않는 음계를 두드려줘야 하는 것이 앙상블을 내는 것 아닐까. 도둑들이 다들 점잖아서 영화가 무겁더라. 그 속에서 내가 가볍게 움직이니까, 소위 띄우는 역할이다보니 발란스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상'에서도 이야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 사람 있지않나. 말만 해도 거슬리는 사람. 그래서 품새는 고급스럽지만, 말은 매우 건방져 보이고 거기에 삿대질까지 하는 그런 디테일을 연구했다. 그러면 무서운 척 연기를 하지 않아도 무섭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신세계'에서도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했고,그게 갈등을 더 차갑게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②편에 계속)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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