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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영원히 떠날 게 아니라면, 언젠가 한번은 맞닥뜨려야 할 일. 호된 질책과 비난이 기다린다 해도 온전히 감내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끌려나오는 대신 스스로 회초리 앞에 섰다.
먼저 인터뷰를 요청해 온 건 박시연이었다.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허물과 상처를 다시 들추어낼 수 밖에 없을 거란 사실도 알았을 거다. 한번 매를 맞아봤다고 해서 다시 매를 맞을 때 덜 아픈 건 아니다. 그런데도 박시연은 자신을 위한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고요하게, 차분하게, 담대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속내를 꺼냈다. 그에겐 폭풍우가 지나간 후의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눈빛도 한층 깊어졌다.
지난해 방송가를 뒤흔든 프로포폴 사건. 영화 '간기남'과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로 호평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박시연은 그 사건 이후 한동안 카메라 앞을 떠나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결혼 후 1년여 만에 첫 아이를 가진 상황이었지만 마음껏 기뻐할 수도, 축하를 받을 수도 없었다. 임신 7주차에 사건이 불거져 출산 2개월 후에야 법정 다툼이 마무리됐다.
"저는 아이가 있어서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는데, 아이에겐 태교를 못해준 게 너무 마음 아파요. 그래도 이렇게 예쁘고 밝게 자라준 게 정말 고마워요. 당시 뱃속에 아이가 없었다면 저는 아마 무너졌을 거예요. 저에게 아이와 가족은 축복과도 같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딸 라희. 이달 말 첫 돌을 맞이한다. "그저께 돌 사진을 찍었다"며 행복하게 웃는다. 도회적인 이미지의 배우 박시연이 아니라, '딸바보' 엄마 박시연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은 임신으로 늘었던 체중 22kg을 모두 감량해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이전엔 남편의 목 늘어난 티셔츠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니고 몇 달 동안 모유수유도 했다. 육아의 고됨과 보람의 일상을 하루하루 느끼며 살아가는 그녀.
"라희가 갓난아기일 때는 2시간에 한번씩 수유해야 하니까 잠을 못 자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자라는 모습이 정말 예뻐요. 옹알이 하고, 앉고, 기어 다니더니, 이젠 걸음마를 시작했어요. 오늘이 아이에겐 가장 어린 날이잖아요.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하니까.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까워요."
둘째 아이 욕심도 숨기지 않는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라희에게 동생을 안겨주고 싶다는 소망. "저와 제 여동생은 베스트 프렌드예요. 저는 라희가 혼자 자라길 원치 않아요. 자매는 부모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인 것 같아요. 딸이 너무 갖고 싶었는데 라희가 생겼으니까, 둘째는 아들 딸 가리지 말아야죠."
하지만 둘째 계획은 잠시 뒤로 미뤄둔 상태다. 지금은 배우의 자리로 돌아올 시간이기 때문이다. 박시연은 오는 27일 첫 방송되는 TV조선 드라마 '최고의 결혼'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스스로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 무조건 고사할 생각이었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출연을 결심했다.
'최고의 결혼'에서 박시연은 방송사 메인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할 정도로 능력 있는 스타 앵커였다가 스스로 비혼모의 삶을 선택하는 여주인공 차기영을 연기한다. 최고의 위치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다시 이를 극복해가는 차기영의 삶이 박시연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극중 차기영이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사실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아이가 없을 때는 막연한 상상이었는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모성애가 확 와닿았어요. 차기영의 삶이 저의 현재 상황과 비슷해 공감도 갔고요. 연기할 때도 깊이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시연은 촬영 현장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예전엔 몰랐던 고마움도 느낀다. 그래서 이 작품을 더더욱 잘 해내고 싶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아야 하는 게 마음. 아파도,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는다. "일 때문에 아이가 하루하루 커 가는 모습을 놓치는 건 아쉬워요. 하지만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려고 해요. 아이는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제 삶의 전부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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