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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왕자님을 꼽는다면, 단연 이상윤일게다. 드라마 '엔젤아이즈'에서 그는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시력 장애를 가진 여주인공 수완(구혜선)의 등대를 자처한 왕자님, 이상윤은 닭살스런 대사와 특유의 살인미소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영화 '산타바바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음악감독 정우(이상윤)가 광고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제의를 받고, 일 중독자인 광고 AE 수경(윤진서)와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가치관이 너무도 다른 남녀가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을 리얼하게 담아냈다.
그 과정에서 정우의 어설픈 작업 기술은 보는 이들을 피식 웃게 만든다. 수경에게 작업하기 위해 술을 먹이지만 오히려 자신이 먼저 취해 멀쩡한 수경에게 속 마음을 다 털어놓는가 하면, 수경과의 해외 출장에는 여동생(이솜)의 말썽으로 괴로울 뿐이다. 풀릴 듯 풀리지 않고, 꼬이기만 하는 정우의 연애사는 보는 내내 웃프다.
스포일러라 노출하기 어렵지만, 관객들이 빵 터진 몇몇 장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감정들이 좋았다. 사랑에 빠지면 원래 좀 유치해지고 소심해지지 않나. 당사자들에게 너무도 진지한 장면인데,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웃긴 그런 부분들이 시나리오 볼 때부터 좋았다. 보는 사람들을 씨익 웃게 만드는 게 우리 영화의 매력이다." 그리곤 실제 이상윤과 정우를 비교했다. "비슷한 부분도 분명 있긴 하다. 연애할 때 처음에는 나도 정우처럼 눈치도 보고 좀 소심한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정우는 마음을 알았는데도 머뭇거리지 않나. 반면 나는 서로 마음을 알고 난 후에는 강하게 밀어부치는 면도 좀 있다. 그런 부분이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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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과 벌써 세 번째 인터뷰다. 매번 할 때마다 느끼지만, 그가 인터뷰에 응하는 태도는 참 성실하다. 한 시간 남짓 인터뷰 시간동안 스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상윤은 2008년에 인터뷰를 했을 때나 2014년 인터뷰나 참 한결 같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배우다.
과거 인터뷰에서 이상윤은 연기자로서 고민을 털어놨다. 머릿 속으로 100% 이해가 되지 않으면 연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대본을 수십 번, 수백 번 읽어보고 연구하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선배들에게 계속 물어본다고 했다. 당시 '신의 저울'로 연기적으로 호평 받고, 주연급으로 으쓱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땐 그게 쉽지 않았다. 내가 납득되지 않는 상황은 연기로 표현되기 힘들었던 거지. 왜 그랬을까. 동기에 정당성을 찾고 또 찾았던 거 같다. 당시에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좀 성장했다고 봐도 될까. 여러 작품을 하면서 간접 경험도 했고, 내 스스로도 어른이 된 느낌도 있고, 누군가에게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곤경에 처하고, 이겨내고, 좌절도 하고, 그러면서 쌓인 경험들이 연기적으로 봤을 때 중요하게 됐다고 할까. 이제는 내 생각에 사로잡혔던 감정들을 한 발 물러서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 같다."
그리곤 "'힐링캠프'에서 하정우 선배가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하더라. "내가 어떤 역을 맡았을 때 '잘해야지'라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캐릭터도, 저런 캐릭터도 '소화해내야 겠다'고 마음을 먹는다"고 하더라. 그럴 때 연기가 보이는 거지. 발을 동동 구르고, 캐릭터 분석에만 열을 올리는 건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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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데뷔한 이래로 '신의 저울', '인생은 아름다워', '내 딸 서영이' 등 1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영화는 오랜만이다. '색즉시공 시즌2(2007)' 이후로 2번째 작업, 게다가 주연이다. 하지만 "부담보다 편하게 임했다"고 말했다."촬영하는 동안 즐겁더라. 고민없이 연기를 한 느낌이었다. 감독도 어떤 디렉션을 주기보다 '너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라'고 하더라. 일반적인 촬영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실제로 촬영 가서도 안주를 시켜놓고, 계속 먹다가 연기하다, 그런 분위기가 나다운 모습을 많이 보여줄 수 있었던 거 같다."
이어 "배우가 일상이 됐다"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아직 배우가 일상이라고 말하는 선배들 정도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연기자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내 딸 서영이'를 할 때였나. 작품에 들어갈 때도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컸는데, 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헤맨 것이 분명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극복해내면서 여유를 가지고 나오게 됐고, 그러면서 배운 결과물이 분명 있다. 그렇게 최종 목표를 향해 가지 않을까."
"'산타바바라'를 통해서도 순발력을 요구하는 드라마와는 다른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간을 두고 소통을 하는 영화라는 작업의 특성상 날것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됐던 것 같고, 또 그 숙제를 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다음 숙제는 무엇일까. "얼마 전에 고민을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와 같은 역할을 맡고 싶어서 미팅도 했었다. 성사가 되진 않았지만 아주 정상적이지 않은 역할이었다. 착하고 순한 관점으로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은 어떤 감정에서 인생을 바라볼까. 그런 궁금증에 끌리는 역할이었다. 완전한 악마 역에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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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상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인터뷰와 별도로 이상윤에게 본인의 뇌구조를 그려주길 부탁했다. 이상윤의 관심사, 걱정, 중요한 것 들이 나열된 뇌구조를 열어봤다.
-가장 중심에 '충전'이라고 썼다.
쉼 없이 작품을 해왔다. 이번에는 멍 때리면서, 집에서 충전을 좀 하고 싶다. 하하.
-팬을 바로 썼다.
말 안해도 팬들이 알지 않겠나. 내 팬들은 유난히 예전부터 응원해줬던 분들이 많다. 존재만으로도 항상 고맙다.
-운동을 많이 좋아하지 않나.
운동 중독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지만, 농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를 너무 좋아한다. 요즘은 야구에 부쩍 흥미를 생겨서 열심히 하고 있다.
-소속팀은?
이기스다. '신의 저울' 때 같이 했던 송창의 형이 주장이 되면서 '열심히 하라'고 협박을 듣기도 했다. (포지션은?) 외야수다. 운동을 너무 좋아한다. 작품 없을 때는 일주일에 이틀은 농구하고, 삼일은 야구와 축구도 하고, 내 스케줄을 보면 죄다 스포츠였다. 사람들이 '이 정도면 태능인 아니냐'고 하더라. 이건 아니가 싶어서 요즘은 제일 좋아하는 종목 하나만 한다. 연애도 해야하고.
-그러고보니 연애가 눈에 띈다.
연애는 정말 하고 싶다. 외롭다.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봐라.
-마지막으로 여행과 LP 듣기에 대해 물어보겠다.
여행은 먼저 쓴 '충전'이랑 연장선이다. 다음 작품 하기 전에 충전을 위해 여행을 가고 싶다. LP 듣기는 '엔젤아이즈'를 촬영하면서 관심이 생겼는데, 조만간 지인으로부터 턴테이블을 받기로 했다. LP 듣는 것을 취미로 계속 가고 싶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