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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을 앞둔 '군도'의 언론 시사회가 14일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렸다. 멀티캐스팅 영화답게 화려한 출연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민 머리' 하정우를 필두로 이성민 이경영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등 '군도' 군단과 이들의 '아름다운 적' 강동원까지. 호화롭게 차려진 밥상이었다. 16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졌어야 할 내용이 2시간 안팎에 녹이느라 내레이션이 들어갔다는 말처럼 각 캐릭터들의 설명과 사연의 분량도 방대했다. 하지만 '군도'는 이를 지루하지 않게 코믹한 설정과 대사로 잘 녹여냈다. 다만, 영화 홍보에서 주장했던 세상은 하나의 영웅이 아니라, 민초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무거운 메시지 전달은 없었다. 하지만 유쾌하고, 재밌었고, 흥행에는 분명 청신호가 들리는 오락 무비였다. 영화 속 감독과 배우들의 결과만 놓고 본 손익 지분율을 꼼꼼하게 따져봤다.
'믿고 보는 영리한 배우' 하정우, 잃을 게 없었다 (20%)
민머리의 하정우가 등장할 때마다 스멀스멀 웃음이 새나왔다. 산채의 큰 도둑임에도 심각함보다는 살짝 우스웠다. 헤진 옷과 모자라보이는 듯한 행동, 착착 감기는 남도 사투리. 뻔한 노안임에도 불구, 천연덕스레 "열여덟살"이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단순무식 코믹 캐릭터. 의도된 설정이었다. 영리한 배우 하정우의 변신. 사실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하정우에게 일방적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영화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하정우는 감초들의 웃음 코드를 나눠갖는 느낌이 강했고, 느린 변신은 극적이진 않았다. 그래서 만화같은 캐릭터들 속에서 한 명으로 묻히는 느낌도 있었다. 마동석보다 남성성이 부각되지 않았고, 조진웅보다 똑똑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하정우는 결코 손해보지 않았다. 흥행이 예정된 대작에 여성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동원과의 대립구도도 확실하다. 누가 뭐래도 '군도'는 하정우 영화다. '하정우=대작 흥행수표'란 인식을 단단하게 강화하는 계기가 될 듯…. 잃은 것 하나 없이 '하정우의 배려'란 느낌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오랜 친구의 '흥행을 담보한 블록버스터' 연출에 있어 배려는 고마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하정우는 감독이자, 친구이자,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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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은 예뻤다. 4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동원은 여성의 로망답게 끝까지 멋지다. 강동원의 존재감. 여성 관객을 향한 손짓 같은 '군도'의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장치였다. 개성 강한 무리들 사이에서 뒤엉켰던 하정우와 달리, 강동원은 홀로 잘 먹고 잘 사는 양반이자,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애당초 돋보일 수밖에 없는 악역. 거기에 성장과정에서의 받은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겉으론 누구보다 강한 남자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약한 남자. 그렇게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은 미워할 수 없는, 오히려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은 악역으로 재탄생했다. 절제미 넘치는 화려한 칼을 정의롭지 않은 방향으로 휘둘러도 여성 관객의 마음은 심하게 동요할만 하다. 이 영화에서 강동원은 분명한 잔상을 남겼다. 하지만 선뜻 '또 다른 강동원'으로의 확장을 언급하긴 힘들다. 멋진 남자 강동원의 새로운 면을 기대하기엔 글쎄…. 강동원의 최대 강점을 잘 활용한 영화. 적어도 4년 만에 복귀작치곤 무척 안전한 선택이었다.
씬 스틸러들 (15%)
왠만한 영화 주인공을 맡겨도 손색이 없을 쟁쟁한 씬 스틸러들의 총 집합소다. 이성민 이경영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정만식 김성균 김재명 등 이 배우에 나왔던 모든 배우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분명 빛났지만, 윤 감독의 적절한 비율 배분도 한 몫했다. '역린'에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아픈 손가락은 보이지 않는다. 각 배우들마다 임팩트 있는 장면을 하나씩은 꼭 남겨놨기 때문. 특히 윤지혜의 지분은 생갭다 높았다. 유일한 여배우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기도.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