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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시작한 일, 죽자고 커졌다. MBC '무한도전'의 향후 10년을 이끌어갈 차세대 리더를 뽑는 '선택 2014'.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공약 발표, 후보 검증, TV 토론회, 후보 단일화, 지지선언과 지지철회, 사전여론조사, 본격 선거운동, 그리고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한 온·오프라인 투표와 마지막 개표까지. 모든 선거 과정이 실제와 똑같이 진행됐다. 시청자들은 실제보다 더 흥미롭게 이번 선거를 지켜봤다. 실제 선거를 방불케 한 열기로 가득찼던 투표 현장. 뜨거움의 정도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고심 끝에 찾은 현장. 기자도 한 표를 직접 행사했다. 이로써 관찰자임과 동시에 참여자가 됐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무한도전'의 '선택 2014' 분위기. 독자에게 날 것 그대로 배달해 보고자 한다.
투표소에 도착했다. 유재석, 노홍철, 정형돈, 세 후보의 포스터가 투표 참여자를 반긴다. 정형돈 지지선언과 함께 사퇴한 정준하, 박명수, 하하의 '후보자 사퇴 안내' 벽보도 붙었다. 투표 안내와 진행을 실제 중앙선관위가 도왔다. 투표 절차도 리얼 그 자체였다. 선관위가 투표자의 신분증을 받아 기계에 넣어 스캔하고 엄지손가락 지문 인식을 하니 컴퓨터에 인적사항이 뜬다. 투표자가 선거인 명부에서 본인 확인을 한 뒤 사인하는 것과 같은 의미. 투표를 인증하는 절차다.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택 2014'는 선거인 명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신분증 대신 선관위가 마련한 모의신분증을 이용한다. 신분 확인이 끝나자 투표용지가 출력되고 기표소로 걸음을 옮겨 기표한 뒤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이걸로 투표는 끝이다.
기계를 이용한 신분 확인은 이번 6·4 지방선거 사전투표에 처음 도입됐다. 사전투표제는 투표일 닷새 전 전국 어디서나 먼저 투표할 수 있도록 한 제도. '무한도전'도 지난 17, 18일 전국 10개 도시 11개 투표소에서 8만 3000여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사전투표는 전국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신분 확인에 기계를 사용하지만, 실제 본 투표에서는 기존과 똑같이 선거인 명부를 바탕으로 투표가 진행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용지를 건네며 6·4 지방선거 홍보와 투표 독려를 잊지 않았다. 왠지 벌써 지방선거 투표를 끝마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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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30분. 큰 목소리가 들린다. 노홍철이다. "으하하하" 특유의 유쾌한 웃음과 함께 등장한다. 그는 역시 조용하지 않다.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순간까지 특유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당선 유력 후보'다운 자신감일까. "긴장 탓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는 유력 후보(?)는 패션도 화려했다. 멤버들의 사생활 공개 등 투명성을 강조한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아 '시스루' 상하의를 걸쳤다. 그는 "수신료 1원이 얼마나 값지고 한 표의 결과가 얼마나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드리겠다"며 "누가 당선되든 진정한 시청자의 뜻을 역행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각오를 밝혔다.
오전 10시30분. 투표장을 에워싼 시민들이 크게 술렁인다. 열광적인 환호를 가르며 등장하는 인물. 유재석이다. 리더답게 파격보다 기본을 컨셉트로 잡았다. "지금까지의 리더는 선거과정을 통해 뽑힌 게 아니었지 않나. 이번에 선출된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 생각한다. 누가 당선되든 모두 똘똘 뭉쳐 더 큰 웃음을 전해드리겠다"며 '1인자'다운 겸손 소감을 밝힌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줄이겠다'는 공약이 궁금해 물었다. "시청자를 위해 기본을 지키고 시간을 밀도 있게 쓰고 아끼자는 의미"라는 설명이 돌아온다.
세 후보 모두 6·4 지방선거 얘기에는 진지모드로 돌변해 관심을 당부했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자신들도 반드시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현장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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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투표와 다른 모습 하나를 발견했다. 투표소 분위기다. 그야말로 축제 한마당이었다.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의 표정. 더 없이 밝다. 투표 참여자 중 낯 익은 얼굴도 보인다. 연예인이다. 스케줄 이동 중에 짬을 내 여의도 투표소를 찾았다는 걸그룹 피에스타 멤버들은 "투표라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데 '무한도전' 덕분에 한층 더 친숙해진 것 같다"며 "실제 투표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준 예행연습이 됐다"며 생긋 웃는다. 올해 처음 투표권을 갖게 된 막내 이예지(20). '무한도전'에서 소중한 첫 경험을 했다. 그는 "투표라고 해서 사실 긴장도 되고 부담도 됐는데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실제 선거에서도 유느님(유재석)처럼 따뜻한 사람, 그리고 꼭 공약을 지키는 사람이 당선되었으면 좋겠다"며 즐거워 한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온 주부 김세영(40) 씨와 김경화 씨, 허정미 씨는 동갑내기 친구다. 용강초등학교 2학년 친구 사이인 세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김세영 씨는 투표소에 오기 전 아들 채요헌 군과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단다. 김세영 씨는 "'무한도전'의 팬인 아들이 투표를 하겠다고 해서 함께 오게 됐는데 아이들이 학원에 가는 것보다 투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교육이 된 것 같다"며 "'무한도전'의 정치 풍자에 공감했고, 기본에 충실하자는 후보들의 공약이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화 씨도 "실제 선거 때 엄마 아빠가 투표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참여하고 싶어했는데, 이번에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 무척 뿌듯하다"고 웃는다. 허정화 씨는 "선관위에서 열심히 홍보해도 투표율을 올리는 게 쉽지 않은 데 '무한도전'은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며 "그동안 좋은 기획이 많았지만 이번 선거 특집은 특별히 '특급 칭찬'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