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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아가 부쩍 자랐다.
처음에 대본을 받아봤을 때 몽환적인 느낌이 짙었다. 베드신도 있고 한데, 감독의 전작도 모르고, 이런 느낌이 잘 나타날지 걱정이 됐었다. 다 찍은 후에 보는데 펑펑 울었다.
-왜 펑펑 울었는지.
-불과 10회차 촬영이었다고 들었다. 여배우를 예쁘게 찍으려면 고생 많았겠다.
예쁜 모습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2,3대를 동시에 돌렸다. 찍고 나서 스태프들끼리 교감도 많이 하고, 풀샷, 바스트, 여러 샷을 찍은 후에 가장 예쁜 컷을 골라서 썼다. 여러 각도에서 찍으니 예쁠 수밖에.
- 솔직히 그동안 고은아를 볼 때 실물을 화면에서 잘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하하. 실제로 만나면 생갭다 의외로 키가 크다. 얼굴도 작다. 말랐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듣는다. 동생이랑 많이 닮았다는 소리도 듣는다.
- SBS '오 마이 베이비'를 보면 동생 엠블랙 미르랑 많이 닮았다.
방송에서보다 실제로 더 닮았다. 쌍둥이 아니냐? 소리 많이 듣는다. 어려서는 몰랐는데, 남자와 여자가 닮았다는 게 아니지않나. 나 여잔데.
-에피소드도 있었겠다.
한 번은 어떤 여자가 내 번호를 따가더라. 나에게 (미르인 줄 알고) 사인해달라고 하더라. 기분이 나쁜데, 반응은 하지 않았다. 가끔은 엄마가 못 알아볼 정도다. 하하.
-방송에서 보면 대식구가 함께 사는 모습이 보기좋다.
집에 여자만 9명이다. 왁자지껄하다. 원래는 친구랑 둘이 살다가 잡혀 들어갔는데, 이제는 북적이지 않으면 못 살정도로 대가족이 좋다.
-만 25세다. 벌써 20대의 중반에 접어들었다. '스케치'를 보면서 연기에 책임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연기에 대한 부담이 컸다. 호흡이 한 번이라도 놓치면 풍지박살나고, 감정이 튀어버리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연기자로서 힘든 일도 겪지 않았나.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작품 활동을 쉬기도 했고.
내 의도와 다르게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때가 꽤 됐다. 그래서 극 중 수현이를 이해했다. 수현이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주변 여건이 쉽지 않았다. 수현이 안에 들어가서 그동안 쌓여있던 나를 쏟아냈다.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는 성격아닌가. 언제나 고은아하면 밝은 느낌이 크다.
사람들한테 내가 힘들다고 해서 보여준다고 동정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않나. 나에게 상처를 줬던 많은 사람들에게 '너 나한테 상처줬지?'라고 따져서 어쩌겠는가. 다만 카메라가 안돌 때 그냥 눈물이 주륵주륵 흐른 적도 있다.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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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민(박재정)이한테 가서 따지는 장면이 있는데, 억양이 올라갈수록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 울면 안되는데. 단칼로 말해야 하는데. '월세 내줬냐'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 화를 내는 내가 불쌍해보이더라. 그때 사람들한테 불쌍하게 보이기 싫어서 강한 척 했던 오만가지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울었다. 그때 스태프들이 나를 안아줘서 고맙더라.
-마음 속에 한(恨)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솔직히 어려서 데뷔할 때도, 누군가 짓밟았을 때도 그랬고, 복귀할 때도 그랬고, 지금까지 어려운 일 투성이었다. 한 번은 뮤직비디오 감독과 미팅하는 자리에서 발랄한 나를 보더니 '너는 왜 그렇게 눈이 슬프냐'는 말을 들었다. 그 말 한 마디에 눈물이 쏟아지더라. 내가 감추려는 모습을 들키면 눈물이 난다.
-이번 영화가 고은아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까.
시나리오 보면서도 그랬지만 '이걸로 내가 비상할거야'란 생각을 하진 않는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그동안 보여줬던 친근한 이미지도 좋지만, 나란 사람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훌쩍 자랐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더라.
-베드신이 처음인데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텐데.
물론 그랬다. 그래서 고민 많이 했고, 감독하고 대화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오로지 베드신과 노출만이 어필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감독 역시 많이 배려해줬다. 베드신이 필요해서 찍었지 일부러 찍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 사실 처음에 감독에게 "베드신이 너무 두렵다. 하지만 예쁘게 찍어준다고 한다면 속옷만 입고 현장을 뛰어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김독이 "왜 속옷을 입고 뛰어다녀요. 우리 그런 영화 아니에요"라고 말하더라. 감독에게 많이 고맙다.
-마지막 촬영 끝나고 감회가 남달랐겠다.
촬영장을 떠나기 싫더라. 난 아직 안끝났는데 말이다. 스태프들이 철수하는데 '아직 아니야'라고 생각이 들더라. 그만큼 헤어짐이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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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