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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최고 개념연예인은 바로 엄용수 '여유만만 고백'

강일홍 기자

기사입력 2014-01-16 13:59


연예계 개념연예인으로 흔히 차인표 신애라를 꼽는다. 이들 부부의 세 자녀 중 두 딸은 입양아다. 예은(9) 예진(7)은 대한민국 어느 가정의 자녀 보다 행복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개념 연예인 차인표 신애아를 부모로 둔 덕분이다.

친 자녀를 두고도 생면부지의 피붙이를 가슴에 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입양 부모의 헌신적이고 차별없는 사랑과 관심은 늘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알고보면 우리 연예계 진짜 개념 연예인은 따로 있다. 다름아닌 개그맨 엄용수다. 그에게는 6명의 금쪽같은 손자 손녀가 있다. 두 명의 입양아를 친 차녀 처럼 키워 번듯이 시집장가 보낸 결과다. 그는 지금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가장 행복하고 넘치는 사랑을 쓸어담는 할아버지 개그맨이 됐다.

해군 중위인 친 아들 엄세준 외에 아들 본혁씨와 현아씨는 이들이 초등학교 미취학 아동시절에 입양한 소중한 아들과 딸이다. 엄용수가 아직 결혼도 하지않은 총각시절이다.

엄용수는 "결혼후 저도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고, 외부활동이 많은 연예인이란 직업상 아이들과 아기자기한 사랑을 넉넉하게 공유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부모 자식간 깊은 정이 들었다는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아이들이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집에 오면 어렵고 고단했지만 행복했던 제 어린시절의 시끌벅적한 훈훈한 사랑이 온 집안에 되살아 넘쳐난다"면서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지금껏 아이들을 키우면서 낳은 정 기른 정이 어떻게 다른건지 경험해보지 못할 만큼 제겐 모두 똑같은 자식이었다"고 말했다.

엄용수가 본혁 현아 남매를 입양해 가족이 된 것은 친 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한 것은 27년전의 일이다. 당시 그는 시골(경기도 화성)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향의 자신의 집에서 세를 살던 집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보육시설에 맡겨졌다가 적응을 못해 다시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딱한 사정이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잇달아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갈곳이 없었고, 한때 한 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이란 인정이 결국 인연이 됐다. 엄용수는 "결혼도 안한 총각한테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모른 척 뿌리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음 붙일 곳 없어 찾아온 애들을 어떻게 또다시 시설로 돌려보낼 수 없어 서울로 데려와 그날로 가족이 됐다.


혼자였지만 집안 일을 돌보는 아주머니를 둘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때여서 연로한 어머니 보다는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데는 서울 자신의 집이 더 형편이 좋았다.

이후 그는 탤런트 백경미씨와 결혼해 아들 세준군을 낳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내와 이혼했지만 세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달라질 게 없었다. 오히려 더욱 애정을 담아 아이들에게 정성을 기울였다.

그의 두번째 아내는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한 배상문의 엄마다. 그가 첫 아내와 이혼 후 싱글대디로 살던 시절 후배개그맨 고 김형곤이 적극 중매해 인연을 맺었다. 배상문이 초등학교 3학년때다.

알고보면 지금의 배상문이 존재했던 것도 엄용수의 헌신이 밑거름이었다. 그는 배상문이 골프 입문을 도왔고, 아빠로서 든든한 경제적 후원자였다. 배상문의 어린시절 첫번째 필드 라운딩도 엄용수였다.

엄용수는 "골프를 하지 않던 제가 골프채를 잡은 계기는 상문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면서 "어려서부터 승부근성이나 체질적인 가능성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종종 매스컴에 등장하는 배상문의 PGA 활약 보도에 남모르는 감상에 젖는다.

자녀들과의 행복한 만남과는 달리 부부운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두번째 결혼도 실패했다. 그가 두번 다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바로 이때부터다.

"핑계같지만 두번째 결혼은 사실 집안에 엄마라는 역할을 만들어 아이들을 좀더 보살필 수 있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 아내를 맞으면서 친자, 양자, 의붓 자녀까지 예상치 못한 복잡한 관계가 형성됐고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서로 상처만 입은 꼴이 됐습니다."

그는 서른 여덟 노총각시절에 첫 결혼을 했다가 10년도 안된 짧은 기간에 두번씩이나 이혼이라는 쓴맛을 봤다. 그래도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만족한 삶이라고 자부한다. 다 자녀들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반듯하게 자라줘 고맙죠. 큰아들은 스물세 살 때 일찍감치 결혼해서 아들, 딸 골고루 낳아 잘 살고, 7년전 결혼한 딸도 갈수록 이 아버지를 감동시킵니다. 더불어 가족이 된 며느리와 사위도 말할게 없습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아버지를 안 닮아 천만다행이죠."

미혼인 해군 중위 엄세준씨와는 휴가 외출 때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며 부자간의 정을 확인한다. 그는 "남들은 나이 먹어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기댈 여자가 있어야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절실하게 필요성을 못느낀다"면서 "처복이 없는 만큼 자식복은 있으니 다행 아니냐"고 너털 웃음을 짓는다.

엄용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가 아닌 순수 연예인으로만 봐도 완벽한 개념맨이다. 그는 코미디 선후배들은 물론이고 가수 배우 탤런트, 심지어 성우나 엑스트라 연기자들한테도 소문이 난 개념연예인이다. 베품과 나눔이 몸에 밴 몇 안되는 연예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는 개그맨들의 오랜 숙원인 코미디협회를 탄생시켰다. 대한가수협회나 한국방송연기자협회와 달리 자체 가동력이 없다는 점에서 기여한 바가 같하다. 그는 '코미디언들의 화합'만을 위해 그는 그동안 개그계의 누구도 엄두를 못낸 이 일을 수년간 자비를 들여 이끌고 있다.

외부 지원금이 전혀없는 상태에서 발족한 협회운영은 처음부터 엄청난 부담이었다. 자신은 아예 무료봉사이고, 사무실 및 직원 급여까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주변에서 "혼자서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건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말리는 축도 없지 않다.

그럴때마다 그는 "고참급 개그맨중에 그나마 기업과 지자체 행사에 자주 불려다니는 건 나 아니냐"면서 "행사 무대를 2~3번만 더 뛰면 될 일을 힘들다고 중도 포기하면 개그맨들은 정말 설 곳이 없어진다"고 응수하곤 한다.

1981년 데뷔한 엄용수는 올해로 데뷔 35년째로 접어든다. 지금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이라면 송해 구봉서 같은 대원로급 선배들과 개콘세대의 신진 개그맨들을 하나로 묶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물론 아쉬움도 많다. 대접까지는 아니라도 가수나 연기자들 처럼 경력이 올라갈수록 세대간 활동영역이 물흐르듯 이어지지 못한 대목이다.

"콩트 코미디 전성시절이던 '유머1번지' 때부터 지금까지 매주 그날 그날 스케줄에 급급하느라 멀리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을 키우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고,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일수록 존경받는 연기자로 남아야하는데 7080 개그맨들 거의 대부분이 무대를 잃었다"고 아쉬워했다.

엄용수는 개그맨 중 공부를 많이 하는 것으로도 소문이 났지만, 이 부분에 대해 "저를 포함한 개그맨 모두가 게으름에 대한 반성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매일 5개 이상 일간지를 통독하고 한달 10권 이상 책을 읽는 독서가다.

"가수는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를수록 팬들의 귀에 더 익숙해지고 연기자는 같은 연기스타일을 반복하면 개성파 배우가 됩니다. 그러나 개그맨들은 새로운 이슈와 트렌드를 끊임없이 습득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팬들로부터 금방 외면당하죠."

그는 데뷔 35년간 방송을 단 1주일도 쉬어본 적이 없는 개그맨으로 꼽힌다. 결혼할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심지어 이혼한 주에도 방송을 했다. 그만큼 방송에 올인하고 산 인생이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게 그의 말이다.

"스스로 많이 웃겼다고 자부했지만 35년 세월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부끄러울 때가 있거든요. 공부하는데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마이크 앞에 서면 늘 부족함이 핸디캡입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는 '멀리봐라' '책을 읽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당장 다음주 아이디어가 없으면 방송에 못나가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인거죠."

그가 협회를 만들기 전까지 개그맨 선후배들끼리의 화합을 이루는 일은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나이대가 1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넓고, 소득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방송사별로도 제각각이라 서로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

선배들은 "돈 맛에 든 후배들이 선배도 몰라보고 애경사에도 안온다"거나 후배들은 후배들대로 "바쁜 스케줄에 매번 후원만 할 수는 없다"고 볼멘소리였다.

그가 앞뒤 안보고 모든 희생과 봉사로 뛰어도 말은 많았다. 후배들은 수십번씩 전화를 해 확인해야 나타날까말까였고, 식사자리에 초대된 일부 선배들은 격려는 커녕 늦게 와서 "왜 선배를 모시지 않느냐"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후배들은 먼저 자비를 들여 식사에 초대해주는 선배들이 어느틈엔가 고마워졌고, 선배들은 일부러 스케줄을 빼 찾아와주는 후배들이 대견스러워진겁니다. 저로서는 너무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일이죠."

연예생활 35년을 맞은 엄용수한테는 마지막으로 작은 소망이 있다. 지금까지는 코미디협회를 중심으로 자신을 내던졌다면 앞으로는 연예인들을 대표하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의 이끌며 그에게 당면과제가 된 것은 또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어 무대를 잃고 생계가 어려워진 선배들을 챙기는 일도 그의 몫이 됐다. 해마다 그는 한두차례식 선배와 후배들의 만남의 장을 주선한다.

안두닐르 먹코미디언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다수 연예인들의 현실인 탓이다.

그는 최근 백남봉이 세상을 떴을 당시 빈소의 모습이 희극인의 단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했다.

활동하는 방송사도, 영역도, 연령대도 다르지만 빈소에는 선후배 개그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장례식 때는 방송 3사의 개그맨 후배들이 함께 운구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엄용수는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통해 희극인이 서로 어울리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그다음에 코미디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각자가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데뷔할 때에는 개그맨 30명이 안 될 때였는데 지금은 우리 협회에 등록된 희극인 수만 700명이 넘어요. 협회에 등록된 회원들의 연령대만 보면 말그대로 격세지감이다. 그가 협회를 만들기 전까지 개그맨 선후배들끼리의 화합을 이루는 일은 가장 큰 애로사항이었다. 나이대가 1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넓고, 소득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방송사별로도 제각각이라 서로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 선배들은 "돈 맛에 든 후배들이 선배도 몰라보고 애경사에도 안온다"거나 후배들은 후배들대로 "바쁜 스케줄에 매번 후원만 할 수는 없다"고 볼멘소리였다.

체육대회도 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 함께 모이기도 하면서 단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고 싶습니다."

◇코미디 살려면 성인ㆍ시사 코미디 부활해야 = 엄용수는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황기순, 김정렬, 김학래 등 동년배의 코미디언과 함께 출연했다.

저녁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젊은 개그맨들에게 뒤지지 않은 입담을 과시했고 이날 방송은 온ㆍ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용수는 리얼 버라이어티나 젊은 연령대의 개그맨이 등장하는 공개 코미디, 토크쇼로 나뉜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다"면서도 "성인 코미디가 사라진 탓에 시사와 풍자는 찾기 힘들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짧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코미디는 있지만 성인들이 보고 즐길 만한 시사성 강한 코미디는 보기 힘들어졌다"며 "1970~80년대 노래들이 '7080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살아났듯 방송에서 설 자리가 생기면 성인 코미디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용수가 여러 번 결혼생활을 해본 소감을 밝혔다.

개그맨 엄용수는 7월11일 방송된 MBC '기분 좋은 날'에서 배우 사미자 등과 함께 은퇴 후 노후생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엄용수는 "난 혼자 살기 전문이다. 혼자 살면 발작 등 응급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어떨 때는 음식 때문에 혼자 체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곁에 사람이 있다면 응급처치를 할 텐데 혼자라 당황스럽더라"고 털어놨다.







"예전에 구봉서 선생님이 할아버지였고, 배일집 형은 아버지였어요. 제가 큰 형이라면, 조금산이나 이봉원이는 동생이었죠. 그때는 정말 가족처럼 살았어요. 아직 아이디어가 여물지 않은 친구는 포졸도 했다가 행인도 했다가, 그러다가 나중에 크게 터트리기도 하고요."

한국방송코미디협회 회장인 코미디언 엄용수(57)가 돌아보는 1980년대 전후 코미디의 전성시대다.

이전에는 친목단체였던 한국방송코미디협회를 지난 4월 사단법인으로 출범시킨 그는 사비를 털어가며 협회를 이끈다.

코미디언들이 협회를 만들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것은 연예계 다른 직종 종사자들이 대한가수협회나 한국방송연기자협회 등을 일찌감치 출범하며 활발한 활동한 데 비하면 한참 늦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가진 엄용수와의 인터뷰는 과거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그가 목소리를 높여 강조하는 것은 "코미디언의 화합"이었다.

그는 "시사 코미디의 발전을 위해서 가요계에 '7080 붐'이 일었던 것처럼 성인 코미디가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코미디계의 발전과 원로 코미디언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는 왜 자니 카슨ㆍ빌 코스비 없나 = 엄용수는 코미디언들이 뭉쳐야 하다며 '웃음이 대우받는 문화적 분위기'와 '코미디언들의 지속적인 자기 계발'이라는 거창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은 재벌 상위 100등 안에 매년 코미디언이 3~4명 정도는 있잖아요. 자니 카슨도 재벌이고 빌 코스비도 매년 소득 상위에 랭크돼 있고요. 미국은 '웃기는 사람'이 부자예요. 유머를 비싸게 쳐주는 문화가 있는 거죠. 그래서 경제나 정치 같은 딱딱한 자리에도 유머가 있는 것이고요."

그는 한국의 경우 "드라마의 한류 스타 1명이 받는 개런티는 3억원까지 치솟지만 개그맨은 기껏해야 편당 800만원 정도가 최고"라고 지적했다. "개런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인정하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편당 800만원은 그나마 톱스타의 경우지, 다른 코미디언들은 비슷한 급의 가수나 연기자들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요. 웃음을 주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적은 대가를 받는 것이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거죠."

1981년 데뷔한 엄용수는 올해로 데뷔 30년째다. "매주 급급하게 살며 멀리 보는 장기적인 노력이 없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후배 개그맨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데뷔 이후 방송을 1주도 안 쉬었어요. 제가 이혼을 두 번이나 했는데 이혼한 주에도 방송을 했거든요. 도대체 30년을 뭐로 웃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여유도 가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후배들에게는 '멀리봐라', '책을 읽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작 당장 다음주 아이디어가 없으면 방송에 못나가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죠."

◇원로 코미디언 복지대책 '시급' = 엄용수는 코미디언들이 뭉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원로 코미디언들의 복지 대책 마련을 꼽기도 했다.

"희극인들이 무슨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우가 그렇게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노후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배 중에서 재테크로 노후 대책을 마련한 분도 계시지만 한 때 이름이 있던 분 중에서는 단칸방에 살며 경로당을 도는 분도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노조 회비 중 극히 일부로 1년에 50만원 정도 보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코미디언들의 노후 대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그는 최근 백남봉이 세상을 떴을 당시 빈소의 모습이 희극인의 단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했다.

활동하는 방송사도, 영역도, 연령대도 다르지만 빈소에는 선후배 개그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장례식 때는 방송 3사의 개그맨 후배들이 함께 운구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엄용수는 "앞으로 다양한 사업을 통해 희극인이 서로 어울리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그다음에 코미디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각자가 미래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데뷔할 때에는 개그맨 30명이 안 될 때였는데 지금은 우리 협회에 등록된 희극인 수만 700명이 넘어요. 지금은 연령대도 1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넓은 데다 소득도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또 방송사별로 제각각으로, 서로 어울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체육대회도 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 함께 모이기도 하면서 단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코미디 살려면 성인ㆍ시사 코미디 부활해야 = 엄용수는 지난 5월 MBC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 황기순, 김정렬, 김학래 등 동년배의 코미디언과 함께 출연했다.

저녁 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은 젊은 개그맨들에게 뒤지지 않은 입담을 과시했고 이날 방송은 온ㆍ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용수는 리얼 버라이어티나 젊은 연령대의 개그맨이 등장하는 공개 코미디, 토크쇼로 나뉜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다"면서도 "성인 코미디가 사라진 탓에 시사와 풍자는 찾기 힘들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짧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코미디는 있지만 성인들이 보고 즐길 만한 시사성 강한 코미디는 보기 힘들어졌다"며 "1970~80년대 노래들이 '7080 가요프로그램'을 통해 살아났듯 방송에서 설 자리가 생기면 성인 코미디가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유머1번지'에서 김형곤 형이랑 '회장님, 우리 회장님' 했었잖아요. 그때는 민감한 내용이 담기면 방송사의 윗분이 녹화된 테이프를 우리가 보는 앞에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시사적인 내용을 개그로 표현하려고 했고 시청자들은 또 그걸 기다리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는 "'유머1번지'나' 청춘만세', '명랑극장, '웃으면 복이와요' 같은 프로그램들을 기다리는 성인 코미디의 팬도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5편을 만들면 성인 코미디를 1편은 방송해야 하는 식으로 성인 코미디를 육성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려고 해요. 협회 차원에서 성인 코미디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조사를 벌일 계획이고요. 코미디는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손자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가 모두 모여서 함께 볼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년전 가슴으로 품어…23일 결혼식







엄용수는 "그간 부모가 다른 6명의 자식들과 함께 살아봤다. 아내도 복수로 둬봤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건 아무리 북적거리며 살아도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거더라. 언제일 지 모르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된다"고 말했다.

엄용수는 "결국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걸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멋있게 살 수 있다면 전원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남다른 소신을 드러냈다.

이어 엄용수는 "행사는 젊은 시절 박리다매로 뛰어다녀야 한다. 오늘도 끝나면 행사를 갈 예정이다. 분양띠 두르고 사인해야 한다"고 덧붙여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엄용수가 결혼생활에 큰 장애물은 과한 오지랖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았다.

엄용수는 최근 진행된 MBC드라마넷 '미인도'녹화에서 에서 넓은 오지랖 때문에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날에도 행사를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엄용수는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서도 행사 때문에 급하게 혼자 귀국한 적도 있다"며 "그것이 두 번의 이혼에 한 몫 한 것 같다"고 씁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런 엄용수의 행동에 대해 평소 심리학에 조예가 깊은 MC 김지은 아나운서는 그의 지나친 오지랖의 원인이 형제 관계에서 온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엄용수는 2남 3녀 중 삼남이다. 장남도 막내도 아닌 중간자의 위치에서 위, 아래형제들을 다 챙기느라 오지랖이 자연스레 늘었다는 것.

또 김지은은 엄용수가 여동생들을 대하던 버릇이 발동해 아내를 대할 때도 마치 여동생 대하듯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한 엄용수의 태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를 서운하게 했고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하나의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심리분석을 유심히 듣던 엄용수는 김지은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그간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과한 오지랖이 아내를 외롭고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었겠다"며 깊이 자기반성을 했다.



엄용수가 노후자금 마련계획에 대해 입을 열었다.

개그맨 엄용수는 7월11일 방송된 MBC '기분 좋은 날'에서 배우 사미자, MC 김한석 김성경 등과 함께 은퇴 후 노후생활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엄용수는 "그동안 재판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 했다. 대신 난 아직도 늙지 않았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부지런히 노후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엄용수는 "이제는 재판장에 갈 일이 없다. 결혼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에 사미자는 "늦바람 날까 걱정이다"고 농담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엄용수는 "그간 부모가 다른 6명의 자식들과 함께 살아봤다. 아내도 복수로 둬봤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건 아무리 북적거리며 살아도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거더라. 언제일 지 모르지만 결국 혼자 남게 된다"며 "결국 사람은 외로움이라는 걸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멋있게 살 수 있다면 전원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그맨 엄용수의 몰래한 선행이 '가정의 달' 5월 뜻 깊은 감동을 안기고 있다. 엄용수는 20여 년 전 부모 잃은 아이 둘을 양자, 양녀로 입양해 남몰래 친자식처럼 돌봐왔다. 게다가 그렇게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이 오는 6월 시집을 간다. 그렇다고 엄용수에게 친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슴으로 낳은 남매에 친자식까지, 세 아이를 사랑으로 키워낸 '싱글대디' 엄용수의 아주 특별한 가족 이야기.



시골집 찾아온 예전 '한지붕 가족', 보듬어 살아온 게 20년

개그맨 엄용수(55)의 가족사는 특별하다. 두 번 결혼해 두 번 이혼, 애만 모두 셋을 낳았다. 2남 1녀. 그 가운데 자식 둘이 '가슴으로 낳은' 딸, 아들이다.

입양한 아들은 일찌감치 제 짝을 찾아 분가를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도 6월 말 결혼한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난 엄용수는 대뜸 처음부터 자식 자랑에 열을 올렸다.

"우리집 애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능력이 좋은지요. 서른 살 먹은 큰아들은 스물세 살 때 결혼해서 아들, 딸 골고루 낳고 살죠, 우리 딸이 골라온 사윗감은 또 얼마나 번듯하고 성실하다구요. 애비는 서른여덟에 처음 결혼해 두 번이나 실패를 했는데 말이죠. 그런 점은 적어도 아버지 안 닮아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엄용수가 자녀를 입양한 건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전 시골집에서 세를 살던 집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보육시설에 맡겨졌는데 적응을 못해 예전에 살던 집이라고 어머니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아이들 사정이 여간 딱한 게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유명을 달리하셨고, 아버지도 아내를 잃은 슬픔에 화병으로 시력을 잃고 결국 세상을 떴다 하더군요. 그래도 한때는 한 지붕 아래 살던 사람들이니 남달랐죠."

엄용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모른 척 뿌리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애들이 안됐잖아요. 마음 붙일 곳 없어 찾아온 애들을 어떻게 또다시 시설로 돌려보내요. 그냥 아저씨랑 같이 살자 하면서 가족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결혼도 안 한 노총각이었을 때다. 아무리 어머니의 청이 있었다고는 해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에는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엄용수는 "개와 고양이도 한울타리에서 살면 친구가 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의 인연이야 더욱 소중한 것 아니겠냐"며 "하늘이 내려준 인연으로 알고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입양 당시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또 "애 키우는 사람은 원래 계산을 않게 되는 법인가 보다"라는 말로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용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아이들에게 특별한 시선을 갖지 말아달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지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런 선입견으로 인해 아이들이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게 이유였다.

"전 입양이라는 단어도 가급적 안 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피 한 방울 섞이고, 안 섞이는 게 가족 되는 데 뭐 그리 중요해서요. 부부도 처음에는 다 '우연'으로 시작되는 거 아닌가요? 우연이 인연 되고, 인연이 결실을 맺으면 가족이 되듯 우리 아들, 딸과의 만남도 그러했네요."



"내 자식, 남의 자식 차별 없이 사랑하나 매일 스스로 되물어"

엄용수는 입양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좀 더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 가정에서 한 명씩만 맡아줘도 이 세상에 부모 없이 고생하는 아이는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하리수의 입양과 관련해서도 그는 관대함을 넘어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의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이 세상에 100% 완벽한 가정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부모가 능력이 좀 없을 수도 있고, 몸이 아프거나 혹은 불구자일 수도 있어요. 자식도 마찬가지로 남보다 부족할 수도, 또 넘칠 수도 있는 게 당연하네요. 내 부모가 못났다고 부모가 아닌 게 되나요? 내 자식이 다른 집 자식들보다 좀 떨어진다고 자식이 아닌 건가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후에 아이가 받을 상처를 운운하며 하리수씨의 입양을 반대하는데 만약에 진짜 아이가 커서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 아이의 인성이, 그리고 교육이 잘못된 겁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이혼으로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도 얼마나 많아요. 제 자식도 뻔뻔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세상인데 남의 아이 사랑으로 키우겠다면 칭찬까진 아니어도 욕할 건 절대 못된다고 봐요."

그렇다고 엄용수가 또 무조건적으로 입양을 찬성하고 드는 것만도 아니다. 입양을 하기에 앞서 단지 필요에 의해 가족이 되려 하는 건 아닌지 수백 번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확실한 다짐을 받으라고 그는 조언했다. 사랑 없이 맺어진 가족 관계는 사소한 마찰에도 깨어지기 쉽고, 그럴 경우엔 오히려 처음부터 가족이 안 되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엄용수 자신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자책과 반문을 거듭해야 했었는지 모른다.

"내 자식도 키우다 보면 힘에 부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도 있구요. 매일매일 제 자신에게 되물어야 했어요. 과연 내가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차별 없이 대하고, 차별 없이 사랑하는가 하고 말이죠."

결혼을 한 이후에는 오히려 관계가 더욱 복잡해졌다. 결혼 당시엔 엄용수의 아내도 선뜻 남편의 뜻에 동의하며 온전한 가족을 이뤘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가족 구성원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용수는 자신의 실패담을 예로 들며 "이제 막 아이를 입양했거나 혹은 입양을 고려 중인 사람이라면 부부 관계가 안 좋을 때일수록 특히 더 아이에게 신경을 쓰라"고 귀띔했다.

엄용수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시집보내려 하니 좋기도 한 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수시로 허해지기도 한다"며 적적해했다. 이제 딸까지 결혼 후 분가를 하고 나면 집에 있는 사람이라곤 엄용수 자신과 올해 고3 된 친아들 딸랑 둘뿐이다. 엄용수는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다 채울 수 있을까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유독 아이들을 예뻐하던 그였다. 엄용수는 "결혼을 후회해본 적은 있어도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일만큼은 지난 20여 년간 단 한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두 번의 이혼으로 아내가 있었던 순간보다 혼자인 때가 더욱 많았던 그다. 남자 혼자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런 아이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생활이 외롭지 않고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다고 그는 믿는다.



"아이들이 어느덧 성장해 며느리에 사위까지 보게 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는 개그맨 엄용수. 그는 "자식은 역시 많고 볼 일"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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