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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日 역사인식 부재 비판 "한국에 과거사 사과해야"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7-26 17:06


사진제공=스튜디오 지브리, 대원미디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72) 감독이 일본의 역사 인식 부재를 비판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26일 오후 일본 도쿄도 코가네이시에 위치한 개인 아틀리에 '니바리키(二馬力)'에서 한국 취재진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이 분다'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달 일본 개봉에 즈음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행하는 잡지 '열풍'에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 움직임을 비판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글을 실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터라 기자간담회에서는 이와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 글은 헌법 개정에 대한 내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한 것뿐이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면서 "지금처럼 격동하는 시대에 헌법을 바꾸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은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싸우면 안 된다. 별 것 아닌 것들로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별 것 아닌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과거사가 별 것 아니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일본의 총리가 곧 교체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의 역사 인식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히는 미야자키 감독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힘주어 얘기를 시작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1989년도에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같은 시기에 소련도 붕괴됐다. 그 시기에 일본인은 역사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재의 일본이기 때문에 하시모토 담화 같은 나오는 거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역사 감각을 안 갖고 있는데, 역사 감각을 잃어버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거침 없이 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예전에 일본이 청산을 했어야 한다"면서 "하시모토(위안부 망언으로 도마에 오른 오사카 시장) 발언이 나오는 건 일본에게도 굴욕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군부가 일본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반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렇게 역사 얘기를 해 왔어야 하는데 그동안 일본은 경제 얘기만 했던 것 같다"며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만 얘기했기 때문에 경제가 안 좋아지면 전부를 다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게 돼 버린 것"라고 현재 일본 사회를 진단했다. 또 "영화에 있어서도 언제부턴가 흥행수익에만 관심 갖게 됐다"면서 "스포츠선수의 상금이 얼마인지 혹은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 같은 것들은 물어보지 않는 게 예의이지 않는가"라고 했다.


사진제공=스튜디오 지브리, 대원미디어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선보인 신작 '바람이 분다'는 지난 20일 일본에서 개봉한 후 '최고의 역작'이란 찬사와 '전쟁 미화'라는 입장으로 나뉘어 논쟁을 낳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일본의 함상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제로센은 전쟁 말기에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공격에 사용된 전투기로 유명하다. 미야자키 감독은 호리코시 지로와 동시대에 살았던 소설가 호리 타츠오의 소설 '바람이 분다'를 기본 골격으로 사랑 이야기를 가미해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그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에 대해 "소설가 호리 타츠오는 전쟁 중에 살았지만 전쟁의 내용을 소설에 전혀 담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를 썼으며, 호리코시 지로도 군의 요구를 굉장히 많이 받았지만 이것에 대항하며 살아온 인물"이라며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같이 업고 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예를 들어 내 아버지의 경우에도 전쟁에 가담하긴 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순간순간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관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도 덧붙였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는 전쟁이 끝나고도 같은 회사(현 미쓰비시중공)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발언을 하지 못했을 거 아닐까 생각한다. 시대와 같이 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지로가 다르다 혹은 맞았다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비참하다고도 말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까지 작품에서 희노마루(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히노마루가 붙어 있는 것들(비행기)은 전부 떨어진다. 이걸 보고 여러가지 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바람이 분다'는 오는 8월 28일 개막하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에서는 9월 초에 개봉할 예정이다.
도쿄(일본)=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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