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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은 지금 중견배우 전성시대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7-26 07:52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극 '백년의 유산'은 시청률 30%를 웃돌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과 출연 배우들이 한결같이 첫 손에 꼽는 일등공신은 바로 박원숙이다. 며느리를 감금하고 모함해서 결국엔 아들과 이혼시킨 악덕 시어머니 방영자. 만약 박원숙이 아니었다면 '백년의 유산'은 막장드라마 중에서도 아주 형편없는 졸작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원숙은 차원이 다른 연기력으로 극강의 막장 설정마저 시청자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박원숙이 명예롭게 퇴장한 자리는 손현주가 뒤를 이었다. SBS '황금의 제국'의 손현주는 요즘 가장 '핫한' 중견배우다. 시청률은 기대에 못 미치지만 손현주에겐 매회 찬사가 쏟아진다. 여러 작품에서 소시민의 정서를 대변했던 그는 이 작품에서 악랄하게 변신했다. 그룹의 제왕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악행도 서슴지 않는 최민재 캐릭터는 단연 최고의 악역이다. 그러나 탄탄한 대본에 손현주의 탁월한 연기가 보태져, 시청자들이 편들고 싶어지는 '이유 있는 악역'이 됐다. 상대 역인 고수나 이요원이 더 악역으로 보인다는 시청평도 많다.

손현주의 맞대결 상대는 MBC '불의 여신 정이'의 전광렬이다. 도자기 제작소인 분원의 수장 이강천 역을 맡은 그는 주인공 정이(문근영)과 대립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문근영, 이상윤, 김범, 박건형 등 20~30대 젊은 배우들을 아우르는 전광렬의 독보적인 노련미는 '불의 여신 정이'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특히 극 초반 이강천과 유을담(이종원)이 사기장 자리를 놓고 펼치는 경쟁관계는 아역들의 풋풋한 로맨스와 대비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웰메이드 문제작이란 호평을 받고 있는 MBC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은 아예 주객을 전도시켜 버렸다. 중견배우들의 활약에 김재원과 조윤희의 열연이 묻히는 느낌까지 준다.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 조재현과 박상민은 상대에 대한 증오와 눈물겨운 부성애를 오가며 시청자들의 숨통을 막아버린다. 절절한 모성애와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독을 품은 신은경의 명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엔 중견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가 충만하다.

KBS2 '칼과 꽃'의 김영철과 최민수는 또 어떤가. 원수지간인 영류왕(김영철)과 연개소문(최민수)의 카리스마 대결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한쪽 눈만으로 분노와 절제를 동시에 드러낸 최민수의 '한 눈 떨림' 연기는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충돌이 빚어내는 에너지가 강렬할수록 그들의 자녀인 무영공주(김옥빈)와 연충(엄태웅)의 사랑엔 비극성이 커진다. 작품성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김영철과 최민수에겐 오직 호평만이 따를 뿐이다.


이처럼 최근 안방극장에선 중견배우들의 존재감이 20~30대 젊은 배우들을 압도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스타들에게만 열광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시청자들의 높아진 안목에서 이유를 찾는다. 결국엔 배우의 연기력이 드라마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요즘엔 중견배우들의 연기 때문에 드라마를 본다는 시청자들도 많다"면서 "스타성보다는 연기력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시청자들의 취향이 변하면서 내공 있는 중견배우들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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