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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이 떠나자 '여왕'이 찾아왔다. 김혜수와 고현정, 카리스마 넘치는 두 여배우가 안방극장에서 바통터치를 했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미스김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판타지 안에 날카로운 현실 감각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굴착기 운전도 하고 홈쇼핑에서 빨간 내복을 입고 춤도 추지만, 미스김의 주요 업무는 생수통 교체, 복사, 커피 심부름, 복사용지 재활용 정리 같은 단순 작업이다. 전문성을 요하지 않기에 언제든 대체 가능하다. 이런 단순 업무로 미스김이 '슈퍼갑'의 지위를 얻었다는 설정은, 쉽게 쓰여지고 쉽게 버려지는 현실 속 비정규직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직장의 신'은 평균시청률 13.0%로 동시간대 MBC '구가의 서'에 뒤쳐졌다. 그러나 화제성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여기엔 김혜수의 연기 변신의 힘이 컸다. 영화 '도둑들' '타짜' 등을 통해 선 굵은 연기를 펼쳤던 김혜수는 이 드라마에서 과장된 몸동작과 독특한 어투를 선보이며 미스김 캐릭터를 코믹하면서도 공감가는 인물로 그려냈다. 드라마에 그려진 직장인들의 애환이 절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적절한 함량의 웃음과 눈물을 배합한 김혜수의 연기력 덕분이었다. 김혜수가 빨간 내복을 입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장의 신'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가혹하리만치 냉정한 마선생 캐릭터는 고현정을 만나서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배가됐다. 마선생은 고현정의 전작 '선덕여왕'의 미실 캐릭터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극을 장악한다. 고현정 특유의 카리스마도 마선생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김향기, 천보근, 김새론, 서신애 등 아역배우들과의 연기 호흡도 탁월하다. 이 드라마의 한 관계자는 "고현정이 아니면 누가 마선생 역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여왕의 교실'이 7%대 시청률을 보이고 있지만 끊임없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도 고현정 덕분이다.
'여왕의 교실'의 배경인 6학년 3반 교실은 현실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왕따 시켜야 하고, 내가 특권을 누리려면 다른 친구에 대한 차별을 묵인해야 한다. 일명 '돼지엄마'(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들의 대표를 뜻하는 은어)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학부모 모임이나 맹목적인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의 모습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려는 아이들의 노력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그 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마선생이다. 마선생의 숨겨진 진심이 현실적인 맥락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갖느냐가 관건이다. 아직 4회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고현정의 연기는 이후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