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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PD로 활약하다 대학교수로 강단을 지키고 있는 인덕대학 방송연예과 이영희 교수가 실무와 이론을 접목한 실용 연기안내서를 출간했다.
그는 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실제 연출 당시 감지하지 못했던 세밀한 극중 캐릭터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면서 "연기현장에서 만난 중견연기자들의 완벽한 연기세계와 인터뷰, 그리고 갖가지 연기일화 등을 참고해 영상 연기의 실무를 기술했다"고 덧붙였다.
이영희 PD는 KBS에서 '사랑이 꽃피는 나무' '내일은 사랑' '바람은 불어도' 등 인기 드라마를 연출했고, 1997년 SBS로 자리를 옮겨 '이 부부가 사는 법' '흐르는 강물처럼' 등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거나 지휘를 맡았다.
인덕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 직전인 2005년 '하늘이시여'를 연출했고, 2011년 교수 겸 연출가로 SBS 주말극 '신기생뎐'을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임성한 작가와 호흡을 맞춘 '하늘이시여'는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종회 시청률 44.9%을 찍었고, '신기생뎐' 역시 당시 드라마 시청률 종합 2위(24%)에 올랐다.
지상파 드라마 연출가로 오랫동안 제작 현장을 뛰었고, 대학에서 방송연예과 교수로 재직하며 줄곧 연기이론 연구에 골몰해온 이영희 교수. 오랜 준비 끝에 영상 연기훈련 지침서를 낸 그를 직접 만나 그의 연출 세계와 연기철학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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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창작물이라기 보다는 현장성과 현실성을 가진 연기수련 통합 텍스트 정도로 보시면 될 것같아요. 삶은 호흡이다는 말이 있지요. 연기도 결국 호흡을 잘 조율하고 조화시켜 표출해내는 작업입니다. 연기 호흡법부터 연기자들의 기본자세와 연기세계까지 구체화했습니다.
-책을 내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20여년 드라마 연출가로, 그리고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연기에 대해 한번쯤 정리해볼 기회는 갖고 싶었습니다.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 활자의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어설프게 책을 내고 싶지 않아 많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죠. 좀더 알찬 내용을 담고 싶은 욕심에 사실 훨씬 더 늦어졌습니다.
-오랜 연출경험을 거쳐 강단에 서고 계신데요.
저는 나름 행운을 가진 사람입니다. 방송사라는 거대조직이 주는 안온함을 박차고 나와 독립군으로 지내면서도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좋았던 작품들을 할 수 있었고, 그동안 쌓은 경력을 인정받아 대학에서 학생들과 호흡하며 이모작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수님이 꼽는 가장 바람직한 연기자상이 있다면?
정서를 드러낼 줄 아는 연기자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정서란 삶의 냄새이지요. 극적이고 강렬한 영화와 달리 방송드라마는 습관적이고 중독적이어서 강력한 대리만족을 찾기 보다는 삶의 거울같은 공감이죠. 진짜 좋은 연기는 대사가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채플린의 연기처럼 말이지요.
-요즘 연기자들은 하나같이 성형수술로 외모를 가꾸는데요, 연기자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고 부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필러나 보톡스 같은 그런 것을 맞지 않았으면 해요. 그분들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생사화복, 인간의 오욕칠정 등 삶의 디테일이 나오지 않아요. 얼굴 근육을 마비시켜 섬세한 표정연기가 안 나올때는 안타까운 생각도 들어요.
-교수님은 유망 신인들을 많이 발굴한 PD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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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미 스타로 부상한 배우 보다는 주로 신인을 발굴해서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KBS), '내일은 사랑'(KBS), '하늘이시여'(SBS), '신기생뎐'(SBS) 등 모두 신인들을 주인공이었죠. 제 작품을 거쳐간 배우들이 대부분 스타로 부상한 덕분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과분한 칭찬이이죠.
-현역시절 '힘있는 드라마 PD'로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편안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가족들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우리 집에선 저더러 철이 안든 남자라고 합니다. 소리가 좋아 판소리에 빠져들고, 소사모(소리를 사랑하는 모임)라는 모임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철들지 않고 살고 싶어요. 직장(학교)에 가면 젊은이들 투성이니, 열정적으로 그들과 호흡하다 보면 나이들었다는 생각 자체를 잊고 살게 마련이죠.
-일을 떠나 평소 시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주말에 혼자 산행합니다. 혼자서 산을 오르는 자는 인생을 아는 자라는 말도 있습니다. 연기자들에게도 머리 싸매고 연기 연구만 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춤도 추고,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달빛도 타보고, 혼자서 하루 동안 산행도 하라고 합니다.
-연출자로서 방송연예과 교수로서 연기자들에게 조언해줄 말이 있다면?
요즘 젊은 연기자들은 너무 서두릅니다. 빨리 데뷔하려다 보니 급합니다. 스텝바이스텝, 안단테 안단테 하라고 해도 마음이 급해서는 배역 따는데 열중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과 생각, 느낌들을 알아차려 가며 천천히 즐기며 자신의 일을 깊게 다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백세 시대 아닙니까? 나팔꽃처럼 아침에 피었다가 밤에 지는 연기자가 아니라 난향천리라는 말처럼 오래도록 향기가 나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하듯 다지는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기자들은 타이밍 때문에 늘 조급해지는거 아닐까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달걀이 병아리로 깨어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즘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이잖아요. 연기자에게 그 통섭이 일어나는 것은 곧 자기혁명이지요. 요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거짓연기는 금방 들통이 나고, 통하였느냐? 그런 말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기자는 빛이 나게 돼있어요.
-교수님은 드라마 PD중 비교적 스타일리쉬하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옷에 관심은 있는 편입니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고속터미널역에서 환승하면서 빈티지 옷을 산 적이 있습니다. 2만원 주고 사서 학교앞 수선집에서 1만5000원 주고 고쳐 입었죠. 꼭 비싼 옷이어야 폼이 나는건 아닙니다. 연기자들에게 옷차림도 전략이라고 말해줍니다.
강일홍 기자 ee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