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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허준', MBC의 전략 실패로 남을 것인가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3-04-02 15:13 | 최종수정 2013-04-04 08:21



MBC '구암 허준'이 방송 초반부터 수렁에 빠졌다. 지난 3월 18일 시청률 6.7%(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출발해 4월 2일까지 총 11회 방송됐지만 시청률이 요지부동이다. 11회에 시청률 7.8%로 다소 오름세를 보였지만 평균 5~6%대를 멤돌고 있다. 방송 초반이라고는 해도 MBC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기대주답지 않게 초라한 성적표다. 이 드라마의 관계자들도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편성 시간이 문제"라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사실 '구암 허준'은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다양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구암 허준'의 원작인 1999년작 '허준'을 비롯해 수많은 인기 드라마를 집필한 최완규 작가의 필력, '선덕여왕'을 만든 김근홍 PD의 연출력부터가 막강하다. 김주혁, 백윤식, 남궁민, 고두심 등 주조연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와 박철민, 정은표, 견미리 등 감초 배우들의 활약도 조화롭게 어울린다. 허준의 일대기는 '구암 허준'에 앞서 4편이나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매번 성공했다. 지난 1975년 일일극 '집념'(143부작)을 시작으로 이듬해 이순재 주연의 동명 영화가 제작됐고, 이후 1991년 '동의보감'(14부작), 1999년 '허준'(64부작)으로 방영됐다. 허준이 그만큼 검증받은 '안전 보장성' 컨텐츠라는 의미다.

그러나 '구암 허준'은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그렇게도 아꼈던 허준 캐릭터를 내세우고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환경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탓이다. 오후 9시대 일일극, 게다가 그 장르가 사극이라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느낀 이질감이 생갭다 컸던 듯하다. 더구나 오후 9시대는 뉴스시간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식돼 있다. MBC 뉴스데스크가 8시로 옮겨갔어도 KBS 9시 뉴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시청률은 20% 초중반대. 제아무리 허준이라고 해도 수십년간 고정된 시청 패턴을 뒤엎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9시대의 유일한 드라마로 시청률 경쟁을 해보겠다는 발상부터가 순진했던 셈이다. 더구나 인터넷과 모바일 다시 보기 등이 보편화되면서 방송 3사의 본방송 시청률 하락 현상은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화제를 몰고 다닌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시청률은 13~15% 남짓이고, 이병훈 PD의 MBC '마의'는 17.8%로 종영했다.

'구암 허준'이 MBC 최고경영진의 의지로 제작된 드라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얼마 전 방문진에서 해임안이 가결되자 사직서를 제출한 김재철 전 MBC 사장은 지난해 11월 창사 51주년 기념식에서 '혁신'을 부르짖으면서 '구암 허준'의 제작을 천명했다. "9시대 시청률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2013년 3~4월이 되면 1등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고도 했다. 이후 '구암 허준'의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됐고, '구암 허준'을 9시에 편성하기 위해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구조조정됐다. '구암 허준'이 침체기에 빠진 MBC를 구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제작발표회에서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은 "'구암 허준'이 4번 타자처럼 대박 홈런을 쳐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구암 허준'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김 전 사장이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던 3~4월인데도 동시간대 꼴찌다. 든든한 지원자였던 김 전 사장마저 MBC를 떠났으니 '구암 허준'의 처지가 더 말이 아니게 됐다.

'구암 허준'의 9시 편성은 방송법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방송법 시행령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주시청 시간대에 특정 분야의 프로그램이 편중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MBC는 7시대 '오자룡이 간다'와 9시대 '구암 허준', 10시대 미니시리즈까지 무려 135분 가량을 드라마로 채우고 있다. 주시청 시간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이다.

드라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일일극이라는 형식도 '구암 허준'의 내용물을 담기에는 다소 벅차 보인다. 요즘 시대에 날마다 드라마를 챙겨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일일극은 보통 단순한 이야기 패턴과 '출생의 비밀' 같은 반복적인 설정을 갖고 있다. 한두번쯤 빠뜨려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인물의 서사와 역사적 배경이 중요시되는 사극은 꾸준히 봐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일일극으로 담기엔 등장 인물도 너무 많다. '구암 허준' 역시 시간적 한계 때문에 이야기의 맥이 끊긴다는 인상을 받는다.

'구암 허준'이 120부 대장정을 마친 뒤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 하지만 MBC의 편성 전략에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MBC가 허준의 일대기와 과거 '허준' 드라마들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해 '구암 허준'을 후방지원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이제 '구암 허준'은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승부해 살아남는 수밖에 없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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