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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비즈]'베를린' 대 '7번방', 극장 배급 전쟁 그 뒷이야기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13-02-04 14:29 | 최종수정 2013-02-05 08:41


영화 '베를린'이 개봉 첫 주에 224만명을 동원하며 인기몰이에 나섰다. '베를린'의 여주인공 전지현. 스포츠조선DB

영화 '베를린'이 제대로 터졌다. 개봉 첫주 스코어는 224만명. 벌써부터 '1000만 돌파는 시간문제'란 이야기가 나온다.

뒤를 이은 '7번방의 선물' 기세도 대단하다. 4일 현재 '베를린'의 개봉관수는 894개. '7번방의 선물'은 866개다. 각각 배급사인 CJ E&M과 NEW가 총력전을 펼친 결과다. 흥행을 자신한 두 배급사 모두 와이드 개봉이란 카드를 택했고, 시장에서 제대로 통했다.

이처럼 영화 자체가 제품 생산 과정이라면, 배급은 유통에 해당된다. 문화 콘텐츠의 특성상 유통, 즉 배급 과정은 복잡 미묘하다. 인풋과 아웃풋의 상관관계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배급의 경제학, 숫자 뒤에 숨어있는 스토리를 살펴보자.


영화 '7번방의 선물'은 입소문을 타며 개봉 2주차에 오히려 개봉관 수가 늘어났다. 그와 함께 4일 누적관객 400만 명도 돌파했다. 스포츠조선DB
스크린 규모는 어떻게 결정되나, 배급의 미학

배급 규모를 통보받을 때가 바로 1차 성적표를 받는 자리가 된다. 영화의 운명이 거의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배급 규모는 대부분 첫 언론/배급 시사회 직후 관계자들의 회동에서 결정된다. 제작사, 배급사, 홍보사 관계자들이 참여, 시사회 반응을 종합해 개봉관 수를 최종 확정한다. 특히 기자들과 안면이 있는 홍보 관계자들은 일일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자들의 표정을 확인하고 한 줄 평을 들어본 뒤 종합 브리핑을 한다.

시사회 직후가 1차 관문이라면 그 다음엔 개봉 첫주가 영화의 유통기한을 90% 결정한다. 날이 갈수록 배급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요일과 목요일의 성적을 놓고 주말 개봉관수를 확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후반 마케팅비도 결정된다. 개봉 전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보니 홍보비의 80%가 개봉 전에 집중 투하된다.



숫자가 말해준다, 배급의 과학

영화관 한 개를 잡는데 발생하는 비용은 약 40만원이다. 프린트 작업을 일일이 해야했던 시절엔 150만원 가량이 소요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극장이 디지털화되면서 비용이 많이 줄어들었다. 당연히 여러개의 프린트도 필요없다. 한 극장에 영화 소스를 한 개 제공하면, 시차를 두고 상영한다.

요즘 보통 영화의 개봉 관수는 대개 400개에서 500개 선이다. 힘을 준 영화는 600개를 넘긴다. 그리고 유지 또는 하락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7번방의 선물'처럼 기대 이상의 대박을 터뜨리면 스크린수가 오히려 늘어난다.

이때 좌석 점유율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극장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평일 좌석 점유율은 최소 20%는 넘겨야 한다. 25%가 넘으면 안심해도 된다고 하는데, '7번방의 선물'의 요즘 평일 점유율은 40%에 육박한다. 주말엔 70%까지 기록하니, 롱런을 기대하게 한다. 개봉 첫 주 605관에서 개봉해서 3일 866개까지 늘어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 숫자에서 나오는 것.

한편 시사회에서 흥행지수가 더욱 올라가면 유료 시사회 등을 황급히 잡기도 한다. 스코어 올리기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는 배급사 오너의 스타일이나 애정도가 크게 작용하는데, CJ E&M의 경우 '광해'나 '베를린'은 개봉일을 각각 하루, 이틀 앞당겼다. 최고흥행작을 만들어보겠다는 투자배급사의 의욕이 반영된 결과다.


고 투자, 고 수익? 배급의 묘수 또는 꼼수

일반적으로 투자비가 늘어나면 그만큼 매출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는 절대 그렇지 않다. 배급비용을 과감히 책정해 개봉 초반에 힘을 준다고 다 통하지는 않는다.

과거엔 톱스타를 내세우고 포장만 잘하면 개봉 첫 주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관객들 평가가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여론몰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해 젊은 스타를 내세웠던 한 영화의 경우, 쓸데없이 과욕을 부리다가 비참한 성적표를 얻기도 했다. 영화의 성격이나 개봉 시기 등을 종합해볼 때 100개 관 정도가 적당했는데, 무려 3~4배를 잡았다. 이 탓에 팬클럽이 대거 뜬 첫 주마저도 점유율이 현격히 떨어졌다.

이럴 경우엔 아무리 투자와 배급사가 같은 계열사라 할지라도, 영화관의 목소리를 누를 수가 없다. 형편없는 좌석 점유율을 들이대는 앞에선 배급 관계자들도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좋지 않을 때는 무조건 소규모 개봉을 해서 오래가는게 정답일까. 그것도 아니다. 특히 한류스타를 내세운 영화는 어느정도 와이드 개봉을 해줘야 한다. 해외 세일즈를 염두에 두고 최소한의 체면을 차려야하기 때문이다.

충무로의 한 배급 관계자는 "옛날엔 지방영화, 서울영화라는 분류법 등이 있었다. 조폭영화나 코미디 영화는 무조건 지방에선 통한다고 해서 지방 배급에 힘을 주곤 했다"며 "그러나 요즘엔 그 간극이 차츰 줄어들고 있고 도식적인 배급의 법칙을 만들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어 "개봉 첫 주뿐 아니라 흥행 영화가 중후반부를 넘기면서 어떻게 관 수나 좌석 수를 유지할지를 결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매번 '만약'이란 후회가 남게 되는 듯하다. '광해'의 경우 최고흥행작을 노리면서 배급에서 끝까지 힘을 줬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베를린'은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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