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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풍경-사랑에 대한 열일곱개의 기억 열일곱 가지 풍경

나성률 기자

기사입력 2012-09-17 15:46 | 최종수정 2012-09-17 15:47


'오히려 당신과 온전한 사랑을 나눌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어요. 그토록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사랑을 나눌수 없는 우리 운명이 너무나 슬펐어요. 그날 밤 나는 당신을 생각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박수영의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그대여' 중에서.

김훈 박범신 이윤기 전경린 하성란…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예인(藝人) 17인이,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해 발언하고 고백한다. 기억조차 아스라한 옛사랑의 모습부터 고통스러운 최근 사랑의 고백, 그리고 세월의 향기 속에서 깨달은 삶과 사랑의 지혜를 들려주는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랑풍경'-사랑에 대한 열일곱개의 기억 열일곱 가지 풍경(섬앤섬, 279쪽)이 깊어가는 이 가을 잔잔한 향기를 불러일으킨다.

작가 김훈은 수줍은 소년처럼 사랑의 기억을 에둘러 표현한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참혹한 결핍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리고 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사랑이 잘 묘사되지 못하는지를 고백하듯 토로한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훈의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기억들'중에서.

페미니즘과는 색깔을 달리하는 여성주의 작가, 정념과 귀기의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전경린은 삶이 죽음에 대한 순종이라면, 사랑은 그 죽음을 거스르는 진정한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은근하지만 당당한 이 시대 여성의 견해를 내비치기도 한다.

영원한 문학청년 박범신은 편협한 사랑, 이기적인 소유욕의 사랑을 넘어서서 깊고 향기로운 사랑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경험으로 알려준다.


'시간은 단지 사랑을 일상화시키는 역할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화는 슬픈 일이지만 일상화조차 견뎌내고 나면 다른 것들, 이를테면 참된 인간 우의로서의 향기로운 사랑이 찾아든다. 그때 만나는 사랑은 어느덧 유리그릇이 아니라 금강석처럼 변해 있어 내 손에서 설령 미끌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쉽게 깨뜨려지지 않는다. 박범신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에 깃든 함정'중에서.

그런가 하면 이 시대의 뛰어난 입담가 이윤기는 스스로 느끼한 남자 팔불출을 자처하며 결혼을 예찬한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견해에 단호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시인 김용택의 아련한 첫사랑 '그 여자' 이야기, 낯선 땅에서 '사스'라는 신종 전염병의 공포에 떨며 쓴 소설가 김인숙의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편지, 윤대녕과 유용주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떠올리는 작품, 정길연, 공선옥, 하성란, 김갑수, 윤광준 등의 자기고백적인 사랑 이야기가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펼쳐진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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