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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의 '피에타'는 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됐나?

정해욱 기자

기사입력 2012-09-14 21:46


사진제공=NEW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칸영화제,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힌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 8일(현지시각) 열린 폐막식의 시상식 무대에 올랐다. 한국영화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쾌거다. 하지만 국내에선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 '피에타'는 왜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이 됐을까? 일반 관객들의 오해와 편견을 바탕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를 살펴봤다.

김기덕 영화는 어렵고 재미없다?

영화는 허구다. 하지만 현실 세계가 투영돼 있다. 영화에 반영되는 현실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눈에 비친 현실이다. 그 현실은 일반 관객의 생각과 똑같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감독이 일반 대중이 바라보는 현실을 위주로 그려내면 상업영화란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감독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집중하면 예술영화란 이름이 따라붙는다. 이렇게 감독 개인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를 작가주의 영화라 한다. 김기덕 감독 역시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꼽힌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온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에 초점을 맞춘다. '피에타'도 마찬가지다. 악마 같던 남자가 엄마라며 찾아온 여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물론 그 과정이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지진 않는다. 김기덕 감독이 주목하는 또 다른 소재가 '광기'이기 때문.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조금은 이해하기 힘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광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간 누구나에게 내재돼 있는 본성이다. 해외 영화제에선 인간 본성 및 죄의식과 구원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김기덕 영화는 잔인하기만 하다?

"음습하고 잔인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고 느끼게 되는 일반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영화가 무턱대고 잔인하지 않다는 점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베드신이나 살해 장면은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삽입된 장면이 아니다.

모든 영화는 상징과 기호의 조합으로 돼 있다. 또 한 장면, 한 장면의 상징과 기호가 모여서 전체 영화의 주제를 상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모성애'를 주제로 하는 어떤 영화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엄마가 자식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차린 밥, 가난한 살림이지만 어렵게 마련한 학자금 따위가 모두 엄마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기호가 된다. 이런 기호들이 얽히고설켜 전체 주제인 '모성애'를 표현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이런 상징과 기호들로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조금은 투박한 듯한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관객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잔인하다는 느낌을 주는 살해 장면이나 베드신도 이런 상징과 기호의 하나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호평을 받는 또 다른 이유다. 어떤 영화가 '작품성이 있다', '예술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 이런 요소들이 짜임새있게 잘 배열돼 있을 때다.


이 때문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볼 땐 상징과 기호를 해독하느라 지끈지끈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오락영화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김기덕 영화는 영화제용 영화다?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감독에게 해외 영화제는 자신의 영화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김기덕 감독 역시 이번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열리기 전 "누군가가 폐막식 때 이름이 불려질 것이고 거기에 내 이름이 있으면 굉장히 감사할 것 같다. 수상을 한다면 내가 영화 만드는 환경이 좋아지는 것도 있기 때문에 주신다면 거절할 거 같진 않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각종 해외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한 '영화제용 영화'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각종 해외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중 '영화제용 영화'는 티가 난다. 억지로 화려하고 예쁜 장면을 연출하려고 애쓰거나 심도있는 영화의 주제를 상징이나 기호가 아닌 배우의 직접적인 대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란 말이 잘 어울린다.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티를 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다.

이번 영화제의 경우,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과의 인연도 수상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김기덕 감독의 '섬'과 '수취인불명'을 베니스에 초청한 장본인이다. 또 토리노 영화박물관장 시절엔 김기덕 감독 특별전을 열 정도로 애정을 나타냈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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