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각시탈' 해피엔딩 맞을 커플은?

이지현 기자

기사입력 2012-08-31 16:18



30일 방송됐던 수목드라마 '각시탈' 26회에서, 각시탈 이강토(주원)가 키쇼카이의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기무라 타로(천호진)를 제거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타로는 이강토가 올 것을 예감했고, 쇠통소를 손에 쥔 강토는 적앙여앙의 이름으로 타로를 심판하기 위해 마지막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각시탈의 통쾌한 복수타임. 그런데 그 순간 시청자의 기대와 무관하게 드라마가 끝났다. 허무한 엔딩이 됐고, 언뜻 보면 26회에 별로 남는 게 없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타로가 아무리 검을 갈고 비장한 각오를 다진다한들, 각시탈 이강토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심지어 타로를 지키려던 일본 최고의 무사 두 명조차, 각시탈의 쇠퉁소도 아닌 단검에 맥없이 쓰러지지 않았던가. 타로가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에, 가볍게 내려치는 각시탈 쇠통소 한방이면 세상과 작별해야 할 운명이다. 그런데 제작진은 왜 타로의 운명을 굳이 27회로 넘겼을까.

타로가 키쇼카이라는 사실에 앞서, 바로 이강토의 연적 기무라 šœ지(박기웅)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즉 타로의 운명은 각시탈 이강토가 아니라, 그의 아들 šœ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 šœ지가 급하게 차를 몰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던 것도, 각시탈 이강토에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붙잡고 울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로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강토가 쇠통소외에 따로 단검을 준비한 것도, šœ지앞에서 타로를 인질로 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무기로 적합한 건 쇠통소가 아닌 칼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황을 예고하는가. 강토를 갈등하게 만든다. 타로는 강토의 아버지 이선(이일재)의 원수이고, 키쇼카이는 독립을 하려는 조선에 암적인 존재이다. 강토가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강토가 šœ지의 얼굴을 본다면, 과연 šœ지가 보는 앞에서 타로를 제거할 수 있을까. 강토어머니가 šœ지의 형 켄지(박주형)에게 죽임을 당했다. 부모를 잃은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강토가, 지금은 적이지만 한 때는 친구였던 šœ지에게 눈앞에서 같은 아픔을 주기란 쉽지 않다. 만일 šœ지가 무릎을 꿇고 눈물의 용서라도 빈다면, 강토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 각시탈 26회는 폭풍전개 25회와 달리, 늘어진 전개로 긴장감이 떨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26회는 내용적인 면에서 각시탈의 결말을 관통하는 전체적인 밑그림을 보여주는 데 충실했다. 그 한 가지 예가, 바로 강토와 타로가 맞서는 순간이었고, 아버지의 위기를 감지한 šœ지가 급하게 차를 몰고 가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가 아닌, 강토가 šœ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한 포석은 아니었을까.

이강토가 왜 제국경찰이 되었는가. 강토의 꿈은, 명문대를 다닌 수재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바보가 된 형 이강산(신현준)을 고치기 위한 병원비를 벌고, 어머니, 형과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인력거를 버리고 제복을 입었던 것이다. 나라의 독립보다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일본앞잡이라는 비뚤어진 선택을 했던 강토는, 결국 어머니와 형을 잃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이강토는 왜 각시탈이 되었는가. 처음에 그는 어머니에 대한 원수,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각시탈을 썼다. 그러나 오목단(진세연)을 통해, 독립군 담사리(전노민)-적파동지(반민정) 등과 연결되면서, 가족까지 속이고 바보행세를 하며 각시탈을 써야 했던 형 이강산을 온전하게 이해하게 됐고, 나라를 잃어 일본인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핍박받는 조선인들의 슬픈 삶을 돌아보게 됐다.

강토에게 이를 다시 곱씹게 만들었던 사람이 26회에 양백(김명곤)이었다. 사랑이라는 건, 혹여 위험이 될까 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 그리고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그 과정이 위기와 고통의 연속이 될 지라도 말이다. 강산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강토를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동생 강토를 늘 지켜주었던 것처럼, 강토도 목단이를 위해서 떠나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이 되는 것이다.


목단이 또한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은 강토가 위험을 무릎 쓰고 타로를 제거 하려 떠나는 순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강토가 좋아하는 된장지개를 끓여 놓고 기다리겠다는 말을 건넨다. 그것은 강토에 대한 목단의 믿음인 동시에, 그들이 왜 위험을 떠안고 독립운동을 하는지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설명된 부분이기도 하다.


강토와 목단이가 꿈꾸었던 세상. 악의 무리인 일본군을 처단하며 영웅이 되는 삶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조국안에서 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 일본강점기라는 암울하고 비극이 내포된 배경속에 강토와 목단이는 부모형제를 잃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 선화(손여은)처럼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지 않는 일반 조선인들도 떡집 아들 김득수(김방헌)를 만나 가정을 꾸미고, 총칼이 아니라 떡을 팔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적 배경에서 '각시탈'속 조선과 일본은 용서와 화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국가가 아닌 개인인 강토와 šœ지는 용서와 화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앞서 언급대로 강토가 šœ지를 또 한번 용서한다면, 결말로 이어지는 šœ지의 캐릭터도 각성중인 채홍주(한채아)를 닮아갈 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해도 강토와 목단이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각시탈과 일본앞잡이를 오가던 이강토에게 또 다른 비극을 예고하는 새드엔딩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드라마적인 관점에서, 과연 '각시탈'이란 드라마를 대표하는 주인공을 통해 시청자에게 어떤 '희망'의 메세지를 선사해줄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의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강토와 목단이는 모두 가족을 잃은 지독한 비극을 맛보았다.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자극적이고 일시적인 감동보다는, 강토와 목단이가 꿈꾸는 세상을 돌보는 건 어떨까. 조선이 해방되고, 밥상에 된장찌개를 놓고 평범한 가정안에 웃음이 만발하며 행복을 누리는 해피엔딩이, '득수-선화'커플이 될지, '강토-목단'커플이 될지 알 수 없으나, 둘 다이기를 희망하는 건 비단 나뿐일까.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 때(http://manim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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