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전지현? 10년 전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전지현은 청순 미녀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녀가 올해 확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화 '도둑들'에서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예쁜 얼굴에 안 어울릴 것 같은 거친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찰랑찰랑 긴생머리의 청순한 그녀를 기억하고 있던 남성팬들로선 깜짝 놀랄만도 하다. 하지만 일단 영화를 보고나면 호평 일색이다. '몸에 꼭 맞는 캐릭터를 찾았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남성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녀의 대사를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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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로서의 면모는 신하균과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이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신하균은 돈 많은 미술관장 역을 맡았다. 극 초반 도둑들의 표적이 되는 인물이다. 전지현은 연기파 도둑 씹던껌(김해숙)과 모녀 사이인 척 해 신하균을 속인다. 그 과정에서 신하균이 김해숙을 의심하고 가방을 뒤진다. 하지만 김해숙이 도둑이란 아무런 증거도 발견하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지현을 사랑했던 신하균은 전지현에게 쩔쩔맬 수밖에. "보안 매뉴얼대로 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는 그에게 전지현은 한 마디를 던지고 등을 돌린다. "근데, 사랑엔 매뉴얼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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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들'에선 전지현과 김혜수의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진다. 물론 실제 촬영장에서 두 사람은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손을 꼭 붙잡고 함께 얘기를 나누는 등 친자매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후문.
하지만 국내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가 함께 출연하다보니 라이벌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첫만남부터 심상치 않다. 함께 자동차에 타고 가던 두 사람은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카리스마 여왕' 김혜수가 "내가 마음에 안 드는구나?"라고 말을 던진다. 전지현도 지지 않는다. 상대의 자존심을 살살 긁는 대사를 웃는 얼굴로 능청스럽게 내뱉는다. "제가 좀 나이 많은 여자랑 잘 맞거든요."
극 중 김혜수에 대한 전지현의 마음은 김해숙과의 대화에서 더 잘 드러난다. 직설적인 대사를 날린다. "팹시(김혜수)가 예쁘다"는 씹던껌의 말에 전지현은 "예쁘긴. 내가 보기엔 어마어마한 XX 같애"라고 대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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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콜은 자신의 미모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진 캐릭터다. 그런데 앤드류(오달수)가 자존심을 거드린다. "성형을 했다"며 외모를 폄하한다. 이에 전지현은 발끈 화를 내면서 "이렇게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란 자신감 넘치는 대사를 한다.
"향수를 뭐 쓰냐?"는 김수현의 말에도 예니콜다운 말을 내뱉는다. "난 향수 안 쓰지. 타고난 살냄새?"라고 한다. 또 짧은 치마를 입은 전지현의 다리를 보면서 "너 줄타는 애구나"라고 말하는 마카오박(김윤석)에겐 도도한 표정으로 "조심해요 치마가 짧아요"라고 말한다.
청순한 이미지의 여배우에겐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센 대사들. 하지만 전지현은 "별로 어렵진 않았다"며 "감독님의 정확한 디렉션이 있었다. 정말 리얼하게 힘을 줘서 욕 대사를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러면 너무 미워보일 수 있다고 하셨다. 감독님이 직접 대사를 해주셨고 그 톤을 참고해서 감을 잡았다"고 밝혔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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