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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배우 전성기는 30대 중반부터라는 말이 있다. 하정우, 소지섭, 엄태웅, 장혁, 박희순 등 떠오르는 얼굴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안방극장에서는 이 말이 통하지 않게 됐다. 근래 종영했거나 방영 중인 드라마들은 모두 파릇파릇한 20대 꽃미남 배우가 꽉 잡고 있다. MBC '해를 품은 달'의 김수현(24)과 정일우(25),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25), SBS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26)은 안방극장 최고의 핫스타다. 재미난 건 이들이 모두 '누나'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점이다. 김수현은 6세 연상 한가인과 연기했고, 이승기와 하지원의 나이 차도 9세다. 심지어 이승기의 동생 역 이윤지도 84년생으로 87년생 이승기보다 위다. 한지민은 박유천보다 4세 많다. 20대 남자배우의 득세와 연상연하 커플의 대세, 이유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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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제작 여건도 이런 트렌드를 부추겼다. 인지도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여배우는 30대 초반 나이대에 몰려 있고, 인기 있는 30대 남자배우들은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김수현, 이민호, 이승기 같은 20대 남자배우로 눈을 돌려보면, 이들과 인지도를 겨룰 만한 20대 여배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극 중 설정과 관계없이 20대 남자배우-30대 여배우 조합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기획 단계부터 명확한 타깃 시청층을 설정하고 그들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느냐에 따라 극 중 인물의 연령대와 내용이 전략적으로 수정되기도 한다"며 "20대 남자배우를 캐스팅할 때는 해외 판권 수출이나 시청률 상승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도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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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자배우는 역으로 드라마 제작에도 도움을 준다. 드라마에 PPL이나 광고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캐스팅된 인기 배우가 모델을 맡고 있는 광고주 측이 제작사에 협찬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하고 제작사가 먼저 광고주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류스타 A군이 출연했던 한 드라마에는 광고주가 투자사로 참여했고, 첫 방송부터 드라마 앞뒤로 붙는 모든 광고를 완판시켰다. '더킹 투하츠'에도 이승기가 모델로 활동하는 한 가전제품이 PPL을 통해 노출돼 화제가 됐다. 광고주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제작사는 제작비 부담을 덜 수 있으며, 배우 입장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삼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완벽한 조합이다.
20대 남자배우의 주가가 높아진 데는 매니지먼트의 전략도 주효했다. 2~3년 전부터 신인 발굴에 쏟은 노력이 변화된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회사 수입과 운영 면에서도 20대 남자배우가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라며 "이런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도 신인 배우 지원을 위한 계획이 더욱 체계화되는 등 매니지먼트 방향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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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은 '해를 품은 달'을 마친 후 15개의 광고 계약을 체결했고, 앞서 '꽃보다 남자' 신드롬을 일으킨 이민호도 광고를 싹쓸이했다. 20대 남자배우들의 가치는 이렇게 광고 출연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한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김수현과 이승기를 빼놓고는 최근의 광고계를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광고는 고객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점에서 드라마보다 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광고주들이 핫스타를 선호하는 특징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광고 모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최근의 20대 남자배우들은 과거처럼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외모에 걸맞는 뛰어난 연기력과 인간미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모델 가치가 급등했다.
김수현이 출연한 노트북 광고를 제작한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제품의 프리미엄 타깃은 30~40대로, 모델의 나이대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김수현은 20대임에도 진중하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까지 갖고 있어 타깃 고객층의 호감도가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이승기가 30~40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 가전제품의 모델로 활동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사전 조사를 해보면 이승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데 주효하다"며 "20대 남자배우들이 드라마에서 맡고 있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것도 모델로서 가치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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