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는 얼마 전 남자친구가 몰래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Y는 큰 상처를 받았고, 주저 없이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매달렸다. "그냥 섹스였어. 그 여자, 나한텐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냥 한번 실수한 거야. 사랑하는 사람은 너라고!"
사랑은 또 뜻하지 않게 오기도 한다. E는 동호회에서 알게 된 한 띠동갑 남자와 개인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는 유부남이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편하고 말도 잘 통해서 서로 시간을 맞춰 이곳저곳 놀러 다녔다. 모두들 두 사람의 사이를 음흉하게 생각했는데, 정작 두 사람은 서로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남자가 E의 귓불에 대고 "넌 참 괜찮은 여자야. 매력 있어."라고 속삭이는 바람에 그만 허락하고 만 것이다. 언제나 남자에게 차이고 다녀서 자신감이 떨어진 E에게는 얼마나 감초 같은 말이었던가. 섹스는 아주 좋았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남자는 없어졌다.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전화는 그냥 끊어졌다. 그래서 다음 날 전화해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고, 그 다음 날 전화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E는 그냥 쿨하게 즐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섹스 이상의 무엇을 원했다. 섹스를 하기 전에는 분명 편안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는데, 섹스를 하고 나니 그가 정말 '남자'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키스를 하는 동안,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랑 없이 그냥 쾌락을 위해서 즐기는 성관계는 비난당한다. 반면 사랑이 있는 연인이나 배우자간의 섹스는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정조 관념 없이 '밝히는'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데, 그것의 근거는 사랑의 부재다. 남녀 관계에 있어 사랑의 가치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허나 때에 따라서는 단 한 번의 섹스에도 사랑은 존재한다. 끌림이 없이 섹스나 키스는 불가능하다. 사랑이 없다고 생각되는 육체적 관계에는 사랑과 쾌감을 혼동하는 것이다. 쾌감을 얻었으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르가즘으로 마음을 다 채웠으니, 설마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 사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의 몸은 기억한다. 흥분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지 못한 것뿐이다. 절대로 그냥 섹스, 그냥 키스같은 것은 없다.